집안의 큰 잔칫날과 같았던 김장하는 날. 얼마전만 해도 ‘겨울=김장’으로 인식될 정도로 김장은 주요한 집안 행사였으며 김치는 겨울의 중요한 먹거리였다. 김치찌게 김치볶음 김치전 김칫밥 김칫국등으로 겨우내 밥상을 맛깔나게 빛냈던 겨울의 ‘반양식’김치…. 그러나 요즘 김치는 왕년의 김치가 아니다. 세계화되는 것과 반비례, 한국식탁에서는 위상이 좁아지는 느낌이다.

우선 김치를 집에서 담그지 않고 사서 먹는 가정이 크게 늘고 있는 추세.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장소로 배달되는‘사서 먹는 김치’(배추김치 기준 10㎏3만5,000원선)가 집에서 담그는 김장 김치에 비해 가격 면에서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저렴한데다, 무엇보다 주부의 일손과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고, 맛도 뒤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날이 갈수록 주문 김치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맛있는 김장을 담그는 것은 사실 여간 노하우를 쌓지 않고선 어려운 일이다. 우선 기본 양념을 잘 골라야 맛있게 담글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초보 주부에겐 보통 골치 아픈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고추는 빛깔은 빨갛고 꼭지는 노란 태양초, 대파는 윤기가 돌면서 단단하지 않은 것, 쪽파는 가는 것보다 통통한 것, 고춧가루는 가는 것보다는 거칠게 빻은 것 하는 식으로 말이다. 반면 주문김치는 엄선된 배추와 천연 양념등 최고 품질을 재료로 쓰고 있어, 주부들의 신뢰 역시 나날이 높아가는 추세이다.

올 겨울 역시 주문김치 소비가 크게 늘어났다. 일부에선 IMF 한파로 집에서 김장 담그는 알뜰 가정이 많이 늘어나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가격 경쟁력이 뒤지지 않아서인지, 주문김치 판매 실적은 오히려 작년 이맘때에 비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협중앙회 농특산 가공부 이안철씨는 “11월 1일부터 전국 농협점포와 인터넷 홈쇼핑등을 통한 농협 김장김치 신청액이 12월7일 현재 7억3천만원을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5억원)보다 무려 42%나 늘어났다”고 밝혔다. 종가집김치 역시 같은 추세. 종가집 김치를 브랜드로 하고 있는 (주)두산의 김치판매 역시 작년 대비 51%나 성장했다. (주)두산 영업팀 박사현씨는 “97년 11월 한달동안 98톤에서 올해 같은 기간동안엔 148톤을 판매했다”고 말했다. (주)두산의 98년 김장김치 판매 목표는 800톤.

주문 방법도 다양해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부가 편의점(LG-25, 훼미리마트, 세븐일레븐) 백화점(현대 롯데 애경) 할인점(E-MART) 혹은 전문대리점을 방문해 직접 김치를 구매하거나 주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올해부턴 홈쇼핑, 인터넷등 전자통신 거래를 통해 김치가 활발히 판매되고 있다. 농협김장김치의 경우 전체 주문중 전자통신거래가 12%를 차지했을 정도.

백화점이나 슈퍼에 나가 직접 김치를 사는 것이 아니라 집에 편안히 앉아 전화로 TV홈쇼핑에 배달 주문을 내거나, 인터넷 사이버세계를 통해 농협(http://WWW. kofood.com)과 종가집(http://www.kimchi.dbc.co.kr) LG인터넷(http://www.shoppoint.co.kr) 삼성인터넷(http://www.sism.co.kr)등 김치 전문업체의 인터넷 주소를 간단히 클릭, 김치를 주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주문김치 판매가 크게 늘면서 김치 종류 역시 다양해졌다. 종가집 김치의 경우 포기김치외에 총각김치 백김치 총각김치 백김치 동치미 깍두기 돌산갓김치등 다양한 김치를 취급하고 있다.

또 농협은 전남 순천, 경북 안동풍산, 경기 연천등 각 고장 특유의 전통 맛을 살린 향토김치로 주부의 입맛을 자극하고 있으며, TV홈쇼핑(LG 홈쇼핑)을 통해 김치를 판매중인 삼진종합식품에선 전통 궁중 방식에 전라도식을 접목한 수랏상김치(10㎏ 3만6,000원), 함경도식 이북김치(5㎏3만원) 돌산갓김치(2㎏ 1만2,000원)등 별미김치를 판매하고 있다.

동네슈퍼에서 판매되는 주문김치중엔 ‘정말’주문식으로, 멸치젓 새우젓 황석어젓 갈치젓 오징어젓등 젓갈들을 주부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즉석에서 담궈 판매하기도 한다.

주문김치 판매가 아무리 늘어도 여전히 김치소비의 대세는 집에서 담궈 먹는 형태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연간 소비하는 총 김치 소비량을 150만톤으로 추정했을때 이중 6분의 5는 집에서 담궈 먹는 형태라는 것.

하지만 김치 소비량이 점점 줄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김장 김치 역시 가정마다 점점 감소 추세. 요리연구가 한복선씨조차도 “워낙 김치 욕심이 많아 여전히 집에서 김장 담그기를 고수하지만 지난해 150포기를 담갔다가 그냥 버려 올해엔 반으로 양을 줄여 70포기만 담았다”고 말했다. 한복선씨는 요리학원을 운영하고 있어 학원 수강생들을 위해 김치를 많이 담그는 편이다.

일반가정의 경우 4인기준 보통 5~10포기 정도로 김장김치량이 줄어들었다. . 김치 하나만 해 밥을 먹던 시대도 아니거니와, 우리 주거 형태가 김장을 많이 담가보았자 보관할 장소도, 용기도 적당치 않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많이 김장을 담궈다 먹지도 못하고 신김치를 이듬해 버리느니 조금 비싸게 배추를 구입하더라도 조금씩, 자주, 다양한 종류의 김치를 담궈 신선한 맛을 즐기면서 알뜰하게 김치를 소비하겠다는 가정이 오히려 많다. 50대 주부 김경진씨는“총각김치 동치미 배추김치 순으로 보름에 걸쳐 3~4일에 한번씩 김치를 담그고 있다”고 말했다.

‘원정 김장’이라는 새 풍속도 생겼다. 며느리나 딸들이 시댁이나 친정으로 ‘원정’가, 온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김장을 담근 다음, 조금씩 가져다 먹는 신세대 주부가 많아진 것이다.

아파트 앞 작은 뜰에 김치 독을 묻거나, 피서용 아이스 박스에 김치를 넣어 베란다등에 보관, 먹었던 김치가 김칫독 그득 담아 땅에 묻어 꺼내 먹던 옛날 김치 맛을 재현해 낼리는 만무. 이 때문에 ‘그때 그 김치맛’을 그리워하는 주부들을 타깃으로 올겨울엔 김치 전용 냉장고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

김치독을 땅에 묻을 때와 마찬가지로, 빙점과 섭씨 7도를 오가며 김치를 숙성시킨 뒤 빙점에 고정하는 원리로 만들어진 김치 냉장고는 4개월 정도 김치맛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다고 선전되고있다. 더군다나 일반 냉장고에 김치를 보관할 때 김치 냄새가 다른 음식에 밸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까지 갖춰, 올겨울 주부들 사이에 김치냉장고 계까지 생겨날 정도로 대히트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40만~70만원으로 가격이 상당히 비싼게 흠. 만도기계 딤채의 경우 94ℓ들이 74만원(이하 백화점 판매가), 60ℓ들이 54만원정도, 보관전용 53ℓ들이는 44만원이다. 삼성전자의 ‘김칫독 냉장고’는 60ℓ들이 고급형이 52만2,000원, 보급형이 37만9,500원이며 청호나이스의 ‘김치뱅크’는 23ℓ들이가 77만원이다. 만도기계의 ‘딤채’는 이미 16만대 이상을 판매하는등 IMF시대 예상 밖 수요로 김치냉장고 업계는 주문량을 제때 소화해내지 못할 정도로 높은 판매실적을 보이고 있다.

송영주·주간한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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