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의 승부수 '두마리 토끼잡기'

05/12(수) 08:07

한나라당 이회창총재가 ‘회심의 승부수’를 던졌다. “현 정권이 독재화의 길로 가고 있다”면서 ‘제2의 민주화투쟁’을 선언한 지 불과 며칠만에 6·3서울 송파갑 재선거에 직접 출마하겠다는 ‘깜짝카드’를 내놓은 것이다. 이총재의 출마로 송파갑 재선거는 불가피하게 여야간에 사활을 건 전면전 양상을 띠게 됐다.

지난 대선이후 각종 재·보선 때마다 당내에서 적지않은 출마권유를 받고서도 미동도 않던 이총재가 송파갑 재선거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정한 데는 여러가지 포석이 깔려있다고 봐야 한다. 무엇보다 당안팎의 여러 상황이 이총재의 등을 떠밀었다. 고승덕 변호사의 후보사퇴 파문에 뒤이은, 공동여당의 정부조직법 개정안 날치기 처리가 이총재를 충격으로 몰아 넣었다는 것이다.

“반 DJ 여론 수면위로 부상시킬 기회”

한 핵심측근은 “‘두 사건’을 전후로 해서 당내 여기저기서 이총재의 출마를 권유하는 주문이 빗발쳤다”고 말했다. 홍준표 전의원이 3월초 의원직을 상실한 이후 홍전의원과 수도권 의원이 주도하던 출마론이 부쩍 세를 얻었다는 말이다. 당장 박명환 맹형규 이신범의원등 서울지역 의원들이 “내년 16대총선에서 수도권 농사를 다 망치려 하느냐. 한나라당이 우위에 서려면 이총재가 직접 출마해 필승을 거두는 방법 밖에 없다”면서 재차 바람을 잡았다. 이총재와 비판적 동맹관계를 맺고있는 김덕룡 부총재도 “정국의 대전환을 위해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출마를 적극 권유했다.

이총재가 ‘제2의 민주화투쟁’방침을 천명한 뒤에는 신경식사무총장, 하순봉총재비서실장, 안택수대변인 등 고위당직자와 윤여준 여의도연구소장 등 핵심측근들도 “제2의 민주화투쟁의 기치를 내걸었으니, 총재가 선두에 서서 진두지휘를 해야 한다”면서 출마론에 가세했다.

“이총재가 직접 송파갑 재선거에 출마해야 한다”는 측근들의 강력한 건의에도 불구하고, 최후결정은 어디까지나 이총재 자신의 몫이었다. 그는 9일 저녁 최종결정을 내리기 앞서 가족회의까지 열었다. 그렇다면 이총재가 송파갑 재선거에 출마하기로 결심을 내린 배경은 무엇일까.

한 핵심측근은 “이총재가 민심의 바닥에서 비등하고 있는 반DJ 여론을 수면위로 부상시켜 극적으로 표출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여권에 대해 제2의 민주화투쟁을 천명한 마당에, 그러한 의지와 정당성을 직접 보여주는 동시에, 김대중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의 의미를 부여해 국민의 심판을 받아보겠다는 ‘승부수 던지기’라는 것이다.

이총재는 또 당내적으로 잠재적 분란의 요소를 미리 제압하고, 외적으로는 정국의 반전을 통해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매력적 난관돌파용 카드로 인식했을 법도 하다.

현정권 중간 평가, 당내분란 제압 의미

먼저 내각제 정국에 보다 강력하게 대응하고 정치개혁 협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원내진입을 통한 진두지휘가 절실한 실정이다. 안택수대변인은 이와관련“정부조직법 개정안 날치기 처리를 겪으면서 (이총재 자신이) 원외여서 원내투쟁등 대여전선에서 문제가 많다는 점을 강하게 인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구제 변경을 골자로 하는 정치개혁협상을 앞두고 더이상 원외에 머물렀다가는 허를 찔릴 수 있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총재는 “여당이 이대로 가다가는 선거법도 날치기 처리를 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며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송파갑 재선거 승리를 등에 업고 당내에서 총재의 지도력을 공고히해, 비주류의 도전등 이질적 목소리를 확실히 무마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하겠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일부 비주류 중진의원과 수도권 초·재선 의원들 사이에 퍼져있는 중·대선거구제 도입요구등 자중지란의 가능성을 잠재우는 데 더없이 좋은 카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물밑에서 이총재체제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당내 비주류의 ‘이총재 흔들기’에 쐐기를 박아놓을 수도 있다.

이총재는 내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동요하고 있는 서울등 수도권 의원들을 ‘위무하기’위해서도 자신이 직접 몸을 던질 필요가 있었다.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서 “이총재가 수도권을 외면하고 영남지역에 경도돼 있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는 점을 이총재도 익히 알고 있다. 서울의 한 의원은 “이번 송파갑 재선거에 이총재가 직접 출마함으로써, 내년 총선에서 수도권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는 디딤돌을 마련하게 됐다”면서 “송파갑 바람이 인천 계양·강화갑까지 확산되면 2전전승을 거두는 ‘윈-윈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총재가 더이상 편안하게 정치를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지금이야말로 총재가 안이한 행보를 버리고 정치적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라는 측근들의 주문을 마냥 외면하기도 힘들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한 측근은 이와관련, “총재 자신이 몸을 던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당을 긴장시키고 진정한 권위를 확립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면서 “지역구 선거를 치름으로써 이총재의 단점으로 지적되는 대중정치인의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고 이총재 출마를 반겼다.

잘못될 경우 정치생명에 치명타

이총재가 압승을 거두기만 하면 여권에 적잖은 타격을 입힐 수 있지만, 부담도 적지 않다. 당장 여권은 “질 때는 지더라도 앞으로 큰일을 할 수 없도록 상처를 내겠다”는 분위기속에, 총풍 세풍등 그동안의 공격소재를 총동원해 이총재의 정치적 상처를 내기 위한 파상공세를 펼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기더라도 ‘상처뿐인 영광’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에 하나 패배하거나 근소한 차이로 이길 경우, 이총재는 엄청난 부담과 시련을 각오해야 한다. 총재의 지도력과 권위는 송두리째 무너짐은 물론, 당내 이탈현상이 가속화하게 된다. 자칫 붕당이나 분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총재에게 더이상 기댈 것이 없다”면서 각자 자구행위에 나서는 의원들도 있을 것이다. 운명의 여신은 이총재에게 어떻게 다가올 것인가.

김성호·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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