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치아픈 정치 "하라고 해도 안해"

05/12(수) 13:36

전두환 전대통령은 6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부산·마산지역을 다녀왔다. 그의 행차가 항상 그랬듯이 이번에도 10여명의 측근들이 동행했다. 전 전대통령은 6일 마산실내체육관에서 마산 창원 불교연합회 주최한 국민화합 민족번영기원 법회와 9일 부산 인근의 천불사 법회 등에 참석했다.

이에앞서 전 전대통령이 대구합천 방문때 동행한 기자들을 지난 3일 연희동 자택으로 초대해 저녁을 함께 하며 3시간30분간 담소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은 “전혀 정치를 재개할 뜻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희망이 있다면 북한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그곳 사람들과 토론을 통해 통일을 앞당기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재임시절에 있었던 남북관계에 대한 비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날 발언내용을 분야별로 소개한다.

“우리집엔 갈데 없어서 오는 사람들 뿐”

참 이상한 일이다.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한다. 사실 우리집에 오는 사람들도 갈데 없어 오는 사람들 아닌가. 와서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가령 고승덕인 어떻게 된거야 하면 어떠 어떠하게 됐답니다 하는 식의 신변잡기, 골프이야기 등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다 간다. 그런데 밖에서는 무슨 거창한 대화나 나눈 것처럼 본다.

JJ프로젝트 그게 뭐냐. 나는 보지도 못했다. 내가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인데 다 늙어서 뭣하러 황토판에 들어가느냐. 청와대에서 한 5년 지나니까 정말 못하겠더라. 얼마나 머리가 아프던지 체력적으로 안되더라. 박정희대통령은 18년간 했으니 정말 대단한 분이다. 이따금 나를 찾아와 도와달라는 사람도 있고, 도와주지 않는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다. 친한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면 막을 이유가 없지만 나는 끼어들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출마하려는 것을 어떻게 막느냐. 그건 그사람들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해도 너무한다. 5공이 그렇게 무서운가. 5공사람들이 정치를 하면 또 어떤가.

(이순자여사, “우리보고 김대중대통령보다 아직 나이도 젊은데 출마하라는 사람도 있더라. 그러나 우리는 하라고 108배를 해도 안한다.)

올림픽 공동개최 제의로 깨진 남북정상회담

83년 우리나라에 수재가 났다. 그런데 북한에서 구호물자를 보내 주겠다고 제의를 해왔다. 물론 정치공세였다. 당시만 해도 남북양측이 구호물자 이야기만 꺼내면 서로 으르렁 거리던 때였다. 노신영안기부장이 와서 북한에서 구호물자를 시멘트 몇만톤, 옷감 얼마 등등 구체적으로 수치까지 적어서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보내오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서 수치까지 적어보냈으니 자기들도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 아닌가’며 받을 것을 지시했다. 물론 북한의 속을 들여다 보고 한 지시였다. 당시에도 북한에는 식량난 조짐이 있었고 생필품도 부족하다는 것을 보고 받고 있는 상태였다. 우리가 넙죽 받으니 놀란 것은 북한쪽이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태가 벌어졌으니 부랴부랴 공장가동하고 시멘트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난리가 났다.

그때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있는데 북한에는 2만톤급 배가 딱 두척있다. 그런데 이 배중 하나에 시멘트와 구호물자를 싣고 오다가 심청이가 빠졌다는 바다(임당수) 부근에서 고장나 침몰했다. 물론 인공위성으로 다찍혀서 침몰 상황이 보고가 됐다. 가뜩이나 물자가 궁한 북한에서 난리가 날 수 밖에 없었다.

남북정상회담은 내가 북한 쌀을 턱하고 받으니까 김일성이 깜짝 놀라 전두환이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다고 제의해 온 것이다. 그쪽에서는 아무런 조건 없이 만나자며 사람을 보내라고 제의했다. 당시 김일성은 순수한 의도였던 것 같았다. 그래서 사람은 초청하는 쪽에서 먼저 보내야 하는 것이라고 하자 그쪽에서 허담을 밀사로 보내왔다. 장소를 물색하다 최원석동아그룹회장의 기흥 별장을 빌렸다. 허담을 만난 자리에서 ‘당신들 10일이내에 우리나라를 점령할 수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6·25때와는 세상이 달라졌다. 지금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도 10일이내에 북한을 점령할 수 있다. 6·25때 당신들은 전략가가 없었다. 전략가가 있었다면 서울에서 그렇게 시간을 지체하면 안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군에는 전략가가 많다. 당신들은 그걸 모른다. 청와대를 폭격해보았자 소용이 없다. 지금 이 별장과 같은 곳이 수십개가 있다. 내가 청와대에만 있는 줄 아느냐. 전쟁계획을 포기하라. 전쟁이 나면 승자도 패자도 없이 민족전체가 멸망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허담은 펄쩍 뛰며 ‘그런 뜻이 전혀 없다’고 했다. 이후 장세동부장과 박철언씨도 북한에 가서 실무회담이 진행됐는데 북한측에서 엉뚱한 요구를 해왔다. 서울올림픽을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이름도 평양_서울올림픽으로 하자고 했다. 처음엔 순수했는데 갑자기 상황이 이상하게 변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해 남북정상회담을 중지시켰다.

“청와대 나오면서 ‘매맞을 각오’ 했다”

이승만대통령도 훌륭한 분인데 욕심을 부렸다. 박정희대통령도 3선때까지만 해도 참 훌륭했다고 생각했는데 유신으로 넘어가면서 이상한 감이 들었고 마지막 임기때는 그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당시 김재규가 박대통령을 쏜 것은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일간신문에 미국 관리가 한국은 박대통령이 제거되야 발전한다는 글을 게재할 정도로 카터 방한 이후 박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다. 당시 경제는 이미 파탄상태였다. 내가 대통령이 되보니 당시의 경제상황을 알겠더라.

나는 처음으로 임기를 마치고 정권을 평화롭게 물려준 대통령이다. 나는 약속을 지켰다. 역사는 알아줄 것이다. 내가 청와대에 나올 때 50대였는데 왜 나라고 욕심이 없었겠는가. 주변에서도 내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 때는 레임덕이 없었다. 막판 노태우가 후보로 결정되고 나서야 비로서 줄을 서기 시작했다. 나는 청와대를 나오며 안사람에게도 앞으로 무슨일이 있을 지 모른다. 매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보복이 따를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에피소드 한가지를 소개하자면 내가 정권을 잡으니 검찰에서 3공청산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이를 막았다. 단 누군가가 책임을 지긴 져야 했다. 그래서 김종필총리의 재산을 몰수한 것이다. 사실 김총리는 서산군과 제주도에 엄청난 땅을 갖고 있었다. 그때 재산을 몰수 당한 사람들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규모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김총리도 서산땅만 문제삼았지 그뒤 아무것도 문제 삼은 것이 없다.

내가 언론에게 섭섭한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인신공격성으로 써제끼는 것이었다. 동아일보에서 내가 250만원 짜리 비누(이여사가 200만원짜리라고 정정)를 사용했다고 써서 나중에 사석에서 김상만회장을 만나 항의했다. 사실 그것은 노대통령쪽에서 흘린 것이다. 그 화장실은 노태우대통령부처만 쓰는 것이다. 청남대에서 비누를 썼다는 것인데 청남대를 빌어서 흘릴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 청소하는 사람이 말했을 수도 있기는 하다.

“백담사 보낸건 노 전대통령 잘못”

백담사에 나를 보낸 것은 노태우대통령이 잘못한 것이다. 내가 재임중에는 부패는 없었다. 신문을 찾아봐라. 사실 몇명이 뇌물을 받은 것으로 걸렸는데 원호성금이나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토해내게하고 사직시켰다. 처벌하지 않은 이유는 매일 사정이나 하고 하면 외국에서 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불안해 보이겠는가. 당시에 경제가 말이 아니었기에 국정운영에 안정감을 주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YS때는 매일 사정만하고 전직대통령을 잡아넣고 하다가 나라꼴이 어떻게 되었느냐.

백담사에서 담배를 끊었다. 백담사에서 지낸 2년2개월간 수도승처럼 살았다.담배는 안사람(이순자여사)이 하도 콜록거려서 할 수 없이 끊었다. 백담사까지 따라왔는데 안스럽기도 하고, 백담사의 암자는 한겨울에 외풍이 심해 비닐로 겹겹히 둘러쳐 놓았는데 공기가 나갈 틈이 전혀 없어 담배를 끊기로 했다.

“북한 오가며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

우리나라는 관광을 개발해야 한다. 관광자원이 없지만 인적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친절이 가장 중요하다. 관광을 하면 관광수입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사람들이 자국으로 돌아가 한국칭찬을 하게 되고 그러면 우리나라와 한국상품에 대한 인상이 좋아진다. 나는 앞으로 만나는 사람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며 관광한국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싶다. 또 묘향산 금강산 백두산 개성 평양 등 북한 전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그 사람들과 토론하고 싶다. 그러면서 북한의 실상과 우리의 상황을 알리고 싶다. 그쪽도 나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은 없지만 중량감있는 사람이 오면 될 것 아닌가. 그러나 금강산 관광같이 제한된 방북은 안한다.

(이여사, “전에 김일성으로부터 받아놓은 초청장이 있는데 아직 유효하지 않겠느냐. 아버지가 보낸 초청장인데 김정일비서도 인정하지 않을까.)

이태희·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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