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어느 보통사람의 분노

05/04(화) 19:53

“국회의원, 장성, 장·차관이 아직 안나왔는데 그걸 누가 믿겠어요. 계속 수사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역대로 용두사미로 슬그머니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가끔씩 날 잡아 하지 말고 상설기관에서 수시로 조사해야지요.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지요, 뭐. 돈 없고 빽 없고 선량한 놈만 억울한 겁니다.”

최근의 병무비리 이야기가 나오자 김영규(59·서울 거주)씨는 열변을 토하다가 결국은 체념조로 이렇게 말한다. 이번 사건을 접하면서 둘째 아들(26)이 다리 부상으로 재검에 재검을 거쳐 공익근무요원으로 28개월을 복무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김씨는 고려대 사학과를 마치고 ROTC(학군단) 2기 소위로 64년부터 2년간 강원도 철원 1군 포병부대에서 근무했다. 육군항공대 5군단 비행대에 파견돼 비무장지대(DMZ) 상공에서 북한군측 이상 유무를 관측하는 임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동생(57)은 이웃 5사단 포병부대에서 사병으로 근무했고 큰아들(31)은 육군 병장으로 제대했다.

둘째 아들이 건물에서 떨어져 다리에 심한 부상을 당한 것은 94년. 이미 신체검사에서 현역 판정을 받은 터라 넙적다리에 쇠파이프를 박아넣은 상태지만 논산훈련소로 갔다. 당연히 귀향조치됐고 쇠파이프를 뺀 다음 6개월 후에 다시 신검을 받으라고 했다. 이때 김씨는 아들에게 “나라의 부름을 받으면 가급적 현역으로 가는 것이 좋다. 남자로서 사회에 나와서 군대 얘기에 끼지 못하면 평생 창피하다. 군대를 갔다와야 가족의 소중함이 뭔지 알고 국가가 뭔지도 알게 된다”고 했다. 다시 신검을 받으러 갔을 때에는 파이프 연결 부위에 골수가 차지 않아 3∼4개월후 골수가 찬 다음에 오라고 했다. 다음해 재검에서는 ‘골수는 찼지만 이런 다리로 현역 근무는 어렵다’고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았다. 아들은 올 4월 1일 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 2학년에 재학중이다.

“몸이 안되는데 억지로 군대에 가라고 할 수는 없지요. 다만 국가에서 하라는대로 하면 됩니다. 현역 가라면 가고 공익근무요원 하라면 하고 면제라면 할 수 없고…. 남자로서 국방의 의무는 당연한 것인데 그걸 안 하려고 돈 쓰고 빽 쓰고 하는 것은 국가안보를 해치는 행위입니다.”

병역 문제 말고 김씨를 화나게 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신문사에서 편집 일을 하다가 96년 6월 정년퇴직후 별다른 벌이가 없는데 올해초 동사무소에서 국민연금에 가입하라는 통지가 왔다. 월소득이 99만원으로 책정돼 있었다. 동사무소에 가서 이게 말이 되느냐고 항의했더니 직원은 “소득이 없어도 집이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것이 국가시책이니 그리 알라”고 했다. 또 나중에는 “이번에 가입하지 않고 다음에 들면 당신은 요율이 높아진다”고 ‘협박’했다. “아니 요율을 동사무소 직원 마음대로 사람 따라 정하느냐”고 따졌다. 결국 연금 가입을 안했는데 최근 보건복지부 장관 명의의 통지서가 왔다. 9월까지 가입을 유예해줄테니 10월부터 가입하라는 내용이었다.

“신문 방송을 보면 각종 연금이 다 바닥이 난다는데 어떻게 국가를 믿고 돈을 냅니까. 연금 낼 형편도 안되지만 된다 해도 65세 이후에 얼마나 받을 지 불안해서 가입 안 할 겁니다.”

이광일·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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