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대국' 일본이 달라진다

05/04(화) 16:29

4월27일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이 일본 중의원을 통과한 직후 중국 외교부는 미리 준비한 논평을 통해 강한 어조로 비난을 표했다.

논평은 “시대의 조류에 맞지 않으며 (극동)지역의 안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특히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대만을 ‘주변’ 범위에 포함시키는 데 대해서는 단호하게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북한은 가이드라인 관련법안 심의 과정에서부터 ‘전쟁법안’ 이라고 강력히 비난해 왔다. 러시아 외무부도 29일 중국만큼 강한 어조는 아니었지만 우려를 제기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언론의 대서특필에도 불구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유보한 채 침묵을 지켰다.

이런 차이는 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의 궁극적 겨냥점인 미일군사동맹의 강화에 대한 시각 차이에서 비롯한다. 또한 미군에 대한 ‘후방지역지원’ 형태로 결과적으로 동북아 지역에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이 증대하는 데 대해 한국 정부가 ‘예스(YES), 노(NO)’를 분명히 할 수 없는 애매한 입장이 드러났다.

‘일본유사시’에서

‘극동 유사시’로 범위 넓어져

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은 주변사태법안과 자위대법개정안, 미일 물품·용역상호제공협정(ACSA) 개정안 등이다. 중의원을 통과한 즉시 참의원의 심의가 시작됐으나 헌법상 법안은 중의원을 통과한 1개월 후에는 참의원 심의 결과에 관계없이 발효하기 때문에 사실상 확정됐다.

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은 미일 안보조약에 바탕한 가이드라인의 효율적 이행을 위한 일본 국내법이다. 78년 매듭된 구가이드라인은 미소 냉전하에서 소련군에 의한 일본 침공, 즉 ‘일본 유사시’를 주안점으로 했다. 따라서 그 내용도 일본이 직접 무력 공격을 받는 경우에 대비한 미일 군사협력을 규정했다.

그러나 소련 붕괴와 냉전 종식으로 일본이 직접 공격을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진 대신 일본 주변에서는 한반도 사태 등 지역분쟁의 가능성이 오히려 높아졌다. 미일 양국은 96년 안보공동선언으로 냉전 이후 미일 군사동맹의 새로운 자리매김을 했고 이에 따라 97년 매듭된 신가이드라인은 새로운 환경에서의 양국 방위협력의 모습을 규정했다.

구가이드라인은 미일안보조약 5조가 규정한 ‘일본 유사시 미군과 자위대의 협력·공동작전’에 치중했다면 신가이드라인은 안보조약 6조의 ‘극동 유사시’ 대응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3개 법·협정안은 바로 이 신가이드라인에 따른 것. 핵심인 주변사태법안은 ‘주변 사태’가 발생해 미군이 출동할 경우 일본 자위대가 미군에 대한 ‘후방지역지원’, 즉 물품과 용역의 제공을 맡는다는 것이 골자이다.

구체적으로 급수·급유·식사제공 등 보급은 물론 인원과 물자의 수송, 장비 수리·정비 및 정비용품 제공, 의료·통신 지원, 공항·항만의 제공, 기지의 폐기물 수집·처리 및 전기 공급 등 자위대의 적극적인 미군 지원을 규정했다. 또 자위대가 공해상에서 미군 수색·구조 활동에 나서도록 하고 미군지원의 방안으로 지방자치단체나 민간의 협력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자위대가 제공할 수 있는 모든 물자와 용역으로 미군을 지원하도록 했지만 미군의 무기·탄약 수송은 가능해도 자위대의 무기·탄약을 미군에 제공하는 것은 금지했다. 또 전투발진하는 미군기에 대한 정비·급유도 금지했다.

자위대법 개정안은 위험지역의 일본인 구출에 정부전용기와 자위대 항공기만 이용할 수 있었던 것을 자위대 함정과 함재헬리콥터도 이용하도록 했다. 또 이같은 일본인 구출활동에 대한 무력 공격으로부터 장비와 인원을 보호하기 위한 자위대원의 제한적 무기 사용을 허용한 것이 골자다.

ACSA개정안은 이같은 주변사태법안의 내용에 맞추어 그동안 평시 공동군사훈련과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 한정됐던 자위대 물품·용역의 제공을 ‘주변사태’ 로까지 확대한 것이 내용의 전부다.

‘주변’은 어디까지를 말하나

주변사태법안 1조는 ‘주변사태’에 대해 ‘그대로 방치하면 우리나라에 대한 직접 무력공격에 이를 우려가 있는 사태 등 우리나라 주변 지역에 있어서 우리나라의 평화 및 안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태’ 라고 정의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주변 사태’가 사태의 강도에 따른 개념일 뿐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같은 일본 정부의 태도는 60년 미일안보조약 6조의 ‘극동’ 범위에 대해 ‘필리핀 이북, 또 일본및 그 주변의 지역으로 한국·대만 지역을 포함한다’는 정부통일견해를 밝혔던 때와는 크게 대조된다.

연립정권의 한 축을 이끌고 있는 자유당의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당수는 “지리적인 개념이 될 수 밖에 없으며 극동지역, 즉 한반도와 대만해협을 포함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이런 견해를 공식적으로 밝힐 수는 없다.

무엇보다 중국 때문이다. 중국은 미일 군사동맹이 대만해협의 사태에 적용될 가능성을 강하게 경계해 왔다. 미국이 대만해협 사태에 군사개입을 할지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공연히 일본이 대만해협을 ‘주변’에 포함시켜 중국을 자극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미국은 대일 군사동맹과 대중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동시에 유지하고 있으며 대만문제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중국의 우려는 ‘주변’의 지리적 개념 문제 뿐이 아니다. 법안에 명기하지는 않았지만 일본 정부는 ‘주변사태’의 내용을 6가지로 예시한 바 있다. ①일본 주변에서 무역분쟁이 발생한 경우 ②일본 주변에서 무역분쟁 발생이 임박한 경우 ③무력분쟁은 중지됐으나 질서가 회복되지 않은 경우 ④어떤 나라 정치체제의 혼란으로 대량의 난민이 발생, 일본 유입 가능성이 커진 경우 ⑤어떤 나라의 행위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평화에의 위협·침략으로 규정돼 경제제재의 대상이 된 경우 ⑥어떤 나라에서 내란·내전이 발생, 국제적으로 확대되는 경우 등이다. 중국은 대만과의 무력분쟁이 내전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⑥항에 대해 특별한 우려를 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①②③④항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한편으로 한반도에서는 ①②③④⑤⑥항이 모두 일어날 수 있고 러시아도 ④⑥항에 해당하는 사태를 상정할 수 있다. 가이드라인 관련법안에 대한 이들의 우려는 미군이 개입할 경우 일본이 후방지원을 명목으로 함께 개입하는 사태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애매한 ‘후방지역 지원’

최대한의 활동영역 확보

자위대의 미군 군수지원 및 수색·구조활동의 무대인 ‘후방지역 지원’도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노로타 호세이(野呂田芳成) 방위청 장관은 “병참(Logistic Support)을 뜻하는 후방지원과 후방지역(Rear Area Support)에서의 지원을 의미하는 후방지역지원은 전혀 다른 뜻” 이라며 “실제 행동은 같더라도 지역적 개념의 유무에서 전혀 다르다”고 강조했다.

주변사태법안 3조는 ‘후방지역’을 ‘우리나라의 영역 및 현재 전투행위가 행해지지 않고 자위대의 활동기간중 전투행위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인정된 우리나라 주변의 공해및 그 상공’ 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후방지역’이 지리적 개념이라고 하더라도 실제로 미군의 요청에 따라 일본 정부가 지원계획을 세울 때 지역범위를 명시할 때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전투행위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인정할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후방지역 지원’ 이라는 애매한 표현은 뒤에 언급할 무기사용 문제와 마찬가지로 헌법 테두리안에서 최대한의 활동 영역을 확보하기 위한 고심의 결과다. 헌법 9조는 전쟁포기와 무력행사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또 일본정부의 헌법해석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금하고 있다.

‘후방지원’은 그 자체가 전쟁행위일 수 있으며 따라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된다. 이를 피하기 위한 것이 ‘후방지역 지원’ 이라는 애매한 용어이다.

‘후방지역 지원’은 전후방이 따로 없는 현대전의 특성을 감안하면 더욱 애매해진다. 현재 유고에 대한 북대서양조약(NATO)군의 폭격에서 도대체 어디가 후방인지 가리기는 어렵다. 또한 인원·장비의 수송과 물자의 보급은 현대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요소여서 미사일 등을 이용한 ‘보급로 차단 공격’은 상식이 돼 있다.

법안 5조는 ‘지원활동에 임한 자위대는 부근에서 전투행위가 일어나거나 그럴 가능성이 있을 때는 즉각 수송을 중지하는 등으로 위험을 회피해야 한다’고 현장에서의 임기응변을 강조하고 있으나 수송함·수송기의 속도를 전투함정·전투기와 비교할 때 이런 임기응변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후방지역 지원’을 명목으로 일본 자위대가 사실상 극동지역 분쟁에 참전하려는 것이라는 주변국의 경계는 물론 결국은 전쟁으로 휘말려들게 된다는 일본 국내의 우려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 걸음 더 나간 ‘무기사용’

한편으로 주변사태법안의 ‘후방지역 지원’은 동법안 11조나 자위대법개정안의 ‘무기의 사용’ 과도 상충한다.

두 법안은 ‘자위관은 자신과 관계자의 생명·신체를 지키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필요하다고 인정될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합리적 판단에 따른 한도내에서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물론 이런 자위대의 무기사용은 형법에 따른 ‘정당방위’와 ‘긴급피난’을 제외하고는 신체에 직접 위해를 가할 수 없도록 제한돼 있다.

이같은 자위대의 무기사용권은 기본적으로 자위대법 95조를 원용한 것이어서 법안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인명보호 뿐만 아니라 장비보호를 위한 무기사용으로도 확대해석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91년 PKO파견을 앞두고 자위대의 무기사용권은 ‘자기보존을 위한 자연권으로 헌법이 금지한 무력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번 가이드라인 관련법안 심의에서의 일본 정부 통일견해는 ‘무력행사에 해당하지 않는 무기사용은 자연권적 권리에 한정되지 않는다. 자위대법 95조의 무기사용은 극히 수동적이고 한정적인 필요최소한의 행위로 우리나라 영역 밖에서 행해져도 무력행사에 해당하지 않는다’로 한걸음 더 나아갔다.

자위대의 무기사용권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함정이 공격받을 경우이다. 국제법상 군함은 치외법권적 영토주권이 인정되는 특수지위를 갖고 있다. 미군의 후방지원이나 일본인 구출을 위해 파견한 해상자위대 함정이 공격받을 경우 정당방위를 위한 무력 행사는 당연하다.

그러나 함정 공격행위가 일본 영토에 대한 직접 공격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그 반격은 헌법 해석상 인정된 개별적 자위권의 행사에 해당한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 대규모 반격전을 전개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일본 정부는 일본 영토에 대한 미사일 공격 등에 대해서는 예방을 위한 사전공격도 가능하다는 헌법해석으로 기울어 가고 있다. 이 또한 주변국의 우려를 살 만하다.

군사행동 사후승인

주변사태법안은 자위대의 미군 후방지역 지원활동과 구조·수색 활동은 사전에 그 계획을 국회에 알리고 승인을 받아 실시토록 정하고 있다. 기타 자치단체나 민간의 협력은 국회 보고 사항이다.

그러나 승인 사항인 자위대의 활동에 대해서도 긴급시에는 사후 승인이 가능하도록 했다. 사후에 국회가 승인하지 않을 경우 즉각 미군 지원 및 수색·구조활동을 중단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이는 국회의 세력 균형으로 보아 사실상 무의미한 조항인데다 설사 국회가 거부하더라도 대미 신뢰의 문제와 인도적인 문제 때문에 자위대가 즉각 손을 떼기는 어렵다.

결국 중요한 것은 건전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일본 정부의 존재, 정부의 오판을 견제할 수 있는 국회의 존재, 그 바탕인 건전한 일본 국민의 의식이다.

북한·중국 겨냥한 안보체제

가이드라인 관련법안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요청을 일본이 수락한 것으로 동북아에서의 미군 전력 증강을 의미한다.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총리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핵심조항의 하나였던 ‘경제제재시의 공해상 선박검색’을 보류하면서까지 서둘러 매듭지은 것도 미국에 들고갈 선물보따리이기 때문이다.

미일 안보체제는 냉전 당시 ‘대소 포위망’의 하나로 출범했다. 그것이 냉전종식으로 희석되기는 커녕 오히려 강화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유럽에서 NATO 기구가 확대되고 ‘지역분쟁의 적극 개입’은 물론 NATO 이외의 지역분쟁에도 개입한다는 신전략과 시점상으로도 비슷하다.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의 1극지배 의도가 유럽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관철된 셈이다.

이같은 미일안보체제의 강화가 우선은 북한, 장기적으로는 중국 봉쇄를 겨냥한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바로 이런 점이 한국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든다. 흔히 거론되는 한미일 3각 안보체제는 한미 방위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을 축으로 한 것이다. 미일안보체제의 강화는 우선 간접적으로 한국이 든든한 후방지원 세력을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주변사태법안의 내용과 주일미군과 자위대의 공동훈련의 기본 작전구상 등으로 보아 한반도 유사시 일본 자위대는 전면적으로 미군의 후방 지원에 나서게된다. 한미 연합전력은 미국을 제외하고 동북아 최대 해상전력을 갖춘 일본 자위대의 군수·보급으로 전쟁의 젖줄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동북아 지역에서 일본의 군사역할이 커지고 자위대가 활동 범위를 넓히는 결과를 그저 지켜볼 수만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이는 단순히 과거사의 앙금이 남긴 국민 감정의 문제만은 아니다. 통일 한국을 시야에 넣을 때 이미 막강한 전력을 확보한 자위대의 활동범위 확대는 미래의 위협일 수 있다.

지나친 우려 일색도 물론 금물이다. 별로 현실감은 없지만 일본의 재무장·군사대국화와 관련, 최대의 방패막이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공교롭게도 미일 안보체제이다. 마찬가지로 이제 막 21세기의 새로운 동반자 관계에 접어들고 있는 한일 양국이 신뢰의 틀을 굳혀 나가는 것은 ‘일본 위협’을 막을 유력한 수단이다.

급변하고 있는 동북아의 새로운 안전보장 질서에 대해 장기적으로 검토하고 그 하나로 ‘일본 문제’를 자리매김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이종재·경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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