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배칼럼] 고향을 잃을때

05/04(화) 19:13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시 근교 리틀턴 컬럼바인 고교 총격사건이 발생한지 1주일이 넘었다. 1주일내내 미국 언론은 기사, 논평, 심층분석을 통해 이 사건을 조각냈다. 클린턴의 스캔들, 코소보 사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컬럼바인 사건’에는 오늘의 미국이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건 학교와 학생을 어떻게 총기폭력으로부터 구해내느냐는 것이다. 그건 TV나 영화의 폭력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것이다. 그건 인터넷의 상호의견 교환이 폭력을 조장하는 한 요인이 되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또한 살인을 부추기는 록 음악은 책임이 없는가의 문제를 던져준다.

그건 바로 오늘 미국 문화의 정체성이 무엇이냐에 대한 비난이요, 질문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에게도 점차로 늘어나는 학교의 ‘왕따’ 현상과 지방도시의 비디오 액션 범죄의 모방이 늘고 있는데 대한 대책을 생각케 한다.

‘리틀턴 사건’ 기사중 가슴에 와닿는 뉴욕 타임스의 한 기고문이 있다. ‘리틀턴의 어제와 오늘’이란 글에서 시나리오 작가인 스테판 쉬프(‘태양의 심연’‘진짜 범죄’의 각본자)는 ‘미국 학교범죄중 최악’인 이 사건이 벌어진 리틀턴이란 마을과 그 마을의 성격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미국인에게는 ‘고향’이라는 말이 없다. ‘홈타운’이란 말은 있다. 그러나 우리의 ‘고향’이나 독일어의 ‘하이마트’(Heimat)라는 것과는 다르다. 홈타운은 어렸을적 지냈던 곳, 지금 있는 곳에 오기전 마을의 이름일 뿐이다.

쉬프는 늘 질문을 받았다. “어디서 왔소.” 그늘 리틀턴(Little town)을 누가 알겠느냐 싶어 “콜로라도의 ‘작은마을’(Little town)에서 왔다”고 대답하곤 했다. 사건발생후 ‘작은 마을’은 진짜 ‘리틀턴’으로 이제 알려졌지만.

쉬프는 60년대에 이 마을 최초의 소아과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디트로이트에서 왔다. 그때 컬럼바인 고등학교는 없었다. 그는 그옆에 아러파회 고등학교를 다녔다. 지금의 컬럼바인 학교와 상가가 들어선 중심가는 관목이 들어찬 숲이었다.

중산층, 약간의 빈곤층이 동부에서 안락을 찾아 비폭력 교실을 찾아오는 이 마을에는 어제고 오늘이고 변하지 않은게 있다. 고등학교는 백인, 신교도들의 자제들중 운동선수들이 작은마을을 지배하는 곳이라는 점이다. 운동선수들이 교외 공립고등학교 ‘왕좌들’이라는 사실은 ‘미국의 오늘과 어제의 문화’다.

쉬프는 자신의 이 ‘작은마을’에서의 생활은 이들 ‘왕좌’들의 그림자에 가려져 사는 것이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영화배우, 직업운동선수, 화려한 재벌들이란 ‘영웅’들의 그림자속에 산다.

쉬프의 10대 우상은 ‘와일드 원’에 나온 검은 점퍼에 모터사이클을 탄 말론 블랜드였다. 그리고 속으로는 ‘왕좌’들을 말론 블랜드처럼 싹 쓸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이 무모하다는 것임을 그는 깨달았다.

변화가 없는 리틀턴이란 장소와 그 마을의 성격은 그곳에 익숙해 질 때에야 고향처럼 가슴에서 그 존재를 지워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감수성이 있는 학생이라면 자기가 자란 곳과 그 곳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영화배우들이 영화에서 죽는 것과 찐짜로 사람이 죽는 것은 명백히 다른 것을 알게되는 것처럼.

운동선수·‘왕좌’들에 대한 저주,‘왕따’당했다고 분노한 검은 트렌치 코트들이 기단단총, 자동소총, 권총과 파이프 목탄을 만들어 “학교를 날려보내겠다”고 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쉬프는 결론짓고 있다. “결국 비극의 주인공이 된 두 학생은 그들이 새로 이사와서 자란 곳, 그곳의 성격에 대한 인식 부족과 자기정체성을 찾지 못한데 있다.”

말을 바꾸면 ‘컬럼바인 사건’은 “학교가 도덕교육의 중심”이며 “고향을 잃어버릴 때 사람은 인격을 잃고 파멸케 된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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