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ME] '나만의 세대'만 있을 뿐이다

05/12(수) 13:43

초록색 머리카락, 컴퓨터게임, 디스코텍, 휴대폰, 원조교제, 교사 폭행. 70년 이후 일본에서 태어난 이른바 「미 제너레이션(Me Generation)」의 삶이다. 무례하고 말썽만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그러나 「혁명」이다. 일본을 바꾸고 싶다는 목소리인 것이다. 재미와 스릴에 경도된, 지극히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는 이들 일본의 젊은이들이 획일적인 일본문화를 바꿔놓으려 하고 있다.

일본 전체인구의 3분의1을 차지하는 4,400만 젊은이들은 「주니어 베이비붐 세대」. 2차 세계대전 직후 베이비붐 세대의 2세들이다. 전후의 가난에 시달리며 성장했던 부모들과 달리 70년 이후에 태어난 아기들은 풍요와 번영 속에서 자라났다. 주니어 베이비들은 세계2위의 경제규모를 자랑했던 70~80년대 일본경제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풍요의 시대를 구가했던 이들 젊은이들 가운데 비교적 「나이많은 집단」인 70년대 초반 출생자들은 부모들이 겪었던 가난의 사슬에 아주 잠깐 붙들려 있었다. 20대 중반 이상의 일본 젊은이들은 어렸을 적에 컬러TV나 자동차와 같이 가족 모두가 필요로 하는, 그리고 지금은 어느 가족이나 당연히 갖추고 있는 것을 간절하게 갖고 싶어했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보다 앞서 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유년기에 갖고 싶어했던 것은 냉장고나 세탁기같은 「생필품」들이었다.) 이러한 가족 모두의 소망이 「내 소망」으로 바뀐 것은 80년대 들어서였다. 일본의 꼬마들은 80년대부터 야구글러브나 워크맨, 컴퓨터게임기같은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을 원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이들이 나이를 먹어가면서부터다. 주니어 베이비들이 훌쩍 자라났을 때 일본경제는 거품이 꺼지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학교를 중퇴하고 직업전선에 뛰어든 일본 청소년들은 하강곡선을 그리던 일본경제를 쓰라리게 체험해야 했다. 일본 젊은이들이 부르짖은 「혁명」은 따라서 선택이 아니라 필요가 돼버렸다.

96년 16세부터 18세까지의 일본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85%가 부모의 의견에 정면으로 반항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질 수 있다고 대답했다. (같은해 미국에서는 16%만이 동일하게 응답했다.) 청소년의 「반항의 자유」는 명백히 일본경제의 부흥이 빚은 대가이다. 밤늦도록 일해야 했던 탓에 함께 놀아줄 시간이 없었던 아이들에게 장난감만 잔뜩 안겨준 부모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엄청난 세대차이와 맞닥뜨려야 했다. 『일본의 청소년들은 어떻게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지 모른다』는 한 사회학자의 지적대로, 개미같이 일한 일본 부모들의 땀은 외려 자식들의 외로움과 고립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 청소년이 된 자녀들은 자라나면서 학습하지 못한 사회성 때문에, 일본경제의 하강기류 때문에, 따라잡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바뀌는 유행의 문화 때문에 나름의 생존방식을 익혀야 했다. 이들은 「우리」 안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는 대신 「나」 드러내기를 대안으로 선택했다.

토시노 가와세(24)는 열일곱살 되던 해에 학교를 그만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순간부터 그는 이른바 「왕따」였다. 모두가 좋아하는 검은 양말 대신 빨간 양말을 신는 등 「튀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학교를 그만둔 가와세는 식당 웨이터, 신문배달원등 닥치는 대로 몸을 던졌다.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쥔 그는 올해 졸업을 앞둔 대학 4학년이 됐다. 『절대로 일본기업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그는 자신의 결심을 이렇게 설명한다. 『용납할 수 없는 규칙을 준수해야 하는 세계는 학교만으로 충분하다』

료 오가와(24)와 요수케 신도(23)는 5년전 「이퀄기획」이라는 작은 회사를 세웠다. 신도의 침실에 회사 사무실을 차린 이들은 비디오카메라와 디지털편집 컴퓨터프로그램을 사용해서 단편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의 기술은 웹사이트 구축으로 발전했고, 컴퓨터를 이용한 광고제작에까지 이르렀다. 올해 4명의 직원을 두게 된 「두 사장님」은 이제 하루 평균 16시간씩 일한다. 몇년동안 적자를 냈던 이들의 회사는 올해 미미하나마 흑자로 돌아섰다.

료타 코이케(18)는 열여섯살 때 학교를 그만뒀다. 워크맨을 들으면서 수업을 자주 빼먹곤 했던 코이케는 어느날 수업시간에 졸다가 교장실로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교장실로 가지 않겠다며 반항하는 코이케를 한 교사가 밀쳤다. 료타는 벌떡 일어나 자신을 「건드린」 교사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그길로 퇴학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코이케는 언젠가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한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직업은 월급쟁이』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드는 료타처럼 오늘날 일본 젊은이들은 회사원을 극도로 혐오한다. 월급쟁이 사원에 대한 일본 젊은이들의 극단적인 경멸은 그러나 「뚜렷한 주관」이라는 동기에서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거품이 빠진 경제의 여파로 일본의 대기업들이 대대적인 감원에 나섰기 때문이다. 소니나 NEC같은 일본의 대기업들은 올해 신규채용 사원의 수를 대폭 줄였다. 일본의 젊은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은 어쩌면 「할 수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전통을 따르는 젊은이도 있다. 사쿠라코 쓰치야(29)는 가업을 이어받아 양조사업에 뛰어들었다. 쓰치야는 일본 내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양조업자다. 남자후계자가 없어 1873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돼온 가업이 끊길 위기에 처하자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던 쓰치야는 주저없이 양조업에 뛰어들었다. 전통을 잇겠다는 쓰치야의 의지는 그러나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양조업을 맡은 희귀한 여성이라는 「혁명」으로 이어졌다.

서른이 채 안된 「틴스네트워크십」의 사장 히데야키 모리타(29)의 목소리. 『나는 사장이 되고 싶다. 그렇지만 내가 기업에 입사해서 사장이 되기 위해서는 환갑까지 기다려야 한다』 당장 사장이 되기 위해서 직접 회사를 차렸다는 히데야키는 「지금」의 변화를 원하는 일본 젊은이들의 자화상이다. 이 성급한 일본 젊은이들은 개성과 창의성 대신 획일성을 부추기는 일본의 교육제도, 평생 한 직장에 몸과 마음을 바쳐야 하는 일본 사회의 풍토를 뿌리째 뒤흔들기 시작했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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