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 고향엔 아직도 어린 내가 뛰어놀고...

05/04(화) 16:56

67년 이스라엘과 아랍과의 7일전쟁때의 일이다. 당시 미국에 있는 많은 유태인들은 조국을 도우기위해 이스라엘로 갔는데 아랍인들은 귀국하려 하지 않았다. 예비군훈련 강사들이 애국심을 강조하면서 많이 인용했던 일화다.

그러나 이미 이보다 17년전 한국전쟁때 일본에 유학가있던 대학생과 재일동포 321명(이중 학생 110명)이 자진해서 조국을 구하려고 참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름하여 ‘재일한국학도의용군’. 와세다대, 게이오대, 메이지대, 중앙대등 관동의 대학생들과 관서의 동포청년들 1,000여명이 지원했으나 미극동사령부에서는 수송등의 문제로 321명만 선발했다. 이들중 1진 74명은 계급도 없이 미군배에 태워져 50년 9월15일 곧바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됐다.

이들은 11월에 국군에 편입돼 동부·서부전선을 타고 북한으로 진격했고 이들중 37명은 간부양성인 종합학교에 들어가 장교로 70년대까지 현역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당시 게이오대학 유학중 학도의용군에 참가해 소대장으로 지휘했던 양태근(73·서화대전 초대작가)씨의 삶의 여정이 ‘끝없는 도전의 세월’(도서출판 홍진刊 8,000원)이라는 자서전 형태의 책으로 출간됐다. 물론 이 책에는 학도의용군에 대한 내용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다. 함남 함주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씨름과 싸움꾼이 되어가는 과정, 서울유학후 고향에서의 은행원시절, 데이트중 소련군의 횡포를 보다못해 강물속에 처넣고는 3·8선을 넘어 남하해야 했던 해방전후의 이야기가 개인사와 더불어 재미있게 쓰여 있다.

이어 서울대상대 입학후 찬·반탁싸움에 회의를 느껴 일본 밀항을 시도하다 잡혀 되돌아왔던 일, 결국 9번만에 밀항에 성공해 박열선생의 도움으로 게이오대학에 입학했던 일들도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어렵게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으나 6·25가 터져 학도의용군을 조직, 미극동사령부에 끈질기게 참전하게 해달라고 졸라 결국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하게 됐다. 양씨는 해방후 잠시동안 소련군의 만행을 겪었기 때문에 조국이 이들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것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해 참전한 것이다.

1년여의 전투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오대를 졸업하고 와세다대학원에서 당시에는 생소했던 노동과 사회복지를 전공했다. 귀국후 59년부터 전공을 살려 교통부·노동부 산업안전국장, 부산 한독직업훈련원 원장등 26년간 사회복지관련 공무원으로 종사했다.

그는 초등학교시절부터 뛰어났던 서도의 맥을 살려 지금은 국전 초대작가로 있다. 그는 지난 3년간 대학노트 10권에 빽빽이 삶의 여정을 정리한뒤 서문에 이렇게 썼다. “눈을 감으면 고향 하늘은 오늘도 푸르고 지금도 어린 내가 살고 있는 느낌이다. 이제는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고향집. 언제나 고향은 그리움으로 나를 사로잡는다. 세월이 갈수록 기억 저편으로 지워져간 세월들속에 옛일들이 어제일처럼 선명히 다가와 붓을 들지 않고는 견딜수 없게 나를 괴롭혔다.”말그대로 책의 많은 부분이 어릴때의 고향이야기에 할애했고 26년간의 공직생활은 비교적 간단히 처리됐다. 역시 고향은 삶의 모태인가 보다.

남영진·주간한국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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