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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 문명의 수수께끼[ 얼음속에서 드러난 파지리크 문화

1993년 여름. 러시아 남부 알타이산맥 남단의 중국·몽골·카자흐스탄 접경지역에 가까운 우코크 평원에서 무덤 하나가 발굴됐다.

90년부터 발굴을 주도한 러시아 고고·민속학연구소 연구팀은 깊이 6㎙를 파들어간 끝에 마주친 관 앞에서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관 내부가 얼음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었던 것이다. 뜨거운 물로 얼음을 다 녹여내자 사후 처음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관의 주인공은 놀랍게도 흰 피부를 지닌 젊은 여성이었다.

이 미라의 존재가 공표되자 세계 고고학계는 놀라움에 휩싸였다. 머리 장식과 복식은 물론 팔과 손에 한 문신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연구 결과 이 여성은 사회적 신분이 높은 무당(샤먼)이었으며 몽골인종의 특징이 섞인 유럽인종으로 밝혀졌다. 사망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2,400년 전으로 추정됐다. 시신은 방부처리돼 있었다. 배를 가르고 내장을 꺼낸 뒤 풀이나 양털로 채우고 말총으로 꿰맸다. 두개골에는 구멍을 뚫어 뇌를 꺼낸 다음 흙과 양털, 풀로 채웠다. 시신의 부패를 최대한 막기 위한 조치이다.

이 미라는 말 등 각종 부장품과 함께 기원전 6∼2세기에 산악 알타이 지역에 존재한 파지리크 문화의 실체를 여실히 보여준다. 파지리크 문화는 중앙아시아 초원지역에서 이주해온 강력한 전투 기마 유목민들이 현지 주민을 정복하면서 이루어졌다. 정복자들은 고대 앗시리아, 미디아, 이란 계열에서 온 문화를 전파했다. 이 과정에서 정복자와 알타이 원주민의 상호 결혼 등으로 두 전통이 융합되면서 파지리크 문화가 형성됐다.

이 발굴은 한국 고고학계에도 엄청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95년 4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은 이 미라와 발굴품 등을 들여와 ‘알타이 문명전-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고고학계의 관심은 이 지역 문화와 고대 신라의 연관성 때문이었다. 우선 무덤 양식이 나무로 묘실을 만들고 그 안에 관을 안치한 뒤 묘실 외부를 돌로 쌓아 올린 적석목곽분으로 신라 시대 특정 시기의 무덤 양식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고대의 무덤 양식은 문화권에 따라 쉽게 변하지 않는 고유의 양식을 채택하기 때문에 양식의 동일성은 같은 계열 문화권이라는 방증이 된다. 또 4∼5세기 150여년간 신라의 김씨계 왕조가 만들어 쓴 금관은 시베리아 무당(샤먼)의 나뭇가지와 사슴 장식을 양식화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저런 고고학적 증거를 들어 학계에서는 신라의 김씨계 왕조가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기마민족의 후예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알타이 일대 고대 문화에 대한 우리 학계의 관심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미라가 냉동고분에 잘 보존된 것은 ‘알타이적 현상’ 때문이었다. 이 현상은 알타이산맥 일대의 특이한 기후 때문에 고분 내부가 얼음으로 가득차는 것을 말한다. 고분이 발견된 우코크 평원은 해발 2,500㎙의 고원으로 겨울이 매우 춥고 짧은 여름에도 지면이 완전히 녹지 않는다. 이런 기후 조건에서 돌로 덮인 무덤 내부는 틈이 많기 때문에 그 사이로 물이 흘러들어가 묘실은 완전히 물로 채워진다. 물은 겨울에는 얼고 이듬해 여름에도 잘 녹지 않는다. 바로 이런 현상 때문에 미라와 부장품이 고스란히 보존된 것이다.

이광일·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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