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미라, 문명의 수수께끼] 한민족의 기원은 어디인가

우리의 조상은 어디서 왔을까.

아쉽게 한반도에서 고대 미라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시신을 그대로 매장하는 풍습인데다 부패하기 쉬운 자연조건 또한 미라의 발견을 거의 불가능한 일로 만들고 있다. 드물게 발견되는 미라들은 관에 석회를 발라 만들어전 천연미라지만 연대가 고작 500년전 밖에 안돼 민족의 시원을 밝히는 고고학적 가치는 거의 없는 편이다. 학계는 아예 포기, 유골의 발견이나 금석문, 민간에 남아 있을 사서를 발견하는 행운에 기대를 걸고 있다.

현재 우리 조상에 대한 기원은 설이 갈리고 있다. 정설이란 것도 시간에 따라 변해 시한부에 속하고, 같은 한반도내에 위치한 남북한에서 조차 다르다. 많은 유물 유적에 대한 해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신석기 시대 시베리아 바이칼호 근처의 동심원과 사냥표현의 암각화는 우리나라 울주군 암각화와 유사하다. 제천 황송리의 청동기 유적 지석묘에서 발견된 두개골을 복원하자 서양형이었다. 중국 산둥성 무씨화상석의 그림은 단군신화와 동일하다. 박혁거세는 스키타이 계통이고, 석탈해는 일본에서 건너왔고, 김수로왕비는 인도에서 왔다고 한다.

삼천포 앞바다 늑도에서 발견된 가야인의 인골은 생이빨을 뽑는 발치의 흔적이 보이는데 발치는 동남아와 일본의 성인의식이었다. 고구려의 장천1호분과 무용총 고분에선 서양형 얼굴의 무사가 등장하고 중앙아시아의 사마르칸트의 벽화에는 새깃털의 두건을 쓴 고구려 사신이 나온다. 또 북위 46~48도, 동경 118~120도에 위치한 내몽고에선 동명왕설화와 유사한 설화유적이 발굴됐다.

면역글로블린인 Gm유전자로 분석한 현재 한국인은 1차로 북방계 주민이 한반도에 내려온 후 중국 동북지방과 남부지방 주민과의 혼혈이 부단하게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사실을 근거로 한반도인은 동남아의 해류를 타고 남쪽에서 왔다, 중국의 강남에서 왔다, 북쪽 대륙에서 흘러들어온 유민이다 식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확인되는 사실은 적어도 한민족이 단일민족은 아니란 점뿐이다. 중국 한족, 선비족, 거란족, 실위(몽골의 선조), 숙진, 일본, 희랍계통의 스키타이…. 그만큼 고대사회는 역동적인 교류와 이동이 빈번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중 한반도에 누가 문화공동체를 형성했는가. 학계는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다. 현재까지 한반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때는 구석기 시대. 60년전만 해도 신석기 시대만 인정됐으나 구석기 유물이 쏟아져 역사가 그만큼 올라갔다. 북한과 국내 일부 학자들은 구석기 시대 한반도 거주인을 직계 조상으로 본다. 그러나 구석기 시대인들이 신석기인들과의 연결고리가 적다는 점으로 국내에선 소수의견에 흐르고 있다.

대체로 한반도에서 민족이 하나의 문화공동체로서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는 신석기로 본다. 이 시기 한반도에 폭넓게 거주한 흔적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 많은 민족들의 기원도 이 시대로 소급되고 있다. 이들이 청동기 문화를 갖고 온 이주민과 민족적 혈통을 이뤄, 민족의 기원이 됐다는 게 또한 정설이다. 그러나 각 시기 이들이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설은 분분하다.

고등학교 교과서는 “우리나라의 신석기 시대는 BC 60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고 적고 있다. 최근의 활발한 연구는 이를 2,000년이나 더 위로 올려놓았다.

이들의 기원에 대한 주장중 하나가 북방기원설. 주류를 이루는 시베리아기원설로 바이칼호 주변에 살던 고아시아족 또는 알타이족이 남으로 이동, 한반도에 정착했다는 주장이다. 중요 단서인 기하문 토기의 경우 바이칼 지역과 만주를 거쳐 한반도 서북부 남부 일본에 영향을 주고, 아무르강 유역의 그물무늬 토기는 북만주를 통해 한반도 동북부에 전파되게 된다.

그러나 고고학자 한영희씨에 따르면 신석기 한반도에는 뚜렷한 지방차를 보 이는 여러 문화가 형성됐다. 중국 동북지방, 발해연안, 청천강 이북에 위치한 신암리형 문화와 연해주 남부지방, 송화강과 아무르강, 한반도 동북지방에 위치한 서포항형 문화, 청천강 이남의 서부지방과 한강유역의 암사동형 문화, 그리고 반도의 남부지방, 일본 쓰시마섬, 서부구주지방에 위치하는 동삼동문화로 구분했다. 학계는 이들 문화를 동일종족의 것으로 보고 있어 결국 뿌리는 시베리아쪽에서 구해지고 있다.

이들은 기원전 10세기를 전후해 한반도와 만주일대에 정착해 들어온 예 맥 한(韓)족 등과 한민족의 혈연계통을 이루게 된다. 역사국가로 인정되는 고조선의 단군신화도 이주민과 거주민의 융합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들이 형성한 한민족은 물론 지금의 정치적 민족이 아닌 지리적 거주인에 불과했다. 북방계통에 속하는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된 주민집단이 한반도라는 지리적 영역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 시작한 것일 뿐이다. 이들은 이후 다른 집단보다는 더 높은 통합 가능성을 지니면서 이합집산을 거듭, 고구려 백제 신라, 통일신라와 발해를 거쳐 고려에 이르러 오늘날과 같은 한민족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북한은 민족의 외래기원설을 부정하고 자체형성설을 주장하고 있다. 북한 사회화학원 역사연구소의 ‘조선전사’는 우리민족의 특성을 오랜기간 이웃집단과 혼혈되지 않은 단일한 핏줄을 이어온 민족으로 결론짓고 있다.

“조선사람은 역사적으로 한(漢)족 퉁구스족 고아시아족 몽골족 일본족들과 이웃해 있으면서 자기의 고유한 인종적 특성을 형성·보존해왔다. 한족은 북중국인과 남중국인으로 구분되며 퉁구스족은 바이칼 인종집단에 속하고 고아시아족은 북극인종의 주류를 이루는데 한가각은 바이칼 인종집단에 들어가며 몽골족은 중앙아시아 인종집단에 속한다. 일본족은 동남아시아 인종집단의 한 갈래이다.”

북한은 주변 족들과 섞이지 않은 단일핏줄론을 위해 50만년전 구석기 검은모루 동굴유적 이래 한반도 거주인들이 원인-고인-신인-슬기인으로 진화 발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체사상의 시원을 삼기 위해 역사가 장외로 빠져나와 정치로 뛰어든 단면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 학계의 경험이기도 하다. 고구려를 연구하는 문화공학연구소의 연구실장 김용만(34)씨는 “단일민족, 민족적 순수성, 민족과 자주라는 정치적 명제앞에서 굴곡이 있었다”며 “물론 민족적 위기와 수난으로 점철된 현대사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김실장은 “우리의 과거사가 무조건‘컸다’로 보는 것도 문제지만 단일민족이라는 순수성만 내세우는 것은 ‘여기서만 살겠다’는 초조한 동아리 의식에 불과하다”며 역사를 공정하게 볼 것을 주문했다.

현재 중국은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으로 역사상 16개 민족이 한족 등 8개 민족으로 정리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발해를 포함, 소수민족의 국가까지 흡수해 자국 역사의 무대를 점차 넓혀가는 것이다.

이광일·주간한국부 기자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6월 제2830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6월 제2830호
    • 2020년 05월 제2829호
    • 2020년 05월 제2828호
    • 2020년 05월 제2827호
    • 2020년 05월 제2826호
    • 2020년 04월 제2825호
    • 2020년 04월 제2824호
    • 2020년 04월 제2823호
    • 2020년 04월 제2822호
    • 2020년 03월 제2821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 삼척 초곡항…파도 넘나드는 기암괴석 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