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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주최 세미나] 지식인들은 지난 100년간 어디서...

“박정희 대통령은 이 민족이 절망에 가까운 빈사상태에서 헤매던 1960년대초에 혜성과도 같이 나타나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하던 겨레에게 나아갈 길을 올바르게 제시해준 위대한 영도자이다. 그는 군인이었으나 인격과 통찰은 일찍이 역사상에 보기 드문 철학자요 사상가요 예언가임을 우리는 그의 탁월한 리더십에서 역력히 찾아볼 수 있다. 세기의 현자 플라톤은 그 옛날 이른바 ‘철인(哲人)정치’를 제창하였거니와 우리의 영도자 박 대통령이야말로 철인정치의 표본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71년 ‘한 대학 교수’가 발표한 글이다. 80년 신군부가 전두환 장군을 필두로 등장했을 때도 우리는 이런 유의 글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럴 때면 분노하기도 하고 “배울 만큼 배웠다는 놈이…” 하며 혀를 차기도 했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은 곧 지식인을 의미한다. 파란 많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그들은 인텔리겐차로 일컬어지기도 하고 지성인으로 불리기도 하고 ‘먹물’이라는 자조적인 이름을 얻기도 했다. 많이 배운 만큼 그들의 지성과 양심에 대한 사회와 역사의 기대는 결코 적지 않았다.

그들은 지난 100년간 우리 역사에서 어떤 역할을 했을까?

지난 4일 서울 이화여대 박물관 시청각실에서 열린 학술세미나 ‘한국 지성사의 회고와 성찰-근·현대사 100년을 중심으로’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자리였다. 교수신문사와 이화여대가 주최하고 삼성언론재단과 민음사가 후원한 이 세미나는 한국의 지식인이 한 세기 동안 어떤 모습을 보여왔는가를 처음으로 돌아봤다는 점에서 뜻깊은 자리였다.

교수들로 구성된 발제자들은 시대별로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4·19혁명에서 5·16쿠데타와 유신, 5·18광주민주화운동, 6·29선언, 김영삼·김대중 정권 등장까지 역사의 숨가쁜 대목마다 지식인들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그러나 이 토론회를 기획하는 데 참여한 장회익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의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자평과는 달리 이번 세미나는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우선 발제자들은 각 시기에 지식인이 일신의 영달을 위해 권력에 빌붙어 곡학아세 혹세무민 하는 양상을 구체적으로, 정확히 드러내 보여주지 못했다. 아니, 그러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거의 대부분의 발제자와 토론자는 실명을 밝히지 않은 채 지식인 집단의 전체적인 흐름만을 두루뭉실 하게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는 지식인들이 정확히 무엇을 잘못했고 무엇을 잘 했는지 알기 어려울뿐 아니라 앞으로 지식인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에 대한 전망제시도 약하다.

이 때문에 세미나 맨 처음 기조발제에서, 이상희 상지대 이사장이 일본 유학생 출신으로 광복군으로 활동하다 이승만·박정희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장준하(1915∼1975)와 엄혹한 냉전시대에 좌우의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지고 통일의 시대정신을 치열하게 표출한 시인 신동엽(1930∼1969)을 지식인의 전형으로 예시했건만 이렇다 할 감흥을 주지 못했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사이 정반대편에서 식민지배와 독재를 강화하고 미화하는 데 입과 몸을 바친 지식인들의 모습이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의 지식인들이 아직 살아 있고 때로 상당한 지위에 있거나 발표자들의 스승인 경우도 많은 현실에서 한계를 느꼈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굳이 이름을 들지 않더라도 그런 분들이 누구라는 것은 잘 아실 것”이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태도는 지식인 문제에 대한 우리

학계의 반성과 성찰이 그만큼 안이하다는 증거로 보인다.

이번 세미나의 한계는 지식인의 대상 설정에서도 드러났다. 발제자들은 교수나 학자를 주 지식인층으로 삼은 반면 사회·노동·문화운동에 투신한 지식인이나 언론인은 별로 또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일부 여학생 방청객 사이에서는 “왜 언론인 문제는 거론하지 않느냐”는 얘기가 흘러나왔을 정도다. 그들이 일제식민지 시기에, 박정희 독재정권때, 광주에서 수많은 시민이 무고하게 죽어갈 때 어떤 글을 썼는지, 그리고 그런 글에 대해 반성한 적이 있는지 등에 대한 평가가 전혀 없었다는 것은 발제·토

론자들의 지성사를 보는 시각이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이러저러한 세미나의 부실함과 관련해 토론회 장소가 이화여대 박물관 시청각실이었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 박물관은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김활란(1899∼1970) 박사를 기념하는 건물이다. 그런데 교육자이자 여성운동가로 많은 업적을 남긴 그가 생애의 일정 시기에 대표적인 친일‘지식인’이었다는 점을 언급한 발표자가 아무도 없었다는 점은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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