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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철도] 미리그려보는 선로위의 비행기

경부고속철도 중부종합건설사무소는 92년 6월 고속철의 첫 삽을 뜬 곳이다. 그로부터 꼭 7년은 웬 우여곡절이 그리 많았는지. 6월15일 서울에서 충북 청원군 강외면 연제리의 중부사무소까지 두시간 길은 과거를 기억해 내기에도 시간이 모자랐다. 흠잡힐 데가 또 없는지 신경이 곤두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장이 가까워질수록 그같은 상상력은 빈약함을 드러내고 우려는 기대로 바뀌어갔다.

고속철은 쉽게 본 모습을 토해내지는 않았다. 청주IC에서 조치원으로 10분을 달리자 오송들판을 25㎙높이로 가로지른 거대한 연제교가 나타났다. 연제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한참을 돌아들어가자 18만평 부지의 중부사무소에 중앙궤도기지와 건설시험소, 홍보관이 모여 있다.

현장은 정문의 ‘시험선개통 169일전’이라는 푯말이 사정을 말해주듯 모든게 분주해 보였다. 오는 12월 1일 개통될 연장 24㎞의 1차 시험선구간이 이곳서 시작되기 때문인데 노반공사는 거의 마무리짓고 궤도와 전기배선 공정이 한창이다. 5월말까지 4조2,000억원이 투입돼 33%의 진척률을 보이는 전체 공정중 이 구간은 거의 완공돼 당당한 모습이 마치 누구를 향해 시위라도 하는 것 같다.

첨단건설기술의 결정체, 웬만한 일은 기계가

중부사무소는 서울방향으로 17㎞, 대전방향으로 20㎞ 공사를 하는 곳이다. 더 중요한 일은 고속철도에 사용되는 300㎙장대레일을 이 궤도기지에서 제작·시공하는 것이다. 일단 25㎙짜리 레일 12개를 붙여 300㎙로 만든뒤 화차로 교량위로 옮기고 다시 용접을 한다. 덜컹거림 현상을 없애 승차감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양쪽 3만개씩을 이어나가면 서울~부산간 레일이 이음매 없이 하나로 연결된다. 4단계로 나눠진 이 공정을 불과 6명이 하고 교량위에도 공사 열기를 느끼기엔 사람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고속철이 첨단기술의 결정체로 웬만한 일은 기계가 몫을 해내기 때문이다.

실물크기 고속철도 모형에서 객실안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홍보관은 지난 2년간 17만명이 다녀갈 만큼 관광코스로 반응이 좋아 고속철의 신뢰를 높이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곳에 홍보관이 마련된 이유는 경부고속철이 이처럼 심하게 ‘노출’된 지역이 없기 때문이다. 서해대교가 완공되기 전까지는 국내 최장인 6.85㎞를 자랑하는 풍세교와 연제교가 바로 이웃에 있다. 총연장 412㎞의 경부고속철에서 터널이 차지하는 길이가 182.3㎞(44%)이다 보니 이처럼 시원하게 위용을 드러낸 구조물을 보기가 어렵다. 고속철이 난공사임을 알 수 있다.

최대 난공사는 대전~대구구간으로 서울~대구간 최장의 터널이면서 해발 1,000㎙이상 되는 황악산을 관통하는 상촌터널(9,975㎙)과 약 3㎞의 장대교량인 낙동강교다. 또 대전의 갑천에는 고속철이 호남고속도로 위로 지나가고 있는데 교각 1개의 폭이 8㎙로 다른 공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1㎞에 서울지하철 공사 500억원에 맘먹는 425억원이 드는 대공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부사무소에서 북쪽으로 40분 거리에 있는 가칭 천산역(천안+아산)역도 그 규모를 드러낸채 지금은 레일 깔 준비를 하고 있다. 작년까지 WJE사의 안전점검 후유증으로 교각만 덩그러니 서 있었지만 9월쯤이면 아치형 대형 지붕이 얹혀진다. 4층 높이에 길이 400㎙가 넘는 천산역에 예정대로 민자유치로 상가가 들어설 지 미심쩍었지만 34분에 서울~천안 왕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역세권 개발이 기대되는 대표적인 역이라고 박성기 건설과장이 말한다.

부실 오명 씻어내며 대역사 마무리에 구슬땀

사실 ‘고속철맨’만큼 자신들의 세계가 바깥에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이들도 드물다. 단군이래 최대 공사란 말처럼 박진감 넘치는 역사의 대현장이건만 세상의 사람들과는 대화의 공감대를 이루기 어렵다는 점이 큰 이유일 것이다. 대다수의 바깥 사람들에게 경부고속철은 한 말로 이 시대가 빚어 만든 부실의 대명사나 다름없던 탓이다.

그러나 현장의 고속철맨들은 이런 비난을 상식(常食)해온 사람치고 표정이 밝아보였다. PS공법으로 건설된 40㎙짜리 한 교량안으로 안내한 이광삼 홍보국장이 “천안에 나타난 신창원이가 혹시 이 속으로 들어올까 잠금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고 한 농담이 꼭 고속철이 생사의 위기를 무사히 넘겼기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우리나라 철길은 100년전 1899년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처음 생겨났다. 해방이 되고나서 이 나라 최초의 특급 열차로 그 이름을 날렸던 해방자호는 열세시간 증기를 내뿜고 서울로 달려오고 부산으로 지치듯 내려갔다. 그곳에 몸매 날렵한 새마을호는 시간을 네시간 반으로 줄여놓았지만 고속철도는 여기서 두시간을 더 줄여놓는다. 이 ‘선로위를 달리는 비행기’가 완공되면 두시간을 줄인 것 이상의 전혀 경험할 수 없는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그러면 떠나는 밤 기차를 보고 애수에 젖는 이도 찾아보기 어렵게 될 지 모른다.

이태규 주간한국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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