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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검찰 정치적 중립선언, 믿어도 될까요

검찰이 정치적 중립을 결의했다. 비록 전국 고·지검장 39명의 의견결집 형태이긴 하지만 검찰 조직 전체의 결의나 다름없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 결의는 검찰이 처한 위기상황과 직결된 문제였다. 정치적 중립을 빼고는 국민신뢰를 회복할 수 없으며, 국민신뢰와 지지를 받지 못하는 검찰은 존재할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이 조직 안팎으로 확산돼 있었다. 때문에 검찰은 조직 전체의 멍에처럼 여겨져온 정치적 중립 논란을 어떤 식으로든 매듭짓지 않으면 사정업무 등 본연의 임무조차 제대로 수행하고 평가받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대전법조비리 사건 이후 고가옷 로비의혹사건, 파업유도 발언파문 등 잇따라 터진 사건들로 인해 검찰은 만신창이가 돼버린 상황이다. 그 유일한 탈출구로서 검찰은 ‘정치적 중립 선언’을 택했다. 검찰의 한 고위 간부는 “어려움에 처한 검찰을 살리기 위해서는 국민 신뢰회복이 중요한데, 국민신뢰는 정치적 중립 확보없이는 얻기 힘든 것”이라며 “검사장회의에서도 정치적 중립문제에 대해 가장 오랫동안 격론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국민신뢰회복이 관건’ 판단, 중립 결의

그렇다면 그동안 검찰 내부는 과연 어떤 상황이었을까. 일선 지청에 근무하는 K검사의 한마디 푸념은 검찰이 직면한 위기를 함축해 전달하고 있다.

“형사 피의자가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K검사는 집에 모피코트가 몇벌이나 되느냐’는 거예요. 정말 황당하더군요. 전과가 많은 피의자라 그렇겠지 하고 자위를 해봤지만 검찰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됐는지 밤에 잠이 오질 않더군요. 아내는 ‘넉넉치 않은 월급에 잦은 야근에다, 주변 시선도 곱지 않으니 차라리 사직하고 변호사 개업을 하는게 어떠냐’고 보챕니다. 명예와 자긍심이 상처난 마당에 언제까지 검사생활을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서질 않아요.”

대전법조비리 사건, 심재륜대구고검장 항명파동, 소장검사들의 수뇌부 퇴진요구, 고가옷 로비의혹 사건,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의 파업유도 발언파문 등 올들어 숨돌릴 겨를도 없이 전개된 일련의 사건들은 검찰을 벼랑 끝까지 몰고갔던게 사실이다. 지하철노조 파업 당시와는 달리 파업유도 의혹에 항의하는 노동계 파업을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고 바라만 보아야 했다. 이형자리스트, 원철희리스트 등 정치권과 경제계에서 난무하는 리스트에 검찰 수사가 휘둘리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뿐인가. 파견 경찰관 복귀 지시 등 법규정 준수를 앞세운 경찰의 수사권 독립 공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해 ‘스타일’마저 구기게 됐다. 한 중견 검사는 “예전 같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원죄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번 사태의 뿌리는 DJ비자금 사건 수사유보 결정 아닙니까. YS가 임명한 김태정전장관이 검찰총장으로서 DJ 비자금 수사를 유보, DJ의 신임을 받은 뒤 세풍·총풍사건에다 정치인 사정수사까지 지휘하니 표적수사 시비가 일죠. 대전법조비리 사건때는 어땠습니까. 김전장관이 총장직에서 깨끗이 물러났다면 사태는 달라졌을 겁니다. 나중에 장관으로 임명되면 검찰 내외적으로도 떳떳했을 것 아닙니까. 개인적인 명예회복도 중요했겠지만 검찰에 부인이 관련된 사건 수사를 맡긴 것도 패착이었다고 봅니다.”

법에는 ‘중립’규정, 선언적 의미 강해

비단 이 검사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검사들은 수뇌부의 잘못된 처신과 관리로 검찰 조직 전체가 국민들로부터 매도당하고 불신받는데 심한 자괴감을 느껴온게 사실이다. 순수한 비리수사 사건에 대해서조차 ‘정부 여당과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식의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현실에는 탄식을 금치 못했다. 더욱이 파업유도 발언파문을 계기로 정치권에서 특별검사제 도입이 논의되고 여당이 원칙적으로 이 제도의 한시적 실시방침을 정하자 침통해 했다. 검찰이 수사한 사건을 믿지 못하겠다며 특별검사를 동원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질 경우 검찰에 대한 국민 신뢰 회복은 커녕 국민 불신만 가중될 것이라는 점은 누가 보아도 명약관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이 검찰 스스로가 자초했다는 점에서 일선 검사들의 어깨는 축 쳐질 수 밖에 없었다. 정치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검찰, 집권 여당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켜 주기 위한 수사를 하기도 했고 반대로 야당의 ‘표적수사’ 비난을 피하기 위해 특정 정치인의 비리사실을 감지하고도 수사를 하지않기도 했던 검찰이었다. 이 때문에 국민의 가혹한 비난을 감내해야 했고, 수뇌부의 처신과 판단에 대한 내부 불만도 확산됐다.

이같은 와중에 6월25일 열린 전국 검사장회의는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전국 고·지검장 38명 등 검찰 간부들은 이날 오전9시30분부터 오후6시10분까지 마라톤회의를 계속했다. 김장관과 박총장이 훈시에서 ‘혼신의 노력’ ‘추상같은 기강확립’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결연한 각오’ ‘성역없는 사정’ 등의 어휘를 사용한데서도 알 수 있듯이 회의 분위기는 비장하다 못해 결연함마저 느끼게 했다고 참석자는 전했다.

회의의 하일라이트는 오후에 진행된 자유토론이었다. 신승남대검차장이 주재한 토론에서 검사장들은 후배 검사들로부터 취합한 의견을 발표한 뒤 토론에 들어갔다. 촛점은 단번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 방안에 모아졌다. 대부분 “실추될대로 실추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중립을 천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쪽이었나 “정치적 중립을 선언할 경우 과거 검찰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지 않은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진환대검총무부장은 토의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번 회의는 검찰사(史)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정치적 중립 선언 의미를 부각시켰다. 그러면서도 “검사의 정치적 중립은 이미 검찰청법 제4조2항에 명시적으로 규정된 당연한 의무”라며 “검사 개개인의 중립 의지와 용기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정치적 중립 결의가 검찰수뇌부의 대국민선언형식 대신 박영렬 법무부공보관의 토의결과 발표 형식으로 공표된 것은 가급적 검찰 수뇌부의 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의견이 반영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정치적중립 지키려는 ‘의지’가 문제

그렇다면 검찰은 과연 정치적 중립을 지키려고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일까. 또 정치적 중립 약속은 지켜질 수 있을까. 검찰청법 4조2항은 ‘검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부여된 권한을 남용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도 이 조항을 근거로 한 ‘정치적 중립’을 강조했다.

정치적 중립은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직 전체의 항명으로까지 비쳐질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그만큼 검찰이 어느 때보다도 비장한 각오로 정치권, 특히 집권 여당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정보와 판단에 따라 수사를 하겠다고 나선 사실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내년 4월 총선 등 향후 정치적 일정을 감안할 때 집권 여당이 검찰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또한 검찰총장 등 검찰 간부 임명권자인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게 정치적인 부담이 되는 돌발 사건의 경우에도 ‘법대로’의 기치를 높히 들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그럴 경우 검찰의 정치적 중립 결의 의지는 또 한번 훼손되고 현재의 위기상황이 재현될 지도 모른다는 점을 검찰이 간과해선 안된다는게 법조계의 지적이다.

황상진·사회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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