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의 대구·경북 공략이 심상치않은 수준에 이르고 있다.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으로도 한나라당, 자민련 등 이 지역에 연고권을 주장하는 정당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는 평이다. 선봉장은 대구시지부장겸 달성군 지구당위원장인 엄삼탁 부총재. 여기에 최근 입당한 권정달 장영달 의원까지 힘을 보태고 있어 역량면에서는 어느 정당에도 뒤지지 않는다는게 국민회의의 주장.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이회창 한나라당총재와 등을 진 한나라당 김윤환 전부총재까지 변수로 부상했다. 그가 은근히 국민회의에 동조하는 주장들을 내놓고 있는 것. 만약 김 전부총재가 어떤 형태로든 국민회의와 손을 잡는다면 국민회의의 ‘동진’ (東進)정책은 전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엄 부총재 주도하에 국민회의가 새정부 출범이후 펼친 TK공략은 치밀하고 광범위하다. 초점은 인적 지지기반을 넓히기위해 사회 각 분야의 하부조직을 구성하는데 맞춰져 있다.

정치권 놀라게 한 기초의원 집단입당

시발은 청년조직이었다. 국민회의는 7월25일 대구시민회관 소강당에서 1,300여명의 회원으로 ‘청년연합회’ 를 발족시켰다. 현지 언론에서 “지역정서를 감안한다면 상당히 뜨거운 열기를 과시했다” 는 평가를 받았을 정도로 이날 행사는 성공적이었다는게 엄 부총재측의 설명. 회장으로는 포항·광주 프린스호텔을 경영하는 중견실업가 정창규씨가 선임됐고 대구 지역의 청년사업가 7명이 회장단에 합류했다.

이어 9월24일에는 대구시 기초의원 34명이 집단으로 국민회의에 입당, 여야 정치권을 놀라게 했다. 여당행을 택한 기초의원은 중구 5명, 서구 갑 6명, 서구을 1명, 북구갑 7명, 북구을 2명, 수성갑 2명, 달서 갑 4명, 달서을 3명, 달성군 4명 등. 당시 국민회의 대구시지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기초의원의 입당은 대구지역의 변화한 민심을 반영한 것” 이라며 “지역감정의 턱을 넘어 동서화합의 초석이 될 결단” 이라고 자랑했다. 국민회의는 이날 대구시 변두리에 옹색한 규모로 있던 시지부를 이 지역 신정치1번지로 불리는 수성구 범어3동 대로변 빌딩 5층으로 확장 이전, 집권당으로의 위상변화를 과시했다.

국민회의의 ‘작품’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11월27일의 대구시지부 후원회 발족식였다. 국민회의 지도부조차도 “그렇게 성황을 이룰 줄은 몰랐다” 고 감탄했던 이날 행사는 사실상 엄삼탁 지부장이 혼자 뛰어다니다시피 해서 만들었다는게 현지 관계자들의 일치된 목소리.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은행 본점 강당에서 열린 이날 행사는 국민회의 창당후 처음이었다. 당연히 관심의 초점은 후원회원의 면면과 규모에 모아졌다.

지역 명망가·유지 대거 후원회 가입

국민회의가 밝힌 후원회원수는 500여명. 이중에는 TK지역 유력기업인 150여명이 포함돼 있다. 우방 보성 화성 경일 동국 대백 갑을 금복주 동일 동서개발 태왕물산 신라섬유 성한직물 등이 대표적. 또 대구은행 삼아 이화상사 동일철강 회전니트 대원기계공업 가야기독병원 동진산업 알리앙스 서한 현대화섬 대한염직 삼공물산 삼원산업 삼화식품 삼아건설 협립 한성무역 등 중견업체 대표들이 후원회원으로 가입했다.

나머지 일반 후원회원들도 대부분 지역의 명망가, 유지라고 대구시지부측은 말했다. 엄 지부장이 “이제야 TK지역에서의 정당 균형발전이 가능해 졌다” 고 의미를 부여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국민회의가 이날 특별히 부각시킨 부분은 후원회장을 맡은 박용관 (주)성안회장. 시지부 관계자들은 “박 회장은 대구 경북 섬유산업협회회장을 맡고 있는 TK 상공업계의 거물” 이라며 “역대 정권의 정치참여 요청을 거절하다 이번에는 엄삼탁 지부장의 간곡한 요청을 받고 국민회의 지원에 동참했다” 고 설명했다.

후원회발족과 함께 정책·봉사후원회도 구성됐다. 여기에는 변호사 의사 치과의사 여성 문화예술계 교사 목사 교통 장애인 이용사 등 각 직능별 대표가 참여해 국민회의가 밑바닥 공략에 치중하고 있음을 알게했다.

행사에는 중앙당에서 동교동 핵심인 한화갑총무 김옥두 의원이 직접 참석, TK에 대한 애착을 보여줬고 이만섭 상임고문 권정달 장영철 의원 등 지역 연고가 있는 의원들이 총출동했다. 또 현지 국세청장 경찰청장 등 ‘실력자’ 들도 참석, 세과시에 일조했다.

엄 지부장은 후원회를 구성하기 위해 일주일에 3~4일을 대구에서 머물며 영입작업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특히 대구지역의 섬유산업이 큰 위기를 맞고 있는 점에 주목, 섬유업계 대표들을 집중적으로 접촉해 “후원회 구성은 국민회의가 돈을 모으는데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위기에 빠진 섬유업을 살리기위해 업계 인사들과의 교량을 만들려는데 주안점이 있다” 고 설득, 동의를 끌어냈다고 한다.

중앙당서도 인적·물적지원 아끼지 않아

가장 최근의 조직다지기 사례는 여성위원회 창립. 2일 대구 귀빈예식장에서 이뤄진 행사에는 여성위원 800여명이 참석했다. 초대 위원장으로는 이옥기 중앙부인회 대구시지부장이 선임됐다.

이처럼 대구지역의 조직이 하루가 다르게 확장되고 있는데 대해 국민회의 스스로도 놀라는 분위기다. 중앙당은 주역인 엄 부총재의 ‘가치’ 를 인정, 10여명의 부총재중 유일하게 여의도 당사에 별도의 방을 마련해 주면서 인적·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또 김대중 대통령도 취임직후 청와대에서 엄부총재를 독대, 동서화합을 위한 TK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격려했다고 한다.

청년·여성조직과 후원회 등 기간조직이 갖춰진 것에 때맞춰 국민회의의 TK공략작전은 중대한 국면에 접어든 느낌이다. 엄 부총재 자신의 표현처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 이 어느 정도 본궤도에 오른 시점에 우연의 일치처럼 여러가지 중대한 상황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 한나라당과 자민련내 TK의원들의 심상치않은 움직임이 대표적인 예이다.

엄 부총재의 저돌성에 김윤환 전부총재, 자민련 박철언 부총재와 같은 기존 중진들의 능수능란한 정치술이 합쳐질 경우 TK는 여당에게 더이상 난공불락의 성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정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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