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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검찰 한판 붙는다

정치권과 검찰이 붙었다. 가상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승부는 현재로선 예측하기 힘들다. 양측이 갈고 있는 칼날이 모두 매섭다. 그만큼 분위기는 심각하다.

정치권이 빼든 무기는 국정조사. 검찰이 숨겨놓고 있는 카드는 사정. 어느 것이 더 위력을 발휘할 지는 지금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국가 권력의 주요 포스트인 이들이 한 판 힘겨루기에 나선 것은 향후 정국 흐름, 권력 무게추의 이동등에 중대 변수로 작용할 것임은 분명하다.

정치권과 검찰이 벼랑끝에서 맞닥뜨리게 된 원인은 그 뿌리가 깊다.

우선 정치권의 경우 여야를 따로 살펴봐야 한다. 여권은 검찰에 대해 “정권을 위기상황에 빠뜨린 주범으로 이 기회에 단단히 잡아놓아야 한다”며 ‘검찰길들이기’에 노골적이다. 직접적인 계기는 물론 진형구 전대검공안부장의 검찰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 진전부장은 취중에 “검찰이 공기업구조조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조폐공사 노조의 파업을 유도했다”고 발언함으로써 정권을 뒤흔들어 놓았다.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여권 인사들은 이번 사태를 다양하게 해석하고 있다. “소수 정권을 얕보는 검찰의 기본 인식이 반영된 사건” “구정권의 혜택-진전부장은 검찰내 경복고인맥의 대표적 인물로 전정권 핵심부 인사와 가까웠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을 받았던 검찰 간부가 정권 교체후 상대적 박탈감에서 미필적 고의로 현정권을 음해한 것” “김대중대통령이 재가한 혁명적 검찰 인사에 불만을 품고 반고의적으로 저지른 자해행위”등등. 이런 인식의 결론이 바로 “국정조사권을 발동, 검찰을 철저히 다스림으로써 이번 기회에 검찰을 확실히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시각이 여권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기회가 검찰은 장악하는 호기”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인물이 다수인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여권의 검찰에 대한 불신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야당시절의 ‘피해의식’은 접어두고라도 정권 교체후에도 여권은 검찰 때문에 한 두번 곤란을 겪은 게 아니다. 98년 내내 정국이 가파르게 전개되고 있을 때 여권이 협상을 통해 야당을 진정시켜 놓으면 검찰이 꼭 ‘일’을 저질러 판을 흐트려 놓곤 했다. 작년 8월 한나라당이 전당대회를 열어 이회창총재 체제를 출범시키던 당일날 검찰이 서상목의원의 국세청을 통한 불법 대선자금 모금 사건을 터뜨려 여야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갔었던 게 대표적인 예이다.

검찰은 공동여당사이에도 분란을 일으켰었다. 대전지검이 자민련 대전시지부를 압수 수색해 공동여당 관계를 한때 위기로 몰아넣었던 게 구체적인 예.

그런가하면 검찰은 여권 핵심 인사들의 ‘자존심’에도 상처를 냈다. 정치권사정을 하면서 여권 지도부에 전혀 정보를 주지 않아 여야 협상에 지장을 초래한 것은 물론 여권 내부도 분란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한 여권 핵심인사의 말. “정치권 사정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청와대에서 김대중대통령을 만난 기회에 ‘당에도 좀 정보를 달라. 우리도 좀 뭘 알아야 여야 협상등에서 활용할 것 아니냐’고 요청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나도 모르네. 뭘 알려고 하는가’라며 면박을 줬다. 이 사실이 어떻게 검찰에 들어갔는지 그 뒤에 검찰의 기세가 어찌나 등등하던지…”

야당과 검찰의 관계는 더욱 험악하다. 야당은 “검찰이 작년에 정치권 사정을 통해 의도적으로 야당만 손봤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검찰의 공정성, 권위에 결정적으로 흠집을 냄으로써 검찰을 손보겠다고 벼르고 있다. 야당이 특별검사제를 촉구하고 나선 것도 국민의 검찰 불신을 최대한 증폭시켜 정치적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이다.

국정조사가 이뤄질 경우 김태정전검찰총장 박주선전법무비서관등 작년의 정치권사정을 주도했던 인물들을 모두 증언대에 세워 ‘망신’을 주겠다는 복안을 세운 것도 이런 배경에서이다. 야당은 또 대검 공안부의 전·현직 검사들을 모두 TV 카메라 앞에 불러내고 박상천전법무부장관까지 증인으로 채택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야당은 또 지난해 이뤄졌던 검찰의 총풍, 세풍 사건 수사에 대해서도 큰 불만을 갖고 있다. 따라서 전·현직 검찰 수뇌부가 국정조사를 당하게 되면 야당은 ‘구원(舊怨)’을 유감없이 풀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검찰이 당하고만 있을 조직은 아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검찰 주변에서 슬슬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징후가 여럿 포착되고 있다.

최근 봇물터지듯 흘러나오고 있는 각종 비리관련 ‘리스트’들이 그 반증. 출처가 분명하지 않은 ‘최순영리스트’‘원철희리스트’‘김석기리스트’등은 모두 검찰이 수사 대상으로 삼기에 충분한 ‘먹이감’들이다. 특히 이들 리스트에 올라있는 인물의 대다수가 여야의 유력 정치인들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검찰이 리스트들의 존재사실을 부정하면서도 “언제든지 비리관련 사실이 드러나면 검찰은 당연히 수사할 수 있는 것”이라며 여지를 남겨두고 있는 데서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정치권안에서도 검찰의 반격 가능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을 정도로 정치권의 검찰에 대한 ‘두려움’은 대단하다. “정치인중 검찰이 걸려고만 하면 안 걸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이처럼 양측의 이해관계가 얽히고 혀 있는 탓에 국정조사가 되더라도 결국은 ‘소문난 잔치’에 머무르고 말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일부에서는 “여야 정치권과 검찰이 결국 적정한 선에서 타협점을 찾아 현재의 긴장관계를

해소하지 않겠느냐”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양측이 현재의 전선(戰線)을 무너뜨리지 않으면 국정조사는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어 보인다.

신효섭·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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