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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 9월 대변혁 오나

“여기가 참으로 아늑하고 좋습니다. 밖에 있다가 와 봐야 잘 느낄 수 있죠…”

6월8일 오후 자민련 마포당사 명예총재실을 찾은 김종필총리(JP)는 박태준총재(TJ)등 당직자들 앞에서 ‘당이 좋다’는 얘기를 반복해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자민련의 실질적 ‘오너’인 김총리는 명예총재 자격으로 4개월 보름만에 친정 나들이를 한 것이다. 그의 나들이는 명목상으로는 이날 한나라당을 탈당, 자민련에 입당한 이상현의원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당사 방문의 진짜 이유는 친정 추스르기에 있었다.

당내에선 박총재 중심의 신주류와 김용환수석부총재를 비롯한 충청권 중심의 구주류 사이에 전당대회 개최시기, 선거구제등을 둘러싸고 내홍이 확산되고 있던 시점이었다. 당헌상 총재 선출 전당대회는 6월23일까지 치르도록 돼있었다. 양측은 일단 전당대회 연기가 불가피하다는데는 의견을 함께했다. 하지만 구체적 연기시점을 둘러싸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신주류는 박총재 임기를 가급적 늘리려는듯 전대를 6개월 연기, 12월에 개최하자고 주장했다. 반면 충청권 구주류는 “12월로 연기하면 연내 내각제 개헌을 포기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며 전대를 9월에 열자고 맞섰다. 또 신주류는 여권 수뇌 4인이 결정한 중선거구제를 지지했지만, 구주류는 소선거구제 고수를 주장하고 있었다. 양측의 갈등이 심각한 수위에 이르렀기 때문에 당내 일각에선 ‘분당(分黨)의 초기 조짐’이라는 얘기마저 나왔다.

때문에 당직자들은 이날 당사를 방문한 JP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김총리는 과거를 회상하며 “5공때도, 지난 정권(김영삼정권)때도 신민주공화당 당사와 자민련 당사를 얻는데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다”며 “이같은 터무니없는 일(정권의 직간접적 탄압)들이 없어지기 전에는 민주주의를 못한다”고 말했다. JP는 “자민련이 별의별 경우를 다 거쳐 여기까지 왔는데 쉽게 쉽게 생각해선 안된다”고 은근히 당내갈등을 꼬집었다. JP는 충청권 의원들의 소선거구제 고수론에 대해 웃으며 “정당에선 별소리를 다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 뒤 전당대회 개최 시기에 대한 질문에는 “총재에게 물어봐라. 당의 의사라면 따를 것”이라고 대답했다. 표면상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모두 다독거리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그는 이어 박총재와 20여분간 밀담을 나누었고, 밀담 중간에 신주류의 김현욱총장을 잠시 부르기도 했다. 반면 구주류의 핵심인 김용환수석부총재는 내내 밖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JP가 당사를 떠나고 3시간쯤 흐른뒤 전당대회 개최 시기는 구주류가 주장해온 9월로 결론이 났다. 사실상 JP가 9월 전대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 ‘4·9 내각제 함구령’이후 침체됐던 충청권 구주류는 “역시 JP는 우리편”이라며 모처럼 미소를 지었다.

9일 자민련 당무회의는 ‘9월 전당대회’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전당대회 시기가 결정되자 JP의 당 복귀설이 고개를 들었다. 대다수 충청권 의원들은 “박총재 체제로는 내각제 추진에 어려움이 많다”며 “내각제 추진과 총선 지원을 위해 총리가 당에 복귀, 총재를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JP직계 원외지구당위원장 40여명도 10일 ‘내각제 실천투쟁위’명의로 결의문을 내고 “내각제 개헌여부와 관계없이 9월초까지는 김총리께서 당에 복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관련 자민련의 충청권 고위관계자는 “총리가 평소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내각제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며 “9월중 내각제 문제가 매듭지어진 뒤 총리가 당에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개헌 추진 일정상 연내 개헌여부는 9월에 결정될 수밖에 없다”며 “내각제가 안되면 JP가 당연히 당에 돌아오겠지만 만일 내각제 개헌이 된다해도 선거운동 지원을 위해 당에 돌아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JP가 ‘9월 개최론’으로 교통정리를 했기 때문에 JP의 ‘당 컴백설’에 무게가 실렸다. 그가 직접 당무에 관여하는 일이 많아진 것도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그는 10일 낮에도 자민련 주요당직자들과 오찬을 함께했다. 김총리는 이 자리에서 “국정조사권 발동이 힘들면 국회환경노동위가 먼저 진상을 규명하는 방안을 모색해보라”고 지침을 내렸다. 김총리는 또 해외순방을 이틀 앞둔 12일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에게 전화를 걸어 출국인사를 하면서 “이총재께서 국회가 원만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협력해 달라”고 요청했다. 특히 김총리는 통화에서 “25일 귀국후 한번 만나자”고 회동을 비공식적으로 제의해 양측간의 내각제 논의 성사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김총리는 친정 복귀 방침을 완전히 결정하지 않고 여러 대안중 하나로 이를 검토하는 것으로 보인다. 총리실 고위관계자는 “정치 상황이 유동적이어서 그때 가봐야 JP의 거취를 알 수 있다”며 “청와대, 국민회의등 상대가 있으므로 당 복귀를 그리 쉽게 결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공동정부의 진로와 대선직전 영입한 박총재를 예우하는 문제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JP의 당내 복귀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영수 박철언부총재등은 “TJ가 당을 잘 이끌고있지 않느냐”며 “JP가 연말까지 당에 복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자민련은 한때 총리, 장관등 정무직 공무원도 현직을 가진채로 총선에 출마할 수 있도록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려고 했었다. 이는 총리가 ‘공동정부의 총리’로 그대로 남아있을 가능성에 대비했던 것이다. 현행 통합선거법 53조는 선거에 입후보하려는 공무원은 원칙적으로 선거일 60일전까지 공직에서 그만두도록 규정했으며, 전국구의원 후보가 될 경우에는 후보등록 신청전까지 사퇴하도록 예외규정을 두었다. 따라서 선거법 관련 규정이 바뀌지 않는한 JP는 내년 4·13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늦어도 내년초까지는 총리직을 그만두어야 한다. 또 현행법은 정무직 공무원들의 선거운동을 전면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당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돕기 위해서는 더 일찍 총리직을 사퇴해야한다. 이같은 선거법 규정은 JP의 당 컴백 가능성을 높여주는 조건들이다.

만약 JP가 9월께 당에 컴백할 경우에는 당내 위상 정리 문제가 복잡해진다. 공동정부 유지 여부등 몇가지 변수에 따라 유동적이다. 공동정부가 유지될 경우에는 JP가 당총재로 복귀하고 박총재가 총리직으로 진출하는 ‘자리 맞교환’가능성이 있다. 공동정부가 깨질 경우에는 JP가 총재로 선출되거나 지금처럼 명예총재로 남아 실질적 권한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JP가 TJ를 예우하지 않을 경우에는 두사람 사이에 갈등이 생겨 당이 분당 직전의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어쨌든 JP가 결정한 ‘9월 전대’방침에는 9월초 시작되는 내각제 협상에 대비한 ‘배수진 치기’의 뜻도 담겨있다. JP 자신이 먼저 제의한 ‘8월말까지 내각제 논의중지’약속은 지켜야 하지만, 9월이후에도 내각제 담판이 뜻대로 안되면 공동정부에서 전격 철수할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김광덕·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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