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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에 '개혁'이 빠졌다"

여권의 정치개혁안에서 ‘개혁’이 실종됐다. 여권의 방안은 한국정치의 고질적 폐해인 금권선거, 지역정치, 보스중심 정치등을 근절하기 위한 개혁안이라 보기 어렵다. 한명이라도 더 자당의 국회의원 만들기에 주력하다 보니 21세기 새로운 정치문화 정착을 위한다는 정치개혁안이 당리당략의 산물이 되고 만 것이다.

야당은 물론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도 강력한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중선거구제 도입과 지역구, 비례대표 의원 2대1 배분. 여권이 이 방안에 명운을 걸다시피 하고 있어 야당과의 협상 때 엄청난 정치 회오리가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5월25일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 국민회의 김영배 총재권한대행, 자민련 박태준 총재는 4자회동을 갖고 선거구당 3인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골간으로 하는 선거제도 개혁안 등 정치개혁 단일안을 확정했다.

이날 회동에서 여권은 중선거구제를 채택, 국민회의와 자민련 8인 정치개혁특위가 합의를 보지 못했던 선거구제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또 국회의원 정수는 8인 특위의 잠정안 대로 270명으로, 역시 논란이 많았던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의 비율은 2대1로 각각 결정했다.

이에 따라 지역구 의원은 현재의 253명에서 180명으로, 비례대표 의원은 현재의 46명에서 90명으로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같은 여권의 수뇌부의 합의에 대해 야당인 한나라당은 즉각적인 반발을 보였다. 또 자민련 내부에서 적지않은 갈등이 일고 있어 여권의 의도가 성사될지는 미지수이다.

한나라당의 주요 당직자들은 한결같이 “정치개혁을 외면하고 야당분열과 장기집권 의도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여권의 연합공천이 이뤄질 경우 당선이 불확실한 일부 수도권 의원 등이 긍정적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역시 주조는 반대이다.

한나라당 안택수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국민회의가 1당을 차지하고 야당분열을 꾀하는 이른바 ‘꿩 먹고 알 먹는’ 놀부식 무한대 탐욕”이라며 “장기집권에 초점을맞춘 ‘국·자 맨더링’의 결정판”이라고 여권의 정치개혁안을 공격했다.

한나라당은 지역구와 정당명부 비례대표 의원 비율을 2대1로 하겠다는 것은 비례대표 의원들을 제2의 유정회로 만들어 원내 안정의석을 공고히 하겠다는 의도라고 몰아부쳤다. 중선거구제는 선거구내의 소지역주의 까지 발생시켜 지역갈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한나라당은 주장한다.

자민련의 경우 지역배경에 따라 의원들의 반응은 확연하게 엇갈렸다. 충청권 의원들은 곤혹스런 표정이나 비충청권 의원들은 ‘당연한 결정’이라는 것.

충청권 의원들은 중선거구제 채택시 자민련의 튼튼한 기반인 충청권이 무너질 수 밖에 없으며 곧바로 내각제 전선에 균열이 일어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부 강경파 의원들은 김종필 총리의 모호한 태도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여권 수뇌부 합의 사항 자체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충청권 의원들은 “자민련의 전국 정당화를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충청권 의원들이 이제는 집단 이기주의적 사고에서 탈피해야 할 것”이라고 환영했다.

국민회의는 중선거구제를 통해 영남 등 취역지역에서 의석을 늘리면서 ‘호남당’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겠다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4 지방선거 결과를 토대로 중선거구제가 실시됐을 경우 정당별 예상 의석을 추산하면 국민회의는 약 106석으로 제1당이 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약 102석, 자민련은 약 39석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이는 단순 추계일 뿐 아니라 국민회의 자민련의 연합공천이란 변수에 따라 결과가 상당 부분 달라지겠지만 국민회의 제1당 욕심이 크게 작용한 개혁안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더욱이 지역구와 비례대표 비율을 2대1로 정한 것은 “국민이 국회의원을 직접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는 것”이란 비판이 야당 뿐 아니라 여권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정당의 민주화나 비례대표 선정의 투명성 보장이 사실상 힘든 실정에서 비례대표의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주주의 정신에 역행하는 조치라는 것이다. 이 제도는 김대중 대통령이 워낙 도입의지를 강하게 갖고 있어 국민회의가 공개적으로 반대를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의 이론이 상당해 재조정을 김대통령에게 건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수뇌부 합의에 따라 큰틀은 완성됐지만 국민회의와 자민련 사이에서도 넘어야 할 산은 한두개가 아니다. 양당 사이의 가장 미묘한 쟁점은 역시 선거구 획정작업. 중선거구제로의 변경과 지역구 의원 감소로 양당간의 마무리 조정은 막판 까지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후보자 공천, 정당 설립요건, 공무원의 정당 가입 허용, 선거연령 하향 조정 , 정치자금법 중 예금계좌를 통한 입·출금 관리, 정치자금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3억원 이상의 법인세 1% 의무기탁 문제, 당원의 당비납부 문제 등 무리없이 결론을 내기 어려운 사안들이 산적해 있다.

여권은 정치일정상 늦어도 여야 협상이 7월까지는 마무리돼야 한다고 보고6·3 재선거가 끝난 후 소집되는 제204회 임시국회에서 개혁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문제는 여권이 정치개혁 단일안을 마련한뒤 본격적인 대야 협상에 나설 경우 한나라당이 이에 응할 것이냐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당론을 조율중이나 여권의 권력구조 개편문제가 매듭지어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여야의 쟁점이 워낙 민감하게 맞서있어 정치개혁을 위한 협상이 정치구태가 재연되는 난장판이 될 조짐이 없지않다.

손태규·주간한국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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