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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조사도 '상품성'이 우선

특별검사제 도입과 각종 의혹사건에 대한 국정조사권 발동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내부기류가 묘하다. 표면적으로 한나라당은 ‘2+1’을 고집하고 있다. ‘2’는 ‘검찰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공작 의혹’과 ‘고급 옷 뇌물 의혹사건’을, ‘1’은 ‘전면적 특검제 도입’을 가리킨다.

한나라당은 당초 2개 의혹사건에 ‘국민회의의 3·30 재·보선 50억원 선거자금 살포의혹 사건’과 ‘유종근전북지사 거액도난 의혹 사건’을 더한 4대 의혹 사건을 국정조사하자고 요구했다가, 총무접촉 과정을 통해 “여권이 특검제 도입을 수용한다면 2개 사건에 한해서만 국정조사를 할 수 있다”는 수정제안을 내놓았다.

당초 일언지하에 한나라당의 제의를 거부했던 여권은 수뇌부 회동 등을 거친 뒤 ‘한시적’ 특검제 도입과 ‘파업유도 의혹사건’에 한한 국정조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한나라당의 요구조건에 비추어 보자면 ‘1+0.5’의 역 제안인 셈이었다. 이후 여야는 한치의 양보없는 지루한 대치전선을 그어왔고, 김대중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총재간의 단독 총재회담 성사 가능성마저 당분간 기대난망으로 흐르면서 여야간 접점찾기는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

흥미있는 대목은 한나라당이 당론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2+1’의 속 계산이 겉으로 드러난 것과 상당히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다. 사안의 무게로 따진다면 ‘파업유도 공작의혹’ 과 ‘고급 옷 뇌물·갈취 의혹’은 애당초 비교대상이 될 수 없는 성질의 사안이다. 고급 옷 사건이 국민의 정서와 감정을 건드리는 ‘말초적’ 사건이라면, 파업유도 사건은 현 정권의 존립기반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옷 사건에 뒤이어 파업유도 사건이 터지자 상당수 한나라당 당직자들이 ‘쥐 고양이 생각해 주듯’ DJ정권의 안위까지 걱정하는 여유를 부렸던 것은 이런 상황인식의 산물이었다.

당론은 2+1, 속계산은 제각각

하지만 시간경과와 함께 한나라당 의원들의 내부동태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파업유도 사건보다는 고급 옷 사건에 더 ‘구미를 당겨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심지어 이부영원내총무 등 당 지도부가 국정조사보다는 특검제에 더 애착을 보이는 듯 하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하는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이총무는 “잔치(국정조사)보다는 제도(특검제)가 더 중요하다”며 여당이 특검제를 받아들인다면 의혹 사건에 대한 국정조사에 굳이 매달리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을 비추기도 했는데, 상당수 의원들은 “특검제는 특검제고, 국정조사는 국정조사”라며 ‘바터 가능성’을 무질러 버렸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고급 옷 사건에 쏠리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 고급 옷 사건은 의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섹시한’ 사건이다. 이부영총무처럼 “옷 사건은 현 정권 핵심부의 부정부패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사건인만큼 결코 덮어둘 수 없다”고 ‘도덕적 대의’를 내세우는 축도 있으나, 대부분은 ‘굴릴수록 남는 장사’라는 계산서 뽑기에 더 바쁜 게 사실이다.

설사 뚜렷하게 밝혀지는 건 없더라도 일단 판을 벌여 놓으면 저절로 사건이 굴러가면서 커지게 돼 있다는 게 의원들의 판단이다. 더군다나 이 사건과 관련해 한나라당에 접수된 제보만 추려도 대여 공격소재로 충분히 활용가능하다는 게 당직자들의 이야기다. 한두가지 예만 들어도 ‘지금까지 나타난 것은 빙산의 일각이고, 현 여권 최고 실세 부인들이 대추나무 연 걸리듯 걸려 있다’ ‘신동아그룹 최순영회장의 부인과 가족 등이 확보하고 있는 증거만 까도 전·현직 실세 여러 명이 다치게 돼 있다’는 등 진위여부와 상관없이 상당한 대중 흡인력을 지닌 소문들이 한나라당의 ‘첩보 대장’에 올라 있다.

‘검찰 건드리기’에 껄끄러운 의원들

그런 반면, 파업유도 의혹은 의원들 입장에선 여러모로 껄끄러운 사건이다. 의혹의 당사자가 검찰이란 점부터가 그렇다. 국정조사에 들어간다 해도 검찰의 속성상, 여권이 사건을 덮자고 마음만 먹으면, 아무리 공을 들여봐야 별반 건질 게 없는 ‘소문난 잔치’에 그칠 개연성이 높다.

게다가 의원들 스스로 ‘검찰과 척 져서 좋을 게 하나 없다’며 엉덩이를 빼고 있다. 법조계 출신들은 “어떻게 친정을 건드리냐”며 난색을 표하고 있고, 나머지 대다수 의원들도 “가뜩이나 무슨무슨 리스트니 하며 제2사정설이 돌고 있는 판에 괜히 검찰의 눈밖에 나는 부담을 자처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며 몸조심을 하고 있다. 이총재의 측근인 한 3선 의원은 “옷 사건은 국정조사 특위위원을 서로 하겠다고 자원하는 데 반해, 파업유도 사건은 말이 나와도 서로 딴 데를 쳐다보기 일쑤다. 그래서 ‘내가 나가서 따지겠다’며 관련 상임위인 법사위 배치를 자청했다”고 쓴 입맛을 다셨다.

의원들의 검찰 기피증이랄까 검찰 무섬증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등 검찰의 최고위 지휘권자가 관계된 사건은 물론이려니와 웬만한 검찰 관련 사안치고 지금껏 제대로 국회에서 다루어진 일이 드물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등 언론과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에 한해선 제법 그럴 듯 하게 검찰을 몰아치는 시늉을 내지만 언제나 소리만 요란했지 변변한 결과물은 없었다.

김태정전법무장관에 대한 비난여론이 비등하던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옷 사건이 터진 이후 김장관이 연일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던 와중에서도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장관과 개인적으로 등을 지는 일은 한사코 피하려 했다. 당시 김장관에 대해 전방위 압력의 수위를 높여가던 당 지도부는 임시국회 소집을 계기로 ‘김태정 저격수’를 모집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김장관을 공격할 질의자를 구했던 것인데, 하나같이 먼산바라기만 했다.

특검제와 국정조사 정국의 켜켜 속에는 의원 저마다의 이해가 엉키는 난삽한 주판알 놓기가 있었던 셈이다.

홍희곤·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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