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 자신들 수준만큼의 정치를 갖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가설이 일단 성립한다. 그 이유는 국감 초반에 상식이하의 추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감이 정책감사가 돼야한다든지, 진지한 토론의 장이 돼야한다는 식의 얘기는 사치스럽기까지하다. 지금 국감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낯 뜨거워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추태의 스타트는 농림해양수산위의 윤한도(한나라당) 의원이 끊었다. 윤 의원은 10월23일 농림부 감사에서 “농림부가 어떻게 했길래 TV카메라 기자들이 한 명도 없느냐” 며 “감사장면이 TV에 나와야하는 것 아니냐” 고 소리를 질렀다.

혼이 난 농림부 직원들이 TV기자들을 수소문했다. TV기자들은 직원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다른 일정이 있는데도 카메라를 들고 나타났다. 그러자 윤 의원은 느닷없이 태풍피해로 싹이 돋은 볏단을 김성훈 장관에 들이밀었다. 본격적인 언론용 쇼가 시작된 것이다. 윤 의원은 “이게 바로 농민이 흘리는 눈물의 씨앗” 이라고 김 장관을 다그쳤다. 이에 여당의원들은 “속보인다” 고 야유를 보냈고 야당의원과 공무원들도 “언론홍보가 중요한지, 나라살림 챙기기가 중요한지…” 라며 혀를 찼다.

속보이는 ‘쇼’ 에 고성·험구·욕설 난무

고성과 험구, 특히 욕설은 국감에서 사라져야할 최대 과제중 하나다. 일반인들도 감히 쓰기 어려운 욕설들을 의원들이 서슴지않고 내뱉는 현실은 서글프기까지하다.

대표적인 치졸한 싸움으로 꼽히는 경우는 국민회의 국창근 의원과 한나라당 이사철 의원의 멱살잡이.

사단은 이사철 의원이 10월27일 정무위의 보훈처 감사에서 김의재 보훈처장을 상대로 “대통령의 친인척이 광복회장이 된다는데 어찌된 일이냐” 고 거론한 것. 이에 국창근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얻어 “위원장을 별로 안해봐서 근거없는 얘기, 편파적인 발언을 적절히 제지하지 못하는 모양” 이라고 꼬집었다. 김중위 위원장은 “뭐요, 내가 위원장 몇 번이나 한 줄 아냐” 고 발끈했다.

이사철 의원이 다시 나서 “국 의원은 동료의원 질의를 갖고 이러쿵 저러쿵 항의해서는 안된다” 고 반박했다. 이후 몇 차례 언중유골식의 논쟁이 오갔다. 그러다 급기야 초등학교 얘들처럼 서로 째려보는 상황이 연출됐고 “이 사람아” “이 사람이라니” “이 자식” “저 자식” 이라는 거친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말로는 안되는지, 조금 있다가 두 의원은 서로 일어나서 삿대질을 했다. 결국 국 의원이 이 의원 자리로 왔다. 전운이 감돌고…. 국 의원은 “나이도 어린 놈이 여기가 아직도 검찰인줄 알아” 고 고함쳤고 이 의원은 “이 새끼가 말 끝마다 나이를 들먹이는데 그럴려면 나이 값을 해라. 여기가 국민회의줄 아느냐” 고 맞받아쳤다. 국 의원은 흥분, “이 새끼가 말 끝마다 새끼라고 한다” 고 욕했고 이후 새끼라는 말이 20여번이 오갔다. 물론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멱살잡이를 한 채로….

국 의원은 10월28일 성업공사 감사에 앞서 신상발언을 통해 유감을 표명했다. 이 과정에서 정책감사, 대통령 친인척 거론 등을 둘러싸고 또다시 난전이 벌어졌다. 이를 지켜본 한 의원은 “내가 이 자리를 떠나든지 해야지” 라고 혀를 끌끌 찼다.

두 의원은 이에 앞서 10월23일 총리실 감사에서도 저녁식사 시간을 30분으로 할 지, 1시간으로 할 지를 놓고 언쟁을 하기도했다. 그 때도 “말 똑바로 해” “십년이나 어린게 말을 함부로 한다” “니가 뭔데 나서서 그러냐” “어따대고 막말이냐” 는 욕설이 오간 적이 있다.

상스러운 욕지거리 예사, 음주추태도

10월26일 교육위의 서울시 교육청 국감도 가관이었다. 유인종 교육감이 업무보고를 하려할 때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신청, 컴퓨터 납품비리 적발보고서가 제출되지않은 이유를 추궁했다. 유 교육감이 “검찰수사도 남아있고 징계도 남아있어 제출하기 곤란하다” 고 말하고 국민회의 설훈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은 의사진행에 관한 발언만 하는 것이지, 왜 일문일답을 하느냐. 보고를 들어보고 물어라” 고 제지했다.

이에 이재오 의원은 “동료의원 발언에 왜 끼어드느냐” 고 화를 냈고 “자료를 제출하지 않으면 감사를 못한다” 고 말했다. 설 의원은 “이 의원 혼자 국감하는 것 아니지않느냐” 고 반발했다. 이 의원은 “왜 여당이 신경질적으로 나오느냐. 여당은 아프겠지” 라고 신경을 건들었다. 이 때 노무현 의원이 나서 “우리가 신경질 낸 게 뭐있느냐, 또 언제 비리를 감쌓느냐, 국감에서 할 말 못할 말이 있는데 도대체 기본이 안돼있다” 고 격하게 비난했다.

함종한 위원장은 사태가 심상치않게 돌아가자 “예절을 지키자. 질서를 지키자” 며 정회를 선포했다. 그러나 정회가 사태를 진정시키지 못했다. 이 의원은 노 의원에게 달려가 “자네 여당 됐다고 비리를 감싸고 그래” 라고 몰아부쳤다. 노 의원은 “자네라니” 라고 큰 소리를 쳤고 이에 질세라 이 의원은 “너가 자네지 뭐야” 라고 고성을 질렀다. 이 의원은 또 “그런 식으로 하면 너 죽어” 라고 심한 말을 던졌고 노 의원은 “도대체 인간이 안됐구먼” 이라고 자극했다. 이어 두 의원은 회의실 밖으로 나와 TV카메라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는게 없느냐” “거지같은 놈” “싸움 잘하는 모양이지, 때릴래 맞아줄께” “X만한 새끼, 너 죽어” 라는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주고받았다.

이외에도 음주추태, 근거없는 인신공격, 명예훼손, 정치공세는 수없이 많다. 여야가 공언한 정책감사는 그야말로 뜬구름에 불과했다. 역설적으로 의원들의 욕설이 워낙 화끈해서 음주나 인신공격, 정치공세는 이제 얘깃거리도 안되는 상황이다.

걱정스런 한국 정치의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정치가 추락하는 이면에는 아직도 대선의 앙금에서 벗어나지 못한 새가슴의 정치인들이 적지않다는 사실이 도사리고 있다. 아울러 나라가 망한 현실을 외면하는 무책임한 정상배들이 즐비하기에, 그런 정상배들을 지역감정이라는 족쇄에 얽매여 다시 뽑아주는 국민이 있기에 한국 정치, 나아가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기만하다.

이영성·정치부기자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