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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실에서] 대통령의 주변

‘법적인 잘못이 있을 때 해임 65%, 도덕적 책임이 있을 때 해임 33%’(청와대의 김태정법무장관 거취에 대한 여론조사). 김대중대통령은 법적 책임이 없다며 이 여론조사도 인용하면서 김장관을 경질하지 않았습니다.

‘검찰수사 못믿는다 69.4%, 믿는다 14%, 유임조치 합당하지 않다 54.7%, 합당하다 29%’(한나라당 여론조사). ‘검찰수사로 의혹해소되지 않았다 76.1%, 해소됐다 14.5%. 김장관 물러나야 한다 74%, 물러나지 않아도 된다 15.9%’(중앙일보 여론조사).

김장관의 책임을 묻지 않기로 발표된 뒷날 실시된 6·3재선거에서 여당은 참패했습니다. 서울 송파갑은 투표율이 46.4%로 당초 예상보다 높았습니다. 이는 1년전 6·4지방선거 때보다도 높은 것입니다. 소위 ‘젊은 피’인 국민회의의 인천 계양·강화의 송영길후보도 더 이상 할말이 없게 하는 표차로 침몰했습니다. 이 결과가 나온 과정에 집권당의 잘못이 없었다고 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고가옷 로비의혹 사건’처리결과가 민심을 등지게 한 것입니다. ‘법대로’를 강조했지만 이를 믿지 않습니다. 공직자 부인의 도덕성을 애써 외면한 것도 화를 자초한 원인입니다. ‘밀리면 안된다’는 식의 독선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이나 같습니다. 국민이 안중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밖에 달리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2보전진을 위한 1보후퇴’란 말을 한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렇게 참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고가옷사건 처리과정에서 김대통령의 주변에서 일어난 행태들이 낭패의 원인입니다. 청와대의 여론조사 결과가 그렇습니다. 통치권자의 눈과 귀를 가리는 아전인수식이었음이 다른 여론조사와 선거결과에서 드러났습니다. 대통령 ‘앞에서’와 ‘뒤에서’의 행동도 달랐습니다. 앞에서는 “예”만 있고 “그게 아닙니다”는 없었습니다. 와중에 신·구주류 갈등설까지 나왔지요.

이번 옷사건과 관련한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저지른 행태들은 81년 미스유니버스 출신으로 베네수엘라 차카오시장을 거쳐 98년 12월 대통령선거에 까지 출마했던 이레네 사에스를 생각케 합니다. 이레네는 그냥 미인이 아니었습니다. 미스유니버스에 선발된뒤 1년동안 미의 사절로 활동하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지요. 그리고 92년 차카오시장에 당선됐고, 95년에는 재선됐습니다. 재선에서는 96%라는 압도적 지지였지요. 그같은 지지에는 재임때의 탁월한 행정능력이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녀는 대통령에 출마했으나 참패했습니다. 득표율은 3%도 안됐습니다. 상대는 부패한 페레스정부를 전복키 위해 공수부대 중령으로 92년 쿠데타를 일으켰던 차베스 현대통령입니다.

페레스는 재임시 IMF신규차관 도입을 위해 구조조정정책을 추진했으나 수십년간 지속된 부정부패를 뿌리뽑지 못한데다 일부 기득권층의 이익만 대변하는 정치로 국민들의 저항을 샀습니다. 서민들의 궐기가 빈발했지요. 차베스도 이때 쿠데타를 일으켰다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항복한뒤 2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옥살이를 하고 나온 그는 당을 만들어 민중들을 끌어 안아 선거에서 압승했습니다.

그같은 선거결과에 대한 분석은 ‘이레네 사에스는 인구 20만명의 시장으로서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2,400만명의 대통령감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지금 생각하는 것은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개인 김대중의 주변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대통령 김대중의 주변으로서는 ‘아니올씨다’라는 것입니다. 우리 정치에서 ‘가신’이라는 단어가 사라져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86년 7월 고토다 마사하루 일 관방장관은 내각에 내정, 외정, 안보, 정보·조사, 공보 등 5실을 설치하면서 새 실장들에게 이렇게 훈시했습니다. “해당 부처의 이익을 잊고 국민을 생각하라. 싫은 사건, 나쁜 보고를 하라. 용기를 가지고 의견을 개진하라.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하지 말고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싸우라. 결정이 내려지면 따르고 명령을 바로 수행하라.”

절망이 없이는 희망이 있을 수 없고, 회의 없이는 확신이 있을 수 없습니다.낡은 것을 파괴하지 않고서는 개혁은 불가능합니다. 고토다의 ‘오계(五戒)’를 이제부터라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재룡·주간한국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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