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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첫걸음

지난 3일 오후2시 임동원통일장관은 기자회견장에서 남북 예비접촉 결과를 발표하면서 상기된 목소리로 그 의미를 설명했다. 김대중대통령이 5월31일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남북관계의 진전 조짐이 있으니 며칠만 기다려달라”고 언급한지 3일만의 발표다.

고향방문단 재개 기대와 함께 서막이 올려진 올 남북회담은 상호주의라는 족쇄를 푼 것으로 기록될 것 같다. 당국자들은 예비접촉 결과를 이산가족 문제해결의 전기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첫걸음으로 풀이하면서 국민의 기대를 부풀렸다.

4월23일부터 6월3일까지 50일간 진행된 남북예비접촉의 결과는 오는 21일 베이징에서 차관급 회담을 열어 ‘이산가족과 상호관심사로 되는 당면문제’를 논의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 회담에서는 이산가족문제가 우선적으로 협의된다. 아울러 남측은 6월20일까지 비료 10만톤을, 나머지 10만톤은 7월말까지 북한에 전달해야 한다.

이는 문건화된 일부에 지나지 않고 상당한 내용의 구두합의는 아직 뚜껑이 열리지 않았을 뿐이라는 게 당국자들의 전언이다. 구두합의를 엿볼수 있는 것이 임장관의 기자회견문이다.

이산가족문제 본격해결방안 협의

정부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차관급 회담에서 생사확인, 서신교환, 상봉, 재결합 등 이산가족문제의 본격적 해결을 위한 제도적인 방안을 북측과 협의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생사확인 대상자 명단 교환,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 이산가족 편의소 설치, 개별상봉 등에서 시범적 조치를 병행한다고 언급됐다.

언급대로라면 남북적십자간 합의와 92년 기본합의서에 따라 장기적이고도 정기적인 이산해결 프로그램을 이행키로 의견을 모았고 85년 고향방문단 상호교환과 같은 이벤트를 재연한다는 것이다. 임장관은 이와 관련 “규모와 빈도가 문제일뿐 시작되는데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힘주었다. 이산가족 50명의 고향방문이 이뤄졌던 85년의 고향방문사업이 재연되는 것은 물론 13만명의 남측 이산가족 명단이 북으로 넘겨져 이들이 찾고자하는 36만명의 이산가족의 생사가 확인되고, 이들간에 서신이 오고갈수 있는 시나리오를 상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따라 언론들은 올 추석을 전후로 한 1,000명규모의 고향방문단 교환방문, 남측이산가족 명단의 북한 전달 가능성 등을 점치면서 시범사업에 참가하기 위한 안내 기사도 곁들였다.

정부가 두번째로 비중을 두고 언급하는 것은 남북회담의 정례화 부분이다. 임장관은 “정례화하기로 이미 합의했고 두번째 회담의 장소나 시기가 결정되지 않았을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를 ‘대화없는 시대’에서 ‘대화있는 시대’로의 전환이라고 표현했다. 차관급 회담의 지속은 물론 북측이 지난 2월 제기해놓은 고위급(장관급·총리급)정치회담으로 연결되는 징검다리식 회담개최도 능히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럴 경우 남측은 통일의 대장전인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문제를 논의하는 공동위원회를 가동시킬 수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이 맥락에서 21일 차관급회담 의제에 ‘상호관심사’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이같은 기대는 회담재개를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포괄적 접근의 돌파구로 해석하는 것으로 연장된다. 냉전구조의 핵심인 남북관계의 개선 없이는 포괄적 접근 구상이 순조롭게 추진될 수 없다는 풀이다. 아울러 북미대화에만 주력해온 북한에게 남북대화를 병행 추진토록 한다는 남측 전략이 주효하고 있다는 자평도 내놓고 있다.

“상호주의 사문화아이냐” 보수층 반발

하지만 문서합의와 구두합의는 질적으로 다른 별개사안 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서상 합의내용이 ‘현찰’이라면 구두합의는 ‘어음’이라는 해석이다. 회담개최사실, 비료20만톤 지원만이 가시적 성과로 간주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회담개최 사실만으로 600억원 상당의 비료 20만톤을 북에게 안겨주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상황이 이렇다면 지난해 4월 비료회담에서 당시 북측 주장대로 비료를 먼저주고 이산가족해결방안을 추후 논의하는 방식을 왜 수용하지 않았는가라는 비판도 면키 어려울 것 같다. 아울러 남북협상의 원칙인 상호주의는 이번을 기화로 사문화하는 것이 아니냐는 보수층의 반발도 불거져 나온다. 야당쪽에서는 고가 옷로비 사건와중에 서둘러 예비접촉을 성사시킨 점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실정이다.

이같은 가시돋힌 지적에도 일리는 있지만 베이징 예비접촉 결과를 굳이 평가절하할 이유도 없을 것 같다. 상호주의를 일단 접어둔 듯한 유연한 태도를 본회담 개시전부터 비난하는 것은 성급할 수있다. 북으로부터 받아낼수만 있다면 먼저 주어도 좋다는 선공후득(先供後得)의 넉넉한 자세도 현 남북관계에서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양측중 누군가는 먼저 손을 내밀어야만 악수가 가능하다. 남북협상의 원칙으로 상호주의를 들먹이지만, 남북협상의 목표는 남북관계의 해빙이고 긴장완화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긴장완화에 도움이 될 수있다면 악마와도 거래하겠다는 현 정부의 자세는 좀 더욱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정부, 북한 구두합의에 상당한 기대

북측에 대한 불신의 색안경부터 벗겠다는 정부는 북한의 구두합의에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다.

물론 이 기대는 주관적 기대만은 아닌 것 같다. 국제사회와 남측의 지원으로 굶주림을 모면중인 북한은 98년 9월 김정일국방위원장 공식 취임이후 단기적인 체제안정기에 접어들고 있다. 김정일과 중국 장쩌민 국가주석의 상호교환 방문소식도 들려오고 있고 제3국에서의 이산가족 상봉횟수도 급증하고 있다. 외부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여력이 축적되어 가는 조짐이다. 또 북한은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포괄적 접근이라는 한미일 3국의 평화공세에도 대응해야 할 처지이다. 바닥을 치고 있는 북한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의 경제제재를 풀어야 하고 국방부문에 쏟아붓는 자원도 효율적으로 재분배하기 위해서는 그렇다. 북측은 식량확보를 위해 비료와 영농자재의 지원이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이에대한 대규모의 지원은 국제사회가 아닌 남측에서 이뤄질 수 밖에 없는 환경도 염두에 두는 것 같다. 지난해 비료회담의 북측 수석대표였던 전금철이 예비접촉을 주도한 점도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상황판단과 베이징 접촉에 근거해 남측당국은 구두합의의 실현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분위기다. 21일 회담장에서 북이 쉽사리 발을 빼지 못할 정도로 구두합의를 이뤘다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 협상전술에 대비해야

하지만 차관급 회담의 순항을 방해할 수 있는 요소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치고 빠지는 식의 협상전술에 능한 북이 10만톤의 비료를 확보한 상태에서 어떤 자세로 나올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초 구두합의한 시범사업 추진을 위해서는 추가적인 대가를 요구할 수도 있고 마냥 끄는 지연전술을 구사할지도 모른다. 사실 8월까지 범민족대회 등 연례적인 통일선전술식 행사를 열어온 북측 정치스케줄로 볼 때 모종의 합의를 이루더라도 합의이행은 9월이후에야 가능하다. 따라서 1년 2개월만의 이번 낭보를 이산가족의 한을 풀고 남북해빙으로 연결하는 계기로 만들기위해서는 치밀한 회담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남북문제에 관한 한 높은 지지도를 유지하고 있는 김대중 정부가 이번 회담 결과에 따라 대북정책의 지지도가 등락하고, 내각제 논의 등 국내 정국에 도 막심한 영향을 미칠 수 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다.

이영섭·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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