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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교실] 인플레차단이 '안정 관건'

우리 경제가 1960년대 이후 고도 성장을 추진하면서, 높은 소득을 얻는 대신 그 대가로 치른 것이 몇 가지 있다. 흔히 얘기하는 환경오염, 지역간 경제력 불균형의 심화 등이 그것인데, 이것들은 최근에 와서 그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된 현상들이다.

이와 달리 우리가 경제 성장을 이루던 매 시점마다 경제주체, 특히 가계를 괴롭혀 오던 것이 있었는데 바로 물가 상승이다. 우리는 1970년대까지 심각한 수준의 물가 상승을 경험하는데, 이는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총수요가 확대됨으로 인해 발생하는 내부적 요인과, 석유 파동으로 대표되는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 등의 외부적 요인이 종합적으로 나타난 결과이다. 우리가 현재와 같은 한 자릿수의 물가상승률을 경험하게 된 것은 1980년대 이후로 그리 오래 되지 않았으며, 여전히 경제주체들에게 있어서 물가 상승은 매우 민감한 경제 현상이다. 자연히 정부도 정책 수립에 있어서 물가 안정을 최우선적임 목표로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강력한 물가안정정책 효과

올해 들어 경기 회복세가 뚜렷해지면서 각종 지표들이 한국 경제에 청신호를 보여주고 있는데, 물가의 측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1998년에 연간 7.5%까지 상승하였던 소비자물가는 올 연초부터 하락 안정세를 보이면서, 5월 현재 전년 동월 대비로는 0.8%, 그리고 전년 동기(1~5월)와 대비하여서는 불과 0.7%의 상승을 기록하였다. 이렇게 물가가 안정되고 있는 것은 특히 농축수산물, 집세, 공공요금 등의 하락이 주요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저물가 기조가 올해 들어 나타난 데에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비용 측면에서의 안정이다. 물가를 결정하는 많은 요인 중에 공급자(기업)의 생산 비용이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올들어 환율과 금리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생산자의 비용을 크게 절감시키고 있다. 환율은 1,200원 전후에서, 금리는 8%대의 낮은 수준에서 안정되어 있으며, 이것이 저물가 기조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정부의 강력한 물가 안정 정책을 들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물가 안정은 줄곧 최우선적인 정책 목표로 인식되어 왔으나, 과거에는 경기 회복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인플레이션을 감수하는 것이 상례였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에는 IMF 관리 체제 극복을 위한 경기 활성화 정책이 우선시되는 상황에서도, 세금 인하, 공공요금 인상 최소화, 농수산물 가격 안정 유지 등 강력한 물가 안정 정책을 정부가 시행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경기 회복의 성과가 제대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물가 안정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정부의 의지가 저물가 기조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비증가·유가상승 등이 변수

그러나 하반기에 들어서서도 상황이 그리 낙관적일 것 같지는 않다.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인플레이션의 발생 가능성이다. 경기 회복이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나면서 특히 투자가 부진한 가운데 민간소비가 경기 회복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생산 능력을 초과하는 소비의 증가는 초과수요에 대한 압력을 가져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또한 저금리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주식시장 및 부동산시장의 과열이 경제에 거품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며, 이것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압력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편 대외적으로는 국제 유가가 꾸준히 상승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국제 유가 변동의 영향을 심하게 받는 한국 경제의 특성상, 인플레이션 발생으로 연결될 우려를 낳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인플레이션 재발 가능성의 요인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직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 결론이다. 우선 최근의 민간소비 증가는 IMF관리 체제 편입 이후 과도하게 위축되었던 수준에서 정상으로 회복되고 있는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특히 소비만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생산 역시 5개월 연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생산과 소비의 동반 증가라는 전형적인 경기 회복기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또 국제 유가의 경우에도, 한때 배럴당 18달러선을 보였으나 최근 들어 16~17달러 수준으로 그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고, 정부도 교통세를 비롯한 세금 인하로 국제 유가 상승의 영향이 국내 여타 부문으로 파급되는 것을 가급적 억제한다는 방침이어서 물가에 대한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실물적인 요인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심리적인 요인인데, 현재까지의 상황은 인플레이션 발생 우려를 잠재우기에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앞에서 언급한대로 정부의 물가 안정 의지가 강력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경기 회복이 아직은 초기 단계이어서 경제주체들이 가지고 있는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안정적이라는 점도 물가 안정에 기여하고 있다.

장기계획·투자활성화 필요

현재까지의 이러한 물가 상승 동향을 종합해 볼 때, 올 하반기에도 저물가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판단된다. 앞에서 지적한 인플레이션 발생 요인들의 영향으로 상반기보다는 물가 상승폭이 커지겠지만 한반기 중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9%로 그리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올해의 연간 물가는 전년 대비 1.9% 상승에 그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2000년 이후의 물가 전망은 다소 불투명하며, 따라서 정책의 초점은 당장의 물가 대책이 아니라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수립되어야 한다. 즉 경기 부양을 위해 올해 확대한 통화 공급의 효과가 내년의 물가 상승으로 나타날 것이며, 생산 능력을 초과하는 지속적인 소비 증대는 결국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확산시킬 것이다. 또한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과열은 자산 가치의 급격한 증가와 함께 소비 심리를 부추겨 물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국제 유가가 계속하여 상승한다면 국내 제조업 생산 비용과, 개인 및 공공 서비스 요금의 상승은 불가피할 것이다.

따라서 보다 장기적으로 저물가 기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안정적이고 일관성있는 경제 정책의 운용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우선 소비와 생산이 조화롭게 증가하도록 투자 활성화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소비의 증가가 투자 확대를 통해 생산 능력의 증대로 연결될 수 있도록 구조조정의 조기 완료, 투자 관련 규제 완화 등의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실물 경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금리나 환율 등 금융 변수들의 급변동을 최대한 억제하고, 이들 변수에 대한 대외적인 충격을 충분히 흡수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경제 운용이 요구된다.

끝으로 경제정책에 있어서 일관성과 신뢰성을 확보하여 경제주체들이 물가 불안 심리를 가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주식이나 부동산이 투기의 대상이 아닌 건전한 포트폴리오의 대상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여, 자산시장에서의 거품이 물가를 불안정하게 할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제거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곽용선·현대경제연구원 주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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