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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골동품에 매달려 사는게 꼭 도깨비에 홀린듯"

남산엔 남산도깨비가 산다. 성질도 괴팍하고 변덕도 많고 삐지기도 잘 삐지는 말그대로 도깨비다. 나이는 50대. 남자도 아닌 여자다. 남산길 굽이 윗자락에 그녀의 자리가 있다. 이름조차 ‘도깨비문화원’이다. 대문 오른쪽엔 아예 큼지막한 도깨비방망이도 ‘특수제작’해 세워놨다. 그 안은 더 이상하다. 온 주변이 불상이며 말, 토기, 인형들로 둘러싸여 들어서자마자 뭔가 ‘묘한 파장’이 곳곳에서 뿜어나오는 듯도 하다. 비오는 날은 더 극치. 상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녀의 뜨끔하고 서늘한 눈빛까지 합쳐 온 사방이 거의 ‘컬트적’으로 보인다.

“남들이 왜 날 남산도깨비라고 부르는지 난 모르겠어요. 뭐가 이상한가보지 뭐. 하긴 자기 자신이 모두 다 도깨비지 안그래요? 먹고 자고, 잠자는 모든게 다 도깨비같은거지. 사실 도깨비같은 짓도 하긴 많이 했지요. 사실 저 많은 골동품들을 모은 것도 도깨비가 다 해준거지요. 또 사람을 만나도 한 번 딱보고 느낌이 이상하면 다신 못 봐. 하지만 착한 사람만 보면 또 가만 못있어. 성질이 하두 지랄맞아서 전엔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했는데, 요즘은 피곤해서 많이 참는데도 그렇게 답답한 일이 많네.”

눈에 띈 골동품은 기어코 손에 넣는 억척 수집가

남산도깨비로 소문난 김재연씨. 사회단체 도깨비문화원 원장이자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만큼 억척스런 골동품 수집가에다 성질 별나기로 유명한 주인공이다. 93년부터는 자신과 뜻이 맞는 각계의 지인들을 모아 남산의 정기를 되찾자는 ‘목멱사랑회’도 만들었고, 몇 년후엔 정식 도깨비박물관도 마련할 준비로 요즘 하루해가 짧다. 현재 가진 골동품만 쳐도 가히 엄청난 양. 문화원 내 1, 2층을 모두 채우고도 모자라 심지어 부엌과 화장실까지 파고들었다. 수집경력 20여년. 요즘은 애써 참고 있지만, 얼마전까지도 아무때나 설렁설렁 마음 가는 사람마다 ‘정표’로 쥐어 보낸 탓에 본인도 정확한 숫자 파악이 안된다. 그런데 골동품 전시장이나 다름없는 이 문화원도 고작 일부에 불과하다. 장소가 협소해 다른 곳이 보관중인 양까지 합치면 그 열배쯤 된다고 한다. 숫자뿐 아니라 종류도 다양하다. 저마다 표정부터 제각각인 다국적 불상에서부터 토기, 그림, 그릇, 옛날 옷 등 그저 마음이 끌리는대로 모은 잡화상이다. 멀리론 미국, 중국 등 외국을 뒤져 사 온 것들도 있고, 가까이로는 서울 청계천 4가부터 인사동, 경기도 일대, 제주도까지 전국을 돌아다니며 찾아낸 것들. 워낙 애착이 많다보니 어떨 땐 꿈에서 계시처럼 만나기도 하고, 그러다 우연히 책 등에서 실물임을 발견, 부랴부랴 현지로 떠나는 신기한 체험도 여러번. 그러고도 왜 그렇게 악착같이 모으고 싶었는지, 혹은 왜 그리 골동품이 좋은지조차 조리있게 설명이 안될만큼 골수다.

“그냥 좋은거지요, 뭐. 이거 모으느라 욕도 많이 먹었지. 돈이 모자라면 깍아서라도 사고, 정 없으면 외상으로라도 걸어놓고 몇 달이 걸리든 기어코 그돈을 다 갚고 내것으로 만드는거지요. 하여간 주인이 나한테 안 주고는 못배기는 거지. 하지만 내일 당장 돈을 줄 것같이 하고 물건을 갖고 간 사람이 나중엔 버티기로 나오니까 골동품상 주인들이 오죽 욕을 하겠어요. 아주 난리지. 그래도 신기한건 어쨌든 한 번 저걸 갖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어쨌거나 그게 결국 내것이 되더라구요. 주인들도 늘 그런 얘길해요. ‘나도 왜 그걸 그 값에 당신한테 줬는지 모르겠다. 진짜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다.’ 모으기 시작한건 아주 옛날부터예요. 아주 젊었을 때 식모살이를 하면서도 고물상만 보면 그냥 지나가지를 못했어요. 거기 나온 낡은 그릇들만 보면 그걸 갖고 싶었고, 정 보다가 심심해지면 거기다 그림을 그리거나 구멍을 뚫어서 화분으로도 쓸 수 있어서 좋잖아요. 그러다 보니 평생 이러구 있어요.”

불같은 성미지만 정엔 한없이 약해

성미는 불같다. 한번 수 틀리면 초면이든 아니든, 그럴 자리든 아니든 가릴것도 없다. 욕도 잘 하고, 배포도 대단한 그녀의 성미를 아는 골동품상들은 그녀가 나타날 때마다 초비상이다. 행여 그녀눈에 띌 새라 신문지에 둘둘 말아 쓰레기통에 던져놓은 ‘진짜배기’도 귀신같이 찾아내고, 주인이 바가지 씌울 틈도 없이 단숨에 값을 깎아내곤 흥정을 끝내버리기 때문이다. 백만원짜리 골동품에 계약금이랍시고 달랑 천원만 걸어놓고도 ‘천원은 돈이 아니냐’며 기분좋게 일단퇴장하는 그녀를 우습게 보다가 ‘봉변을 당한’사람도 있다. 더 좋은 값을 부르는 사람에게 욕심이 동해 그녀가 건 계약금을 두배로 물어줄 생각으로 대뜸 팔아넘겼다가 다음날 찾아간 김씨에게 된통 당했다. 김씨의 욕을 귀가 따갑도록 들은 것은 물론, 결국 주인이 직접 그 물건을 사 간 사람에게 다시 찾아가 빌다시피 물건을 되찾아 돌려주고서야 겨우 그녀로부터 ‘풀려’났다. 그녀의 욕솜씨나 성질은 밖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전에 있었던 ‘제주도 여행사건’. 한 모임의 회원들과 함께 간 제주도 여행에서 관광버스의 가이드와 운전기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불친절에다 ‘삐딱’하게 나오자 그녀는 끝내 참지 못하고 막판 분통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떨며 잘못을 빌었고, 그때까지 아무말 못한채 참고 있던 다른 회원들은 ‘마치 살아있는 무협지를 보듯 통쾌하고 통렬한 장면’이었다고 그때를 회고하기도.

그러면서도 약한 구석도 있다. 정에 관한한 한없이 약하고 헤픈 사람이다. 그녀는 실제로 남에게 ‘잘 퍼주기’로도 유명한 사람이다. 자기자신에 대해선 손님이 남기고 간 반찬도 다시 물에 씻어 담궜다 찌개를 끓여먹을만큼 지나치도록 인색한 구두쇠지만, 조금만 마음이 통하거나 정을 느끼면 속알없이 자기 속을 내준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다. 그녀와 알고 지내던 한 국회의원이 그녀의 도움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자신이 차고 있던 시계를 즉석에서 풀러준 적이 있다. 그런데 곧바로 비서관이 찾아와 그걸 내놓으라고 심통을 부리자 바로 시계를 밟아부숴버렸다. 나중엔 그 일이 내내 마음에 걸려 직접 반성하는 뜻으로 한동안 만나는 사람들마다 시계를 사서 선물한 적도 있다. 그러던 중 한 남자는 ‘호감의 표시’로 알고 엉뚱한 접근을 했다가 따귀를 맞은, 웃지못할 해프닝도 발생. 어쨌거나 그 괄괄한 성미에도 불구하고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좀처럼 그녀곁을 떠나가는 법이 없는 것도, 심지어 스님과 수녀까지 스스럼없이 친해진 것도 바로 그런 정 때문이다.

한두번 봐주던 점이 소문나면서 ‘점쟁이’로

그렇지않다면 그가 사람을 끄는 이유를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학력조차 초등학교를 절반쯤 다니다 만 사실상 무학에다, 고생이란 고생만 수두룩하게 거쳐온 험한 인생이니 별달리 내세울게 없다. 경남 진주에서 출생, 어려서부터 주변 아이들을 쥐어박으며 온갖 말썽을 일으키는 통에 매일같이 부모님은 동네 어른들로부터 항의를 받아야했고, 열세살에 들던 어느날 밤 자다말고 ‘아무래도 저 애를 내다버리든지 무슨 수를 써야겠다’는 아버지의 푸념섞인 혼잣말을 듣고는 다음날 ‘자진가출’해 버렸다. 곧바로 상경, 남의집 가정부 살이와 어느 병 든 신부의 병수발을 드는 등 갖은 고생을 했다. 그 외롭고 힘든 생활 가운데 한 남자를 만나, 아이도 가졌다. 결국 집을 떠나올때 ‘꼭 논 닷마지기를 사서 부모님께 돌아가겠다’던 다짐도 지키지못한채 다시 고향을 찾아야했다. 아이를 낳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며 식당 등을 운영해 돈을 모았다. 그 와중에도 돈이 생기면 고물상으로 달려가거나, 불쌍한 사람들을 찾았다. 지금도 틈틈이 보육원이며 양로원을 찾아다니며 음식에다 옷가지, 인형까지 사다넣어준 이름없는 봉사파. 베풀며 살아야한다는 그녀의 논리중엔 이런것도 있다.

“처음엔 순대장사를 시작했는데 도무지 안팔리는 거예요. 안 팔린 순대를 그냥 버리는게 아까와서 주변에 있던 어느 집 개들에게 먹이기 시작했어요. 개주인도 모르게. 말랐던 개들이 점점 살도 오르고, 나중엔 나만 가도 막 알아보고 꼬리를 치는거야. 그걸 먹여주면서 매일 마음으로 빌었어요. 이거 먹고 잘 살다가 혹 나중에 죽으면 너도 내가 잘 되게 빌어다오. 그랬더니 정말 한참뒤 언젠부턴가 개들이 안보여요. 아마 고깃집에 팔려가서 죽거나 했겠죠. 그런데 희한하게 바로 그 직후부터 내 가게에 손님이 들기 시작해서, 나중엔 정신을 못 차릴정도로 잘 됐어요. 나중엔 남는 음식이 없어서 못 나눠줄 정도로요. 돈이란건 절대 내 주머니에 혼자 붙들고 있다고 잘 되는게 아녜요. 100을 벌면 30만 갖고 70은 남을 위해 써야 결국 그게 더 크게 돼서 자신에게 돌아와요. 남에게 베푸는게 그래서 다 자기 복 짓는 일이란 거죠. 그걸 모른다니까요, 사람들이.”

그녀에 관한 한 또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그녀가 점을 본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흔히 말하는 무속인의 신기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상한 체험이 잦았고, 식당을 경영하면서 한두번씩 봐주던 점이 용하다고 소문이 나면서 30대 후반부턴 아예 그쪽으로 이름이 나버렸다. 연초마다 국운을 점치는 ‘무속인’으로 잡지에 소개되기도 여러번, 무속인으로서도 꽤 알려진 편이고, 말하자면 그녀가 모시는 신도 ‘도깨비신’이다. 그러나 부모님은 오히려 모태신앙의 천주교 신자. 요즘도 그녀의 집에만 오면 대기중인 손님들에게 ‘내 딸은 사기꾼이니 믿지말고 돌아가라’며 소리쳐 쫓아버리는 ‘딸보다 더 별난’ 어머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싫은 내색은 커녕 오히려 주위에 소문날만큼 평소 부모님에게 극진한 효녀다.

‘남산지키기’와 ‘도깨비 박물관’건립에 몰두

한편으론 그녀 자신도 ‘점쟁이가 되고 싶지 않은 점쟁이’기도 하다. 남다른 일 때문에 사람들이 공연히 삐딱하게 보는 것도 싫고, 이가 다 부서져나갈만큼 몸도 몹시 피곤한 그 노릇을 가능하면 빨리 정리하고, 앞으론 두가지일에만 몰두하고 싶어한다. 하나는 ‘평생을 두고 지키겠다’고 다짐한 ‘목멱산천제’를 계속 잇는 것이고, 또하나는 ‘도깨비박물관’을 여는 일이다. 박물관은 현재 경기도 팔당에 부지까지 사놓은 상태, 공사는 내후년쯤 시작해 지상 3층건물로 지을 계획이다. 현재 점보는 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도 바로 이 두가지 일의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것. 목멱산천제를 열던 첫 해엔 하루 150명까지 점을 봐주며 행사기금을 모았던 적도 있지만, 요즘은 무리를 하지 않으려 한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문화원을 지키고 앉은 것도 오후 3시면 끝. 그 이후론 발 내키는대로 돌아다니며 골동품을 찾고, 박물관 준비상황을 돌아보는게 낙이자 주요일과다.

그러나 천하에 걸릴게 없을 이 여장부, 남산도깨비가 무서워하는게 있다. 바로 허깨비다. 진짜같은 가짜, 아무것도 공들이지 않고 무엇이든 ‘날탕’으로 먹으려는 인간들이다. 고스란히 자기몫만 살고 가도 빚만 지고 갈 인생에 그런 ‘눈치없는’인간만큼 피해막심한 사람이 어디있으랴.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녀가 뭔가를 줄 때마다 걸핏하면 덧붙이는 ‘나중에 더 크게 잘된 뒤 10배 20배로 갚으라’는 말도 어쩌면 빈 말이 아닐지 모른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흘려듣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정영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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