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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0.1초와 다투는 기록의 사나이

도로에서 제법 속도를 내 본 ‘간 큰’ 운전자치고 한번쯤 카레이서의 꿈을 꿔보지 않은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올 6,7월은 특히 가슴부풀만 하다. 6월11일 춘천에서 열리는 오프로드(비포장 도로 경기) 자동차경주대회를 비롯해 7월엔 국내 최초로 열리는 세계 자동차랠리까지 강원 평창에서 기다리고 있다. 여기에 몰릴 스피드광들은 얼마나 될 것이며, 속도와 긴장감으로 팽팽한 레이서들의 한 판 승부는 또 얼마나 ‘장렬’할 것인가.

전문 카레이서 김정수(35)는 벌써부터 모든 신경이 예민해지고 있다. 프로경력 10년차. 그간 국내 자동차경주대회라는 대회는 빠짐없이 출전, 이번에 참가할 춘천 오프로드 대회만 하더라도 이미 전년도 우승컵을 안았던 베테랑이지만, 닥칠 때마다 늘 새로운 전쟁이다. 열댓번이나 시험에 떨어진 낙제생처럼 필사적일 수밖에 없다.

“시합때만 되면 저도 모르게 1주일전부터 아주 신경이 날카로와져요. 시합날 아침은 아예 아무것도 못 먹죠. 먹어봐야 소화가 안되니까. 시합이 끝날때까지 종일 꼬박 굶습니다. 남들은 차안에만 가만 앉아있으니 별로 힘이 안들겠다고 하지만, 시합 한 번 치를 때마다 체중이 5kg씩 빠져요. 출발직전엔 뭐랄까, 우리끼린 ‘기분이 더럽다’고들 표현하죠. 출발전 신호를 기다리는 5초동안, 정말 기분이 더러워요. 5초가 꼭 다섯시간처럼 길게 느껴지고, 나중엔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맥이 풀리는게 그 긴장감을 말로 못해요. 신호를 받고도 한바퀴를 돌아 대충 제 페이스를 잡기전까지 이런 순간이 계속되죠.”

경주장에 서기위해 사는 사람

국내 정상급 카레이서중 한사람인 김정수는 특히나 온로드(포장된 트랙경기)와 오프로드대회 모두 출전하는 선수로는 국내에서도 드문 경우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만큼 부담이 많이 가기 때문에 선뜻 두가지를 동시에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도 91년 한국 오프로드 챔피언 10시리즈, 94년 MBC 그랑프리 한국챔피언 10시리즈에서 우승하는등 십여회에 이르는 꾸준한 우승행진을 해왔다. 그가 모는 경주용차는 기아의 슈마. 대우 르망과 현대 스쿠프, 티뷰론을 거쳐 작년 9월에 바꿨다. 현재 기아차의 후원을 받는 이글팀 단장이기도 하다.

그는 정확히 ‘경주장에 서기위해 사는 사람’이다. 거의 매달 크고작은 시합 대부분에 참여하고, 최소한 1년에 한차례 이상은 큰 대회의 우승컵을 안아야 마음이 놓인다. 요즘도 곧 있을 대회를 앞두고 연습에 총력, 훈련장소인 용인 에버랜드내 경기장에서 거의 종일을 보낸다.

말할 것도 없이 그의 최대 관심사도 오로지 기록단축이다. 1초도 아닌 0.1초를 다투는 미세한 시간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자신의 기록에서 단 8초를 단축하는데 꼬박 3년이 걸렸다. 혼자만으로 되는 일도 아니다. 카레이스는 사실상 개인전처럼 보이는 단체전이다. 전면에 나선 선수외에도 메캐닉(자동차의 제반 정비와 속도 향상을 위한 기술적 지원 역할), 매니지먼트와의 호흡이 절대적이다. 레이서의 고민과 아이디어, 메캐닉의 기술적 지원과 공동의 노하우가 새 기록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0.1초를 줄이기위해서 이들은 수십번 휠 얼라인먼트를 손 보거나 다른 장치를 수시로 바꾸거나 고쳐보는 등 수많은 실험과 시행착오를 거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레이서에겐 시합 자체보다 그 이면에서 준비하는 과정이 훨씬 더 길고 어렵다.

트랙은 고도의 심리전이 펼쳐지는 전쟁터

온로드 경기때 달리는 트랙거리는 약 70km. 30분가량이 소요되는 이 구간안에서 온갖 종류의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상대선수를 견제하는 고도의 심리전이 펼쳐지는 것이다. ‘성격대로 운전한다’는 말은 시공을 초월한 불변의 진리. 몇바퀴를 함께 도는 동안 레이서의 스타일이 파악되면, 그때부턴 그 스타일을 역습하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예를 들자면, 조금만 추월을 당해도 곧잘 흥분하는 선수일때는 코너링을 하면서 슬쩍 추월하는 것처럼 모션만 취하지요. 그럼 금새 발끈해서 자기 리듬을 잃고 마구 달리다가 결국엔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일찍 나가떨어지는거죠. 자기 페이스란게 그만큼 중요합니다. 제 경우엔 오히려 반대입니다. 누가 비슷한 식으로 약을 올리면 도리어 속도를 더 늦춰버립니다. 상대의 작전에 말리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결국 가장 마지막에 남는건 자기와의 싸움뿐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상황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페이스를 지키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만이 이길 수 있습니다.”

워낙 많은 차들이 한정된 공간안에 초고속 질주를 벌이다보니 사고의 위험도 높다. 실제로 지난 5월 15일 용인 스피드웨이 자동차경주대회에서도 치열한 선두다툼을 벌이던 자동차 4대가 추돌, 크게 부서졌다. 관중들로부터는 ‘국내 대회가 시작된 이래 가장 재미있는 경기’였다는 평가를 받을만큼 박진감 넘치는 경기로 환영을 받았던 시합이지만, 경기가 치열하면 치열할수록 사고의 위험도 높은 것이 사실이다. 오프로드대회는 더욱 악명이 높다. 온로드의 경우 자동차 10대중 평균 2대가 파손되는데 비해, 오프로드는 10대중 9대의 비율이다. 그래도 보는 것과는 달리 생명의 안전문제는 걱정할 것이 없다고 그는 말한다.

“하지만 인명사고는 거의 없어요. 워낙 안전장치를 철저히 하기 때문에 밖에서 보기엔 아주 위험해보여도 실제로 사람이 다치는 일은 없지요. 우린 생명보험도 못 들어요. 보험회사가 우리 직종은 아예 받아주지도 않습니다. 그건 우리가 얼마나 안전한지 몰라서 그러는거예요. 그 어느 스포츠보다도 룰을 철저하게 지키는 종목입니다. 까딱하면 그 선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기 때문에 어쩌다 본의 아니게 실수를 저지른 경우라도 가차없이 페널티를 줍니다. 룰에 관한 한 아주 엄격하지요.”

사고를 당하더라도 선수들 본인은 의연하기 짝이 없다. 고작해야 ‘내가 판단을 잘못했다’는 자책감 정도이지, 그 사고를 이유로 다른 직업을 알아본 다거나 겁을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프로로 남는 이들은 모두 이런 사람들이다.

19세부터 운전, 무역업 뒷전 결국 카레이서로

그는 90년에 데뷔했다. 인천에서 출생, 부천전문대에서 건축을 전공한 뒤 한동안 무역일을 했다. 그때 취급하던 품목도 자동차 부품. 사업을 하면서도 늘상 카레이스를 지켜보던 끝에 ‘이만하면 나도 승산이 있겠다’는 판단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 싹은 이미 학생시절부터 자라있었던 것 같다. 운전면허를 딴 것이 19세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택시사업을 하는 어머니 회사일을 잠시 도왔는데, 기사들이 면허정지를 받거나 하면, 그가 대신 택시를 몰고 나갔다. 일거리랄 것도 없었다. 워낙 운전하는 자체가 좋아 손님들이 가자고하면 그 어디든 가리지 않고 다 달려갔다. 좁은 골목이나 험한 비포장 길까지 마다않고 신이 나서 데려다주는 그를 보고 승객들은 ‘왜 이렇게 친절하냐’고까지 물었다. 하루 평균 600km 주행에, 심지어 잠 한숨 못자고 3일 연속 운전한 적도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졸리지 않았다. 너무 재미있어서다.

무역업도 벌이가 좋았다.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많았고 자동차경주는 그저 취미로만 즐겼다고 해도 지금까지 편안하게 살았을 인생이다. 하지만 그게 되질 않았다. 조금씩 사업이 뒷전이 되더니, 결국 선수로 뛰어들고 말았다.

“제 판단이 맞았지요. 그땐 열악해도 분명 몇 년안에 전문선수도 많이 생기고 자동차 경주가 크게 발전할거란 생각으로 앞을 내다보고 시작했어요. 처음엔 어렵기도 많이 어려웠어요. 전용경기장조차 없어서 트럭에 차를 싣고 가 영종도 갯벌이나 해수욕장 모래사장에서 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또 자동차회사들은 회사들대로 당장의 이윤추구만 생각하고 있어 경영진으로 부터 후원을 받기가 쉽지 않았구요. 하지만 그것도 몇 년전부터 젊은 경영자들이 오면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카레이스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예전보다 훨씬 환경이 좋아졌지요.”

데뷔후 치른 첫 시합에서 곧바로 사고를 만났다. 시속 180Km로 주행중이던 그의 차가 대파됐다. 놀란 부친이 당장 그만두라고 말렸다. 그러나 두번째로 나간 대회에서 두가지 클래스를 동시석권하는 2관왕을 차지하자 그때부터 아들을 전격적으로 ‘밀어주기’시작했다. 부인 역시 카레이스 매니아. 현재 그이 매니저이기도 하다.

작년엔 슬럼프도 겪었다. 멀쩡하던 자동차가 갑자가 시합 당일 고장을 일으키는 등 이상한 사고가 잦았고, 그런 일들이 많다보니 자연 성적도 좋지 않았다. 그럴때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는건 참 큰 힘이다. 카레이서 생활 10년에 고정팬도 생겼다. 시합만 열렸다하면 늘 같은 자리에 와 서있는 50~60명의 응원부대다. 그들 앞을 돌때면 일부러 앞차와 더 치열한 추월경쟁을 보이는 등, 나름대로 ‘팬 서비스’도 잊지 않는다.

“8살 아들 카레이서 될때까지 달리겠다”

경기장 밖의 그는 어떨까? 시합이 없을 땐 충주댐으로, 가까운 저수지로 찾아가 낚시를 즐기기도 하고, 동료 선수들과 어울려 술도 마신다. 하지만 아무리 친한들 결국 시합으로 돌아가면 서로가 한치 방심할 수 없는 경쟁상대들이다. 그러다보니 막역한 사이에도 뭔가 ‘표현할 수 없는’ 미묘한 공간이 있다. 아군은 아군인데 진짜 아군이 아니다. 참으로 이상한 사이다. 그들은. 또 일반 도로에 나섰을 땐 방어운전으로 일관하는 온순한 운전자일 뿐이다. 지켜야 되는 교통신호는 어김없이 다 지키고, 속도도 무리하지 않는다. ‘경기장엔 최소한 룰이라도 있어서 어떤 속도를 내든 안전하지만, 바깥에선 룰이란게 통하지 않아서’ 프로인 그도 조심할 뿐이다.

앞으로는 세계대회에 도전할 준비를 하고 있다. 7월에 있을 평창의 랠리에 참가하는 것도 큰 도전을 위한 일종의 출사표다. 그리고 더 시간이 흘러 현재 여덟살 난 아들이 같은 레이서로 데뷔할 때까지 길을 닦아두고 싶고, 직접 아들의 매니저 겸 감독도 맡을 계획이다. 카레이서란 ‘혼자 잘 나서도 안되고, 다른 스포츠 이상으로 수없이 닥치는 난관을 이겨내야하는 험난한 일’이라더니 정작 본인은 그 험난한 세계에서 평생 ‘은퇴’할 생각이 없는 듯보인다. 질문이 또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카레이스가 무엇이길래. 대관절 무엇이길래.

/정영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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