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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하늘에 평화의 빛이 보인다

두달 넘게 계속되던 코소보 사태가 종착역에 다다르고 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신유고연방 대통령이 서방선진 7개국 및 러시아(G8)가 제시한 5개항의 평화안을 전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끝이 보이지 않던 유고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대치상황도 매듭을 지어가고 있다.

나토의 공습이 73일째로 접어든 지난 5일 나토와 유고의 고위급 군사대표단은 마케도니아와 유고의 국경지대에서 회담을 열고 유고군의 철수, 난민의 안전한 귀환 등 핵심적인 평화안의 확인 작업에 돌입했다. 예정대로라면 코소보 철수 시작→ 나토의 공습 중단 →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 평화유지군 코소보 주둔이라는 큰 틀에서 코소보 사태는 완전 해결된다. 그러나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평화약속을 번번히 어긴 과거를 상기한다면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전망도 잇다.

평화 정착의 장애물 국제사회가 검증할 수있는 방법으로 코소보의 유고군이 철수하고 나토가 공습을 중단하더라도 코소보에 진주할 국제평화유지군의 구성과 관련한 문제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소식통들은 나토가 평화유지군의 주력군을 보장받는 대신 러시아는 공동지휘권을 인정받는 주고받기식의 거래가 성립했다고 전하지만 아직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 만약 러시아군이 평화유지군에 참여하고 지휘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평화유지군 통제영역의 이분화는 불가피하다. 최악의 경우 코소보가 친세르비아지역과 친알바니아지역으로 쪼개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없다.

또 세르비아군이 국경지대에 매설한 지뢰 제거, 코소보내 무장세력인 코소보해방군(KLA)의 무장해제 방안 등도 나토·유고 양측이 해결해야할 난제. 세르비아군이 매설한 지뢰량이 워낙 많아 지뢰제거 소요 시간이나 작전지도 인도 등과 관련 유고측이 시간끌기 전술을 펼 수도 있다. KLA의 무장해제 문제는 이번 평화안에 언급돼 있지 않지만 밀로셰비치가 줄곧 요구해 오던 사항이다.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군의 철군이 진행되는 사이 KLA가 코소보를 장악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결국 이같은 문제들을 모두 해소하고 유엔 주도의 평화유지군이 코소보로 진주하고 겨울이 닥치기 전까지 난민 정착 프로그램을 일단락짓기 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고 있다. 또 유엔은 코소보내 행정권을 행사할 임시기구를 구성하는 한편, 자치정부 수립 준비작업도 진행해야 하는 등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전쟁의 승리자 나토 19개 회원국에서 동원한 200여대의 전폭기와 잠수함, 순양함 등에서 발사되는 미사일만으로 유고의 군사·산업시설을 맹폭했던 발칸 공습은 현대전의 또다른 전형을 만들었다. 초기부터 공습만으로는 제한적 효과밖에 거둘 수 없다는 회의론이 끈질기게 제기됐지만 지상군 투입을 끝까지 거부한 나토는 단 한명의 희생자도 없이 70여일간의 전투를 성공적으로 끝낸 셈이다. 그러나 공습과정에서 여러차례 오폭사건이 불거져 나토는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기도 했다. 특히 유고주재 중국 대사관을 군수사령부로 잘못 알고 폭격하는 바람에 미중관계가 극도로 악화했다.

이번 전쟁의 제일 전승국은 단연 미국. 유고측이 향후 평화안의 내용을 실행에 옮길 경우 미국은 사실상 발칸전쟁에서 완승을 거두게 되며 탈냉전 이후 새로운 유럽질서 속에서 확실한 교두보도 마련하게 된다. 국내적으로는 코소보 개입에 대한 끈질긴 비판을 떨쳐버리고 지상군 투입에 따르는 막대한 희생과 전비의 부담도 던 셈이다.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두개의 승리’를 동시에 낚아채게 된 것이다. 이와함께 하루에도 수백발의 미사일을 쏟아붓고 공습초기 하루 1억달러 이상의 전비를 사용하면서 군수업체들은 90년 걸프전 이상의 호황을 누렸다.

전쟁의 상처 공습은 무엇보다 100여만명의 대량 난민과 발칸경제의 황폐화라는 엄청난 재앙을 불렀다. 밀로셰비치의 인종청소라는 직접적 원인이 작용하긴 했지만 공습의 부산물로 생겨난 대량 난민이야 말로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국제사회가 떠안아야 할 가장 큰 상처다. 현재 알바니아 마케도니아 등의 난민촌에서 생존과 처절한 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이 공습중단 이후 고향으로 되돌아 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95년 데이턴 평화협정으로 전쟁이 끝났던 보스니아내전 당시의 난민 130만명 가운데 단 10만여명만이 귀환했다는 과거가 이를 잘 말해주고있다.

유고측의 막대한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 2만여명이 사상했고 전투기 100대, 대포 300문 이상이 파괴되는 등 군사력도 상당부분 무력화했다. 또 정유소, 방송시설 등의 산업기반도 절반이상이 파괴돼 유고당국은 약 2,000억달러 이상의 경제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발칸 주변국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44만이 넘는 난민을 수용중인 알바니아는 예산과 경상수지 적자로 고전중이다. 마케도니아도 외국인 투자와 무역 감소로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하게 됐다.

이에따라 유럽연합(EU)은 발칸반도 경제 재건을 위한 각료회의를 10일 개최할 계획이다. 2차 대전이후 유럽경제 부흥을 위해 세웠던 마셜플랜에 비견되는 ‘소마셜플랜’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로마노 프로디 EU 집행위원장은 이와 관련 코소보 재건에 앞으로 5년에 걸쳐 300억유로(306억달러)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발칸재건은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이 떠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고를 제외한 대부분의 발칸 국가들이 회원국이어서 EBRD가 효과적으로 나설 수 있다. 또 EBRD는 당초 91년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구소련 블럭이던 동구의 시장경제 복구를 목표로 설립돼 이미 다수의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중이었다.

그러나 유고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은 밀로셰비치가 정권을 잡고 있는 한 쉽게 성사되지 않을 전망이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세르비아에 독재자와 전범이 지도자로 존재하는 한 발칸의 재건에 참여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축출과 재건계획을 연계시킬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재 밀로셰비치는 유고전범 재판소에 기소된 상태로 그의 처리과정도 국제적 관심사가 되고있다.

김정곤·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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