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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세상읽기] 삭발을 해야하는 사회

삭발(削髮). 그냥 머리를 깎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머리카락을 아주 박박 밀어 버린다는 뜻이다. 삭발은 신체 일부를 잘라 버리는 행위다.

불가에서는 끊음의 상징이다. 속세와의 단절. 부처님에게 들어가는 문을 두드리는 절차다. 그래서 ‘삭발’은 곧‘출가’나 ‘승려가 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무수한 머리카락처럼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일체의 번뇌를 깨끗이 밀어버리는 상징적 행위. 그들이 평생 머리를 기르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마음이 이어지고 있다는 표현이다.

이런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언제 삭발을 하게 되는가. 한국 땅에 산 40대 이상이라면 일생에 두번 삭발을 경험한다. 한번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검은 교복에 박박머리.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6년동안 적어도 겉옷과 머리만은 모두 똑같아야 했다. 통일성이라도 하고, 개성의 말살이라고도 한다. 군국주의, 군사문화의 산물이다. 그 박박 머리속에서 청소년들은 잘린 머리카락만큼이나 자유와 꿈을 억제당했다.

그리고 또 한번, 우리는 강제로 삭발을 한다. 군대에 갈 때. 젊은이들은 눈시울을 적신다. 그 눈물은 머리조차 이제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서글픔이다. 군대에서의 삭발은 능률이다. 전투에서 긴머리가 가지는 불편함과 약점을 강조한다. 각자의 개성을 보다는 체계적이고 획일적인 명령체계가 필요한 집단.

삭발을 강요하는 사회는 개인에게 항복을 요구한다. 다른데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 해라. 전투에서 개인의 입장은 없다. 명령에 복종하라. 그 제도에 인간은 자신을 포기한다. 승려가 번뇌를 끊듯 자신의 삶을 잠시 접어 둔다. 그것에 항거하면 또 한번의 삭발이 감옥에서 기다린다. 죄값을 치르듯 머리부터 자른다.

이렇게 사회제도와 관련된 삭발은 인생에 하나의 전환점을 상징한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가는 길, 청소년에서 성인으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한번씩 통과의레를 치른다. 감옥에서의 삭발 역시 신체적 자유에서 구속으로 가는 길목이다.

그래도 여전히 다른 삭발이 남아있다. 굳은 결심과 저항으로서의 삭발. 고시생은 합격의 일념을 다지기 위해 삭발을 하고, 양심수들은 무너지는 정의를 지키려 머리를 깎는다. 파업중인 근로자는 전달되지 못한 자신들의 뜻을 기필코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로 삭발을 감행한다. 삭발은 외형상 인간이 신체를 다치지 않고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의사표시다. 그것이 아무런 역할을 못할 때 분신이라는 목숨을 건 행위로 치닫는다.

16일과 18일 한국의 영화인 113명이 삭발을 하고 거리로 나섰다. 정부가 투자가 필요해, 아니면 미국의 압력에 못견뎌 6개월전의 약속을 저버리고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146일)를 축소하려는 움직에 분노하고 있다. ‘세친구’의 여성감독 임순례 는 “항거의 마지막 수단으로”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의 이은 감독은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실망의 표현으로” ‘개같은 날의 오후’의 이민용 감독은 “새로운 투쟁의 시작으로” 26일‘이재수의 난’개봉을 앞둔 박광수 감독은 “영화인들의 의지와 각오를 알리기 위해”라고 했다. 그리고 강제규 감독은 “다시는 영화인들이 삭발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지었다.

그들은 거리에서 외쳤다. “왜 우리가 우리의 영혼(영화)을 잃지 않고, 문화주권을 지키자는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고. “깎은 머리는 시간이 지나면 자라고, 추락한 경제는 서로가 땀흘리면 제자리를 찾지만, 문화와 정신은 한번 빼앗기면 다시 되찾기 어렵다”고. 프랑스감독들은 말한다. “스크린쿼터 유지 요구는 영화인들의 집단이기주가 아니다. 내 언어를 지키는 일이며, 그나라 정체성과 상상력을 지키는 일”이라고. 이런 당연하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언어를 쓰는 영화인들.

우리는 아직도 이처럼 삭발을 해야하는 사회, 그래야만 뜻이 전달되는 사회에 산다. 이대현·문화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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