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열린교육] '다친교육' '닫힌 마음'

교사-학부모-학생, 교육의 세주인은 열린교육에 대해 각기 다른 입장과 고민에 빠져 있다. 작년 서울 신구로초등학교가 아동(769) 학부모(814) 교사(55)를 상대로 벌인 조사가 이같은 현실을 잘 보여준다.

교사들은 우선 열린교육의 효과에 대해 회의적(58.6%)이었다. 열린 교수·학습은 월 1회 정도(71%)밖에 실시하지 않고 있었다. 수업 준비시간이 과중하고 미미한 자료와 제작의 고충, 이론의 미비 같은 애로사항이 이유였다. 학부모나 아동이 열린교육을 바란다고 믿는 교사도 50%가 채 되지 않았다.

학부모들도 열린교육에 대해 잘알지 못한채(81.6%) 기존 수업방식을 선호했다(82.7%). 한편으로 학습환경이 적합지 못하고 현장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도 부모들이 떠맡아야 하는 학습도우미는 필요하지 않다(54%)고 답변했다.

상대적으로 열린학습에 큰 관심(78.5%)을 쏟고 있는 학생들도 학습자료 시설의 부족, 다양하지 못한 학습장소와 융통성없는 시간표 운영 등을 지적했다.

잡무, 무능력 시비에 시달리는 교사들, 네 멋대로 살라

교사들의 고민은 복잡해지고 있다.

일본 교원노조가 초등교사 1,200명에게 ‘고민내용’을 물은 결과 학생을 이해할 수 없다(19.6%), 가정과 사회가 변해 지도하기 어렵다(14.3%), 학생들이 자제심이 없다(9.7%), 아무 것도 스스로 하려 하지 않는다(6.7%) 순이었다.

일본의 상황은 우리 교육현장의 모습이 되고 있다.

교육개혁의 기조는 가만히 내버려두면 스스로 하게 되고 스스로 좋아서 하는 것이 참된 학습이라는 열린교육·수요자중심교육으로 집약된다. 이에 대한 교사들 반응은 ‘제자들에게 네멋대로 살라고 해야 21세기 교사가 된다’는 자조에 가깝다.

현재 교사들은 열린교육을 위한 무시험전형, 신인간론, 특기적성교육, 수행평가, 수준별 이동수업, 창의적 시간운영, 체벌금지 따위를 막무가내로 떠맡고 있다. 이는 종전과 판이한 학생 지도를 요구하고 있다. 공부나 열심히 하라는 말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있다. 수업, 생활지도 인성교육, 자치활동 모든 면에서 교사들이 해야하고 신경쓸 일은 더 많아졌다.

그렇지 않아도 나이 50세만 넘으면 학생-학부모가 불평하는 사태가 발생, 자칫하면 무능교사로 몰아부쳐지기 십상이다. 어떻게 수업할까, 어떻게 생활지도를 해야하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고 성과급이니 보수차등화니 해서 교사들은 더욱 멍들고 있다.

그러나 여론은 교사를 개혁의 대상으로 비아냥대며 냉소나 보내고 있고, 학생들은 통제권에서 벗어나 무서울 게 없는 10대가 돼 있다. 숙제검사하다 얻어맞는 교사, 흡연지도하다 코뼈가 내려앉힌 교사 등 학생들의 일탈은 날로 발전하고 있다. 책 노트가 없거나 수업중에 떠들거나 졸거나 하면 ‘첨단무기’ 수행평가로 감점하지만 태도가 싹 달라지는 학생을 보면 수업할 맛이 싹 가시고 비겁함마저 지울 수 없다.

변화에 응하는 교사들은 교육계가 겉으로는 ‘명퇴신청 속출’등의 모습으로 동요를 보이고 있지만 속으로 곪는 교육 황폐화가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내놓은 ‘교육비전 2002-새학교 문화창조’가 잡무의 창조가 아니냐는 비난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새학교 문화는 밀어부치기식 수행평가, 수준별 이동수업, 특기적성교육, 창의적 시간운영, 수십가지의 운영계획을 세우고 월·분기마다 실적보고를 요구한다. 수업준비, 수업, 특기·적성교육 활동으로 벅찬데 아침부터 쏟아지는 보고공문으로 “아이들 때문에 사무 못보겠다”는 말이 교사들 사이에서 나올 지경이다. 그래서 교과연구나 학생지도 상담은 제쳐두고 온종일 말도 안되는 실적보고에 매달려 학교에 근무하는 것이 학생을 가르치러 오는 건지 사무를 보러 오는 건지 확신이 안선다고 한다.

한 교사는 “작년에 처리한 공문이 5권 1,000쪽이고 금년에 벌써 3권째 들어섰다. 하루 앞두고 무슨 계획서, 심지어 몇시간 앞두고 계획서를 시간엄수 보고하라는 공문이 다반사다”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학부모, 열린교육 엄마만 찾는다

밤 10시20분에도 초등학교 1학년인 자식이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엄마와 입씨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 아빠.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수행평가인지, 도대체 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 그는 자신들도 억지로 한다는 대답을 담임교사에게 들어야 했다.

또 다른 초등학교 1학년 아이를 둔 어머니는 학교에서 보낸 어린이 생활본을 보고 놀랐다. 물론 많은 부분은 비교적 좋은 내용이 있었지만 과연 그것이 초등학교 1학년에 맞는 내용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의 격언을 써내라고 하면 격언이라는 말을 과연 알 수 있을까. 태극기 건곤감이의 위치나 태극의 크기를 설명하면서 지름의 12분의 1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초등학교 1학년이 이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학부모는 열린교육을 명분으로 엄마를 불러들이는 학교가 또 싫다.

어머니회, 저학년 청소, 급식당번, 체육진흥회, 아람단, 우주정보 소년단, 해양소년단, 보이·걸스카우트…. 이런저런 명분을 내세워 학교에 자주 나올 것을 강요하고 배식도 하고 청소도 하라고 한다. ‘자식둔 죄를 진’ 어머니들은 부르면 가고 할일 있으면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도우미란 이름으로 활동참가는 물론 모든 회비 회계까지 맡기면 가정교육과 학교교육은 무슨 차이가 나는 걸까.

“열린교육한다고 부모를 학교에 자주 부르는 것은 담임한테 뇌물을 더 많이 바치란 소리와 뭐가 다른가.” 학부모들은 이런 구조가 촌지사태 교사불신 치맛바람이라는 부작용을 낳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다.

올해부터 시행된 수행평가는 부모숙제로 전락했다. 무우씨 강낭콩의 싹을 틔워올 것, 배추 흰나방알을 구해 올 것…. 한달치 수행평가 자료가 가정통신문으로 오면 시름부터 생기고 이리저리 자료찾느라 아우성이다.

그래서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는 교육개혁이라지만 학원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생의 과외에서도 수행평가 책임지겠다는 벽보가 여기저기 나붙어 있다. 준비안된 깜짝식은 아닌지, 아무 생각없이 과거를 답습하는 것은 아닌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학부모들은 말한다.

학생, 슬픈 슈퍼맨

“우리는 학교를 다니고 싶은 거지, 어른들이 펼쳐놓은 상자안에서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는 공이 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학생들은 특히 올해부터 시행된 수행평가로 혼란스럽고 목이 조여 있다.

수행평가는 98년 10월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한 현 정부의 교육개혁에서 무시험 전형과 함께 등장한 용어다. 창의적 능력을 키운다는 이름을 앞세웠지만 학생들은 선생님들이 제자 다루기가 쉬워졌을 뿐이란 반응이다.

지난 석가탄신일 연휴날. 부산의 한 여중 3년생이 하루동안 해야할 수행평가과제들은 사회보고서, 감상문, 기술산업보고서, 환경신문만들기 등등. 따로 해야 하는 학교숙제도 엄청나다. 매일같이 과제에 매달렸지만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이 학생은 “친구들이 다들 슬픈 슈퍼맨 같다. 시험공부 수행평가 두장단에 맞춰 춤을 추려니 허리가 뒤틀리고 화가난다”고 했다.

서울 고등학교 1년생도 같은 심정이다. 학교의 수행평가 과제물이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르면 하기 힘든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반 아이들중 40~50%정도는 집에 컴퓨터가 없거나 있어도 오락정도 밖에 할줄 모른다. 그래서 그런 류의 숙제가 있으면 할 줄 아는 아이들 한테 부탁을 하는 수밖에 없는데 친구사이에 해주자니 시간이 아깝고 안해주자니 요즘 심각한 ‘왕따’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다.

수행평가 실시후 학생들은 주말이면 도서관이나 인터넷방에 가서 자료를 찾느라고 바쁘고, 덕분에 취미시간은 물론 시험공부 할 시간조차 부족한 실정이다. 인천의 한 고교에선 조사보고서 숙제를 내주자 인근 도서관이 마비되는 촌극도 벌어졌다. 대부분 방과후 자료를 찾으러 도서관에 한꺼번에 몰려들어 서너시간씩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조그만 실수에도 1점 마이너스 혹은 가새표 한개가 날아와 학생 들은 하루하루 수업시간이 불안하다. 수업시간에 친구한테 지우개 빌리다가 걸려서 감점을 당하거나, 똑같이 베꼈는데 어떤 아이는 글씨를 크게 서서 공책 한장 반 분량이라고 A, 글씨를 작게 쓴 아이는 공책 한장 분량이라고 해서 B를 받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진다.

그러다 보니 한 여고생은 “옐로우카드제, 점수 1점에 친구들과 의가 상하고 학교분위기는 삭막해졌다”고 한다. 서울의 한 중학생은 “선생님들은 마치 기계인간 같고 아이들을 점수의 노예로 만들고 있다. 친구들과도 서로 눈치보고 관계도 나빠져 다른 아이가 더 점수를 깎여야 내 점수가 잘나온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이태규 주간한국부 기자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 카카오
배너
2020년 05월 제2829호
  • 이전 보기 배경
    • 2020년 05월 제2829호
    • 2020년 05월 제2828호
    • 2020년 05월 제2827호
    • 2020년 05월 제2826호
    • 2020년 04월 제2825호
    • 2020년 04월 제2824호
    • 2020년 04월 제2823호
    • 2020년 04월 제2822호
    • 2020년 03월 제2821호
    • 2020년 03월 제2820호
  • 이전 보기 배경
저번주 발행호 다음주 발행호
  • 지면보기
  • 구독안내
  • 광고문의
  • * 지면문의
    전화 : 02-6388-8088
    팩스 : 02-2261-3303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 온라인 광고
    전화 : 02-6388-8019
    팩스 : 02-2261-3303
    메일 : adinfo@hankooki.com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56길 19 드림타워 10층

많이 본 기사

주간한국 유튜브 채널

서진의 여행 에세이

이탈리아 피렌체 이탈리아 피렌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