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 21] 인문학의 위기

07/14(수) 11:59

‘빵을 만들지 못하는 학문은 도태돼야만 하는가.’

경기도에 있는 한 사립대학은 올해초 신청학생이 적은 강의를 담당하는 몇몇 인문계 교수들에게 일반 사무직 일을 겸하도록 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통상적으로 교수에게 관리보직은 승진의 개념. 그러나 이 대학은 승진이 아닌 단순한 사무인력보강 차원에서 구조조정을 했다. 교수들은 머리에 띠를 두르고 ‘부당함’을 외쳐려 했지만 오히려‘살아남기 위한 적절한 처방’이라는 대학측의 당당함에 할 말을 잃었다. 자존심을 꺾지 않은 일부 교수들은 사표를 제출하고 전문대로 떠났다. 더구나 이대학은 국내 5대 재벌 그룹이 재단을 이끌어 소위 지방 사립대중에서도 잘나가던 대학중의 한 곳. 따라서 교육계에 미친 파장은 더욱 컸다. 이처럼 ‘자존심’마저 철저히 짓밟혀야 하는 현실, 그것이 이 시대 한국 인문학의 현주소이다.

정부의 이번 ‘BK21’ 교육개혁안은 ‘지방대의 퇴출위기’라는 명제를 먼저 수면위로 끄집어 냈다. 하지만 많은 국내 인문학자들은 이것이 과학기술을 제외한 여타 학문들의 상대적 위축을 초래, 결국 가장 취약한 ‘인문학을 고사(枯死) 상태로 몰고 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시인은 궁핍한 시대에 살아야 한다’는 독일의 천재시인 횔덜린의 지적을 다시금 곱씹어야 할만큼 인류는 나날이 과학과 산업기술의 진보와 함께 풍요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그리고 지속적인 과학의 진보와 발전을 추구해야할 학문의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 인간 정신세계의 산물인 문학과 예술 철학, 그리고 인간의 진보와 발자취를 연구하는 역사, 사회, 정치, 인류학 등 순수학문에 대한 연구는 이제 도서관의 먼지 낀 서재안에서만 맴돌고 있다.

이번 ‘BK21’ 프로젝트가 제시한 재정지원비율만 봐도 인문사회학에 대한 교육 당국의 인식을 쉽게 알 수 있다. 정부는 연간 2,000억원에 달하는 지원액중 900억원을 과학기술분야에 배정하고 인문학에는 겨우 100억원을 책정했다. 9대 1의 비율인 셈이다. 나머지 인프라 구축 배정된 500억원의 대부분이 과학기술 분야로 흘러들어 갈 가능성이 높아 실제 차이는 휠씬 더 커질 것이 명백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인문학내에서 조차 희비가 엇갈린다는 것이다. 당장 실생활과 접목되지 않는 순수 인문학이 더욱 차별을 받고 있다.

학문의 최전방인 대학을 들여다 보면 이런 현상은 극명하게 나타난다.

4~5년전부터 국내 4년제 대학은 거의 대부분 학부제로 신입생을 선발한다. 이 학부제 밑에 계열을 나눠 놓은뒤 수업을 받고 학점도 이수하게 된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보다 폭넓은 교육 기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입한 이 학부제가 오히려 학문별 서열화를 부추기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한 예로 경상계열내에 있는 경제학 경영학 무역학 회계학 등 다양한 과목중 경제학과 같은 기초 학문을 하는 학생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반면 경영 무역 회계 등 실무나 이른바 취업에 도움이 되는 실무 응용학문에만 학생들이 편중되고 있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번 ‘BK21’ 프로젝트도 바로 이런 학생들의 수요가 있는 학문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겠다는 의도라고 보고있다.

여주대학의 김소형교수(세무회계과)는 “현재 대학 현장에서는 소위 취업과 관련된 인기학과에 학생들이 몰리는 편중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로인해 순수학문의 경우 교수들 조차 미래를 확실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것은 ‘인문학의 위기’가 아닌 ‘인문학자들의 위기’라고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그간 우리의 인문학은 사실 우리가 숨쉬고 생활하는 ‘삶’과 동떨어진 곳에 머물러 왔다. 사회 현실을 담아내고 이를 통해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책무를 소홀히 한점이 없지 않다.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변화의 몸부림은 외면한 채 개별학문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고 있었다는 따끔한 질책을 피하기 어렵다. 박정신 오클라호마 주립대교수(역사학)는 “지금 인문학의 위기는 현실 접목을 외면해온 인문학자들의 위기라는 편이 더 적절하다”고 꼬집었다.

미국에서 교육지원을 결정하는 미국과학재단(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21세기 교육전략중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바로 인성교육(Personality Education)이다. 그 다음이 공학·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접목이다. 대표적인 실용주의 국가이자 과학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미국이 물질적 풍요에 앞서 정신적 성숙을 더욱 큰 교육의 가치덕목으로 두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학계에서는 이번 ‘BK21’파문을 계기로 대학 교육의 본질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80년대 후반까지만해도 대학의 주기능은 전인적인 인성 교육의 장으로 인식돼 왔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특화된 기술을 요하는 첨단 과학 시대에 접어들면서 대학의 성격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대학은 이제 단순히 ‘탁상공론’을 하는 곳이 아니라, 정부 사회 기업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학문적 이론을 실제 ‘손에 잡히는’것으로 만들어 내는 전초 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특히 대학재정이 부실해지고 대학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학의 ‘정부 종속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현재 지방사립대의 경우 재정의 절반 이상이 학생들의 등록금이고 정부 보조금이 30~40%에 달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지나친 대학의 실용화가 인성 개발의 요람인 대학 본연의 임무를 왜소화시켜 결국 정신문화의 파탄으로 이르게 할 것이라는 우려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다가오는 21세기는 분명 첨단과학의 시대가 될 것이다. 국제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선 과학 기술 분야에 대한 과감하고 효과적인 투자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 세계에 대한 자양분을 공급하는 것을 게을리 한다면 물질적 안락함보다 더 힘든 정신적 황폐화를 겪을 수도 있다는 점을 정부 당국자들이 간과해선 안된다.

또한 인문학자들도 허약할 대로 약해진 이론을 ‘실용’이라는 갑옷으로 무장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송영웅·주간한국부 기자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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