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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 21] 장밋빛 계획, 회색빛 현실

‘두뇌한국(Brain Korea·BK) 21’. 교수들이 거리로 나오게 된 기폭제다. 교수들은 BK21 사업이 “대학의 전면적 황폐화를 초래할 것”이라며 전면 백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BK21의 목적과 내용을 들여다 보면 문제가 그리 간단치 만은 않다.

BK21은 세계적 수준의 대학원 중심대학 육성을 내걸고 교육부가 이해찬 전장관 당시인 98년 4월 입안에 들어가 1년간의 작업끝에 확정했다.

BK21의 핵심은 일부 대학원과 대학을 각각 연구중심대학과 지역우수대학으로 선정해 올해부터 2005년까지 7년간 1조4,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것.

주요내용은 이렇다.

세계수준의 대학원 육성/ 정보기술, 생명공학 등 첨단분야별로 4~6개의 세계적 연구경쟁력을 갖춘 대학원을 선정해 지원한다는 것이 골자.

그러나 지원분야는 ▲한국학, 문화학 등 인문·사회과학 및 기초학문분야 ▲한방, 생약 등 고유산업분야 ▲디자인, 영상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신산업분야 등 사실상 전부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연구중심대학 지원사업에서 제외된 부문에 대해서는 학술진흥예산으로 별도 확보된 1,000억원으로 지원한다.

연구중심대학으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대학원 전담교수를 둬야 하고 이로 인해 줄어드는 교수 수만큼 학부생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 대학원 정원도 지역우수대학 등 타대학 출신자에게 50% 이상을 배정해야 한다.

연구중심대학은 정부 지원금을 70%로 하고 나머지 30%는 산학협동 차원에서 기업출연을 비롯한 외부 지원금으로 확보해야 한다.

연구수준 향상/ 7개년 계획이 끝나는 2005년에는 특허출원 건수를 98년의 1만7,000건에서 4만건으로 끌어올려 연구역량을 2배 이상 키운다는 게 목적. 이렇게 해서 작년기준으로 세계 22위에 불과한 인적자원의 국제경쟁력을 크게 신장시킨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아시아 경쟁국인 싱가포르, 홍콩, 대만에 비해 크게 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역우수대학/ 지방대학 학사과정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부문별, 권역별로 5~6개 대를 선정, 7년간 3,500억원을 투입한다. 선정기준으로는 세부학과의 통·폐합 등을 통해 특성화한 학사과정을 운영하는 대학에 우선권을 준다. 아울러 대학간 연합체 구성과 기업, 지자체에 의한 일부 재정부담이 참여조건으로 부가된다.

교육부는 우리나라 대학원의 질적 수준을 감안해 대학간 컨소시엄에 지원하는 것도 적극 검토하고 있다. 대학간 컨소시엄이 형성될 경우 중심대학은 서울대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대 등 3개 대학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들 3개 대학이 각각 부문별 컨소시엄의 중심이 돼 다른 대학 1~2개를 끌어 들이는 형태로 경쟁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지원은 특정 프로젝트(연구)를 기획한 사업단에 대해서 이뤄진다. 따라서 참여를 원하는 대학은 단독, 또는 대학간 컨소시엄 형태로 사업단을 구성해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대학원 연구인력 지원에 촛점

BK21사업은 당초 이달 20일 접수가 마감돼 8월말 선정완료, 9월초께 자금이 지원될 예정이었다.

BK21이 대학에 대한 종전의 지원사업과 다른 점은 ‘학문 후속세대의 양성’을 위한 석·박사과정 학생, 즉 대학원 연구인력에 대한 지원으로 큰 방향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지원이 연구과제가 아닌 대학원 자체의 연구능력 향상에 초점을 맞춰 실행되는 것은 사실상 처음있는 일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석·박사급 연구인력의 95%가 대학에 몰려 있다. 그러나 특정 프로젝트에 대해 민·관차원에서 지원되는 연구비중 이들 연구인력에 지급되는 연구수당은 ‘새발의 피’에 불과하다. 이로 인해 대학원생들은 생계를 위해 연구와 무관한 부업을 해야만 하는게 현실이다.

교육부는 결과적으로 거센 외부의 반발에 직면하긴 했지만 계획·입안과정에서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엿보인다. 기존의 지원사업이 이공계 분야에 치중됐던 것에 비해 이번에는 인문학, 사회과학을 비롯해 예술계 쪽의 지원도 포함해 균형을 도모했다.

나아가 교육문제의 대명사인 대학입시의 부정적 측면을 개선하는 것도 고려에 넣고 있다. 사업의 수혜자가 될 것이 확실시되는 서울대 등 기존 명문대들은 지원에 대한 반대급부로 학부규모를 감축해야 한다. 따라서 맹목적인 명문대 지원 풍토는 다소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 교육부의 예상이다.

교육부는 사업 입안과정에서 20명으로 이뤄진 ‘대학원위원회’를 구성, 98년 4월부터 10여차례의 공청회를 열었다. 해외 석학을 초빙해 간담회도 7차례 열었고 이해찬 장관이 11회차례 지역간담회를 가졌다.

자율성 훼손, 특혜 등 부작용 우려

그러나 BK21은 사업공고 하루전 이장관이 경질되고 공고가 연기되면서 풍파가 일기 시작해 결국은 교수시위 사태로 까지 치닫게 됐다.

교수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세가지.

첫째는 대학의 자율성 자체가 크게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 교수신문사의 이영수 교수(경기대 교육학과)는 “교육부가 돈줄을 잡고 학원을 통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학원을 민간기업과 동일 차원에서 접근, 사업단이란 이름아래 지원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웃긴다”는 이야기다. 경제논리와 시장논리에 사로잡힌 한시적 정권이 교육의 방향성을 재단하려는 것은 난센스란 비판도 있다.

둘째는 BK21이 결과적으로는 서울대 등 극소수 대학을 특혜지원하게 된다는 비판이다. 일정 규모와 수준의 대학을 집중지원하게 되면 기존 수혜대학이 또 수혜자가 돼 결국 대학간 빈익빈 부익부를 심화한다는 주장이다. 세계수준의 대학원 육성은 대학간의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지 몇몇 대학에 대한 특혜적 집중투자에 의해 이뤄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이들은 BK21이 시행될 경우 선정되지 못한 대학은 들러리로 전락, 기존의 명문대를 중심으로 한 대학의 수직적 계열구조가 고착화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대학을 ‘돈’의 논리로 재단할 경우 기초학문 육성은 물건너가게 된다는 주장이다. 기초학문없는 응용분야 연구는 한마디로 사상누각이라는 설명이다. 단적인 예는 BK21의 선도분야에서 수학이 ‘왕따’된 것. 고도의 수학지식 없는 첨단학문의 연구개발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인문과학 등 기타분야에 대한 지원도 사실은 구색맞추기, 끼워넣기식에 불과하다는 비난도 없지 않다. 최근 서울대 교수협의회에서도 반발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밖에 사업팀 참가 대학원의 교수요원 자격요건에 대한 시비도 만만찮다. 교육부 방침에 따르면 사업팀은 최근 3년내 과학색인논문(SCI)에 실린 논문실적이 5편 이상인 교수들이 60% 이상이 돼야 한다. 기준의 자의성도 문제지만 교육부의 요구에 따를 경우 “아인슈타인도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다“는 아이러니한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년 남짓한 입안·확정 과정을 거치면서 BK21은 많은 곡절을 겪었다. 거액이 들어가는 사업이니 만큼 분야와 교수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를 수 밖에 없고 교육부의 당초 취지가 상당히 희석된 것도 사실이다. 최근 정부가 반발에 못이겨 논의중인 수정안의 방향은 BK21의 방향선회를 지나 자칫 대학경쟁력 강화 자체를 공전시킬 공산도 없지 않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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