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에 소문난 한국 음식점치고 김치가 맛없는 집은 없다. 메인 메뉴가 아무리 맛있더라도 김치가 형편없으면 소문조차 안난다. 그만큼 김치는 손님 끄는데 중요하다. 소문난 음식점치고 김치를 담그는데 정성을 들이지 않는 집이 없는 것도 이때문이다. 서울서 맛있다는 김치와 만드는 법, 거기에 쏟는 정성을 소개한다. /정진황·주간한국부기자

수펙스김치: ‘한국에서 가장 비싼 김치’ ‘대통령이 해외순방할 때 청와대에서 준비해가는 김치’ ‘가장 과학적으로 만드는 김치’

서울 쉐라톤 워커힐호텔에서 제조, 판매하는 수펙스김치에 붙은 별명이다. 이 호텔 김치에 이처럼 여러가지 요란한 별명이 붙은 것은 김치의 맛을 과학적으로 분석, 이를 바탕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

수펙스김치를 먹어본 사람들은 “1년 열두달 언제 먹어도 항상 깔끔하고 담백하다” 고 말한다. 맵지 않은 대신 시원한 맛이 뛰어나고, 적당히 익은 상태에서 내놓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환영받는다는 것이다.

이 호텔서 김치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홍준기씨(30)는 “김치의 맛을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젖산농도를 맞추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수펙스김치는 언제나 젖산농도가 0.65%다. 우리는 농림부산하 한국식품개발연구원과 공동연구로 이 정도의 젖산농도가 우리 입맛에 가장 알맞다는 것을 찾아냈다” 고 말한다. 젖산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섭씨 4도에서 약 20일간 익히는데 이때 PH농도도 약간 시큼한 상태인 4.3을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수펙스김치가 1년 열두달 똑같은 맛을 낸다는 소문이 나온 것도 이때문이다.

수펙스김치의 재료는 경기지역 가정에서 담그는 일반적인 배추김치와 다른게 하나도 없다. 다만 최상의 품질을 가진 재료를 사용할 뿐이다. 결국 수펙스김치는 과학적 자료와 최고의 재료가 버무려진 김치인 것이다.

쉐라톤 워커힐호텔이 이처럼 초고급김치를 만들고 있는 것은 고(故) 최종현 SK그룹회장의 특별지시에 때문. 서울농대 농화학과를 졸업하면서 김치를 주제로 졸업논문을 썼던 최회장은 SK그룹 계열인 세라톤 워커힐호텔 식당을 둘러보며 “김치를 제대로 만들면 어떤 음식도 잘 만들 수 있다” 며 최고의 김치를 만들 것을 주문했다는 것이다.

호텔측은 90년부터 본격적인 김치연구에 들어가 95년에야 현재의 수펙스김치를 개발해냈다. 서울 경기지역 상류계층에 내려오는 배추김치를 기본으로 했다. 수펙스는 SK그룹의 경영모토로 ‘수퍼 엑셀런트(SUPER EXECELLENT)’ 의 약자. 최고수준을 지향한다는 뜻이다.

동촌 김치: 홍익대 입구에 있는 ‘동촌’ 식당을 운영하는 전통음식 전문가 조정강씨(63)의 집안 내림 김치다. 조씨는 어머니의 손맛을 강조한다. 스스로도 “특별히 전통음식을 연구한 것이 아니고 할머니와 어머니의 음식솜씨를 옆에서 배우며 내려받았다” 고 말할 정도.

동촌은 유명인사들이 즐겨 찾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특히 동촌탕이라는 사골국과 이에 곁들인 갓김치와 전어깍두기를 잊지 못하는 손님이 많다. 동촌은 계절마다 다양한 김치를 선보이는데 조씨는 “어떤 채소라도 김치로 만들어 먹을 수 있다” 고 말한다.

가장 특징적인 동촌김치는 전어를 통째로 넣어 삭힌 전어깍두기. 3년전에 농협을 통해 전어깍두기를 소개했는데 전국에 전어가 동이 날 정도로 가정에서 많이 담갔다는 말이 전해진다. 생선을 통째로 넣으면 비린내가 나지 않을까 싶지만 40일정도만 삭히면 비릿내가 완전히 없어진다는 게 조씨의 설명. 전어깍두기는 독에서 금방 꺼내면 향긋한 냄새가 나는데 먹으면 ‘시원하다’ 는 느낌을 받는다. 깍두기에 들어있는 전어는 그냥 씹어먹을 수 있다.

손님들이 또 많이 찾는 것은 갓김치다. 갓김치의 특징은 3년을 삭힌 갈치젓갈을 사용한다는 것. 여러가지 젓갈을 사용해 실험을 해봤지만 갈치외에는 갓김치 특유의 제대로 된 맛이 나오지 않더라는 조씨의 설명이다. “왜 그러냐” 는 물음에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라고 말한다. 김치마다의 독특한 맛은 오랜 세월 경험이 쌓이고 쌓여 체득된 산물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조씨는 “어머니의 손맛은 바로 젓갈에서 나온다 해도 틀리지 않다” 며 “젓갈은 3년이상 발효시켜야 제맛이 나고 건강에도 이롭다” 고 말한다.

남포면옥 동치미: 평안도 음식인 어복쟁반과 냉면에는 동치미가 필수다. 동치미는 시큼한 맛이 청량감과 함께 입맛을 돋구는데 그만이다.

남포면옥은 38년 역사를 지닌 전통 평양냉면집. 평남 진남포 출신 곽봉순씨(82)가 중구 다동에 터를 잡고 평양냉면을 선보이며 유명해졌다. 지금은 곽씨의 아들 이재현씨(45)가 운영하고 있다.

남포면옥에 들어가면 입구에 항아리가 줄을 서 있다. 항아리마다 날짜가 적혀있는데 바로 동치미를 넣어둔 날짜. 날짜별로 꺼내 밥상위에 올라간다.

동치미를 만드는 비법은 별다른게 없다. 다만 독에 넣고 잘 삭히는 것이 비법. 무와 생강 마늘 대파를 넣고 소금에 절인 뒤 하루동안 놓아둔다. 다음날 물을 부어 속성을 하는데 더운 여름은 4~5일, 겨울은 약 12~15일정도 익힌다. 제대로 익힌뒤 뚜껑을 열면 톡 쏘는 냄새가 코를 자극할 정도.

요즘은 냉면이 여름음식으로 알려져있지만 원래 평양에서는 겨울음식이다. 이냉치냉(以冷治冷)을 했던 셈. 마찬가지로 동치미도 겨울에 시원한 맛으로 먹었다.

냉면은 양지머리 육수를 사용하는데 손님중에는 동치미맛에 반해 동치미를 국물로 해 냉면을 먹기도 한다.

이씨는 “가정이나 음식점에서 시큼한 맛을 내기 위해 식초를 넣는 일이 있는데 동치미의 맛을 버리게 된다” 며 “자연식품 그대로의 맛을 살리는 것이 비결” 이라고 말했다.

진고개 보쌈김치: 원래 보쌈김치는 개성김치가 유명하다. 충무로와 동대문 등 두 곳에 있는 ‘진고개’ 식당의 보쌈김치는 개성김치를 응용한 것. 바깥 배추잎속에 양념을 버무린 배추와 나막무 임삼 대추 배 오이 잣 동태전 청각 등을 넣어 여름에는 2~3일, 겨울에는 6일정도 삭힌다.

진고개 보쌈김치는 인삼 대추 배 등이 들어가 다른 김치에 비해 단맛이 나는 게 특징이다. 신맛과 단맛이 어우러져 입맛을 자극한다. 매운 맛이 덜하고 싱싱함이 배어있어 일본인 관광객도 진고개를 즐겨 찾는다.

정상철씨(69)가 63년 충무로와 동대문에 식당을 열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보쌈김치의 맛은 찬모 세사람의 손끝에서 나온다. 이 식당에서 20년이상 일해온 베테랑들이다.

2~3일에 한번씩 300~350포기를 담는다. 보쌈김치는 여러가지 재료가 들어가 빨리 시는 것이 특징. 신 김치는 종업원들의 몫이다. 너무 시면 보쌈김치의 제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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