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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 21] 오락가락 교육정책, 한국두뇌들만 멍든다

‘두뇌한국(Brain Korea·BK)21’. 교수들의 시위. ‘BK21’전면수정·보완….

‘BK21’은 정부발표와 언론을 통해서 들어본 이야기고,‘전면 수정·보완’도 어디서 많이 듣던 레퍼토리라 치고, 그런데 교수들의 시위는 뭔가 낯설다. 교수들이 집단으로 거리로 뛰쳐나온 것은 60년 4·19혁명 이후 처음이다.

4·19혁명 당시 헌정과 민주주의의 위기상황에서 마지막으로 교수들이 나섰으니 이상할 건 없지만 39년만에 또다시 거리로 나선 건 무엇 때문일까. 교수들은“반민주적 대학정책”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태가 처음 표면화한 것은 6월15일. 부산대에서 열린 ‘반민주적 대학정책의 전면 개혁을 위한 전국 교수대회’에서다. 집회에는 교수 1,000여명이 참가해 ‘BK21’의 전면 백지화 요구와 함께 ‘교육부의 반민주적 교육정책’을 규탄하며 거리시위를 벌였다.

7월 5,6일에는 서울대 교수협의회와 고려대 교수협의회가 잇따라 교육부의 ‘BK21’사업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정부가 개선안을 발표한 뒷날인 8일에는 서울에서의 거리시위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교수단체의 참여규모가 더 컸다. 전국 국공립대 및 사립대 교수협의회,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등으로 구성된 ‘반민주적 대학정책의 전면개혁을 위한 전국 교수연대회의’(공동대표 손호철 민교협공동의장)가 그 주체. 교수 900여명은 명동성당에서 집회를 연 뒤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까지 거리시위했다.

집회에서 교수연대회의가 요구한 내용은 △대학 이사회제도 도입 철회 및 교수회 의결 기구화 △교육부-총장협의체-교수대표기구 등 3자 협의회에 의한 교육정책 수립. 연대회의는 아울러 “BK21은 대학 서열화와 중앙-지방간 격차 심화, 기초과학 붕괴, 입시경쟁 격화 등 대학교육의 황폐화를 초래한다”고 비난하며 “BK21계획 전체를 백지화하고 재검토하라”고 주장했다.

교육부는 7일 교수연대회의가 명동성당 집회 계획을 발표하자 부랴부랴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국정협의회를 가졌다. 결과는‘BK21’계획의 전면 수정·보완책’이었다.

교육부 수정방침의 내용은 크게 세가지. 첫째, 연 900억원이 투입되는 과학기술분야 사업에서는 계약제와 연봉제를 포함한 ‘교수업적 평가제’를 당초 지원조건에서 삭제한다. 둘째, 인문사회분야 사업(연 100억원 지원)은 분야, 사업단 규모 및 선정, 사업단별 지원원, 지원조건 등을 전면 재검토한 뒤 재공고한다. 마지막은 연 500억이 들어가는 지역우수대학 육성사업. 선정된 대학과 분야의 학부생에게만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던 당초 계획을 바꿔 대학자율로 대학원생에게도 장학금이나 연구비를 지급하도록 했다.

교육부는 수정방침을 내놓으면서 “BK21의 골격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교육계에서는 사태흐름으로 볼 때 사업시행은 사실상 물건너 갔다는 게 대세다. 이것은 ‘BK21’의 원안 내용을 보면 명확해진다.

‘BK21’은 과학기술분야, 인문사회분야, 지역우수대 육성의 3개 부문과 대학원 인프라 구축에 총 1조4,000억원을 매년 2,000억원씩 7년간 나눠 지원하겠다는 것. 하지만 당초 연 100억원을 지원하겠다던 인문사회분야 사업계획이 전면 재검토되면서 부문간 지원금 재분배가 불가피하게 됐다. 자연히 과학기술분야에 연 900억원을 지원한다는 약속은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지역우수대학의 학부생에게만 연 500억원을 지급하겠다던 장학금을 대학원생에게도 주도록 자율에 맡긴 것은 원래 안과는 판이하게 다른 수정안이다. 지역의 대학에서도 대학원을 계속 지원할 바에야 애초부터 연구중심 대학원과 학부중심의 지역 우수대학을 분리하지 말았어야 했다.

교수업적 평가제를 삭제한 것은 교육부의 사태 인식이 얼마나 한가한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교수신분에 대한 전제조건을 없애 교수들을 무마한다는 것. 이것은 교수들에게 다분히 ‘우는 아이 떡하나 더주기’로 인식될 소지를 남기고 있다.

교수업적 평가제 삭제의 문제점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BK21’의 또다른 목적이었던 ‘교수개혁’도 기대난이다.

어느정도 여건이 되는 대학을 선택적으로 집중지원해 국제경쟁력을 갖춘 대학원 연구인력을 양성하고 교수업적 평가제 등과 연계해 연구수준을 높일뿐만 아니라 명문대 위주의 과열입시를 해소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BK21’은 ‘골칫거리21’로 바뀌어 이익집단간 나눠먹기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당정협의를 통해 나온 대책이 단순한 사회위기 수습차원이 아니라 내년 총선에 대비한 정치적 계산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적 고려에 밀려 설익은 교육 개혁안이 나온 예는 이 뿐만 아니다. 정부는 5월에도 교원 사기진작책을 청와대지시로 앞당긴 바 있다. 정치권 입김에 교육정책이 일관성을 잃고 오락가락한 셈이다.

따라서 기타 교육개혁 조치에도 ‘BK21’의 여파가 미치리라는 우려는 단지 기우로 돌릴 수 만은 없게 됐다. 교원종합대책, 국립대 구조조정 등 개혁 현안들 역시 논의 이전단계로 환원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바로 그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학입시 등 주요 교육정책이 변했다”며 “백년대계가 정권대계로 변질됐다”고 말했다. 심하게 들리 수도 있다. 그러나 서울대 김도한교수(수학과)의 다음 말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의 백년대계인 교육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갖혀 밀어부치기 식으로 시행하려 한다. 2002년 이후에도 세상은 존재하는데 대학입시 추천제, 교수임용 법제화 등 모든 것을 2002년까지 시행하려 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이른바 교육의 획기적인 개혁일수록 곧바로 새로운 혼란만 불러오고 말았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20년까지 거슬러 올라 갈 것 없이 가까운 예를 들어보자. 98년 11월 수학능력시험에서 처음 도입된 선택과목제. 98년 1학기부터 고등학교 교실에는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학생들이 점수 따기 쉬운 사회문화나 생물 과목에 무더기로 몰리고 물리나 경제를 피해버린 것이다. 교사들은 수업시간 조정 등으로 때아닌 곤욕을 치른 것은 물론이고 학문간 균형발전의 기반을 고교부터 뒤흔들어 놓았다.

96년부터 실시됐던 편입학 모집정원 확대정책도 지방대의 공동화만 부채질한 뒤 올들어 유야무야 됐다.

95년 교육부가 1,000억원의 예산으로 추진했던 국책대학원 사업도 마찬가지.

이 사업은 규모로는 ‘BK21’보다 작지만 ‘세계적 대학원 육성’이란 취지는 비슷했다. 당시 교육부는 전국 대학의 이공계 학과나 학부단위로 지원신청을 받아 4개 단위를 선정했다. 그러나 평가결과 4개 단위중 2개가 서울대로 선정되자 교육부는 갑자기 “서울대에만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없다”며 평가점수가 1위였던 서울대의 모집단위 하나를 제외했다. 이 파문으로 당시 교육부 장관을 옷을 벗었고 사업은 예산 나눠먹기로 변질되고 말았다.

BK21에 대한 교수들의 반발이 “교수들의 자기 대학 이기주의, 자기학문 이기주의, 또는 ‘밥그릇 챙기기’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있다. “양식있는 사람이라면 ‘BK21’에 찬성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또한번 손을 들고 말았다. 정치논리 개입과 교육당국의 권위주의, 속도전 행정이 빚어낸 결과다.

배연해·주간한국부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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