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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 "고래다, 고래!" 술렁이는 장생포항

동해와 남해에 각종 고래가 많이 서식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국내 최대 고래잡이 전진기지였다가 포경금지로 조용한 어촌마을로 변했던 울산 장생포항이 다시 술렁이고 “70년대 울산이 공업도시로 본격 개발되기 전까지만해도 고래잡이 선원은 잘 나가던 직업이었어. 고래잡이 선원의 벌이가 꽤 괜찮았거던.”

동네 어귀에 있는 경로당에 삼삼오오 모여있던 노인들중 한 노인이 쉰 목소리로 고래잡이에 대해 말문을 열자 옆에 있던 또 다른 노인이 말을 잇는다.

“80년대에 전자식 포경기구가 등장하기 전만해도 고래가 많았는데 그 놈의 잡는 기계가 발달하면서 고래를 찾아보기 힘들었어.” 일제시대인 18세때 고래잡이를 시작해 85년까지 40여년간 고래잡이 선원으로 일했다는 김태인(73)옹의 말이다.

김옹은 한 때 고래를 잡던 선원들과 고래고기를 먹기 위해 찾는 손님들로 장생포항이 북적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울산 중심가와 그리 멀지 않은데다 전국 최대 고래잡이 전진기지였기에 고래잡이가 한창일 때는 고래고기를 맛보기 위해 전국 각지의 미식가들이 이 곳을 찾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장생포항은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한때 30여개의 고래고기 판매점이 성업했으나 그동안 줄줄이 문을 닫고 이제는 4곳만 남았다.

경로당에서 1㎞가량 떨어진 고래고기 전문점인 ‘할매집’. 3대가 45년째 고래고기를 팔아오고 있는 이 가게는 고래잡이가 한창일 때 자리가 없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지만 지금은 하루 20여명의 손님도 받기가 힘들다.

이웃한 3곳의 판매점 사정도 마찬가지로 포경 금지이후 고래가 귀하다 보니 판매가격이 1인분에 2만~3만원을 호가해 서민들의 발길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고기잡이 배 그물에 우연히 걸려 잡혀오는 고래를 경매를 통해 구입하는 것도 쉽지 않다.

고래잡이가 금지되면서 마을의 인구와 직업도 많이 변해 젊은 선원들은 새로운 직업을 찾아 대부분 외지로 나갔고 중장년층은 고기잡이나 원유 운반선 선원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울산과 포항 앞바다에서 잡은 고래를 해체하던 해체장은 한진중공업 선박 건조장으로 바뀌었다. 20여척이나 되던 포경선도 1,000만원에 달하는 연간 유지비를 견디지 못해 줄줄이 해체됐다.

멀리 방어진항에 포경선 1~2척이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는 소문만 있을뿐 확인할 길이 없다. 인근 해양공원에 전시돼 있는 고래잡이용 포가 이 곳이 과거 고래잡이 전진기지였음을 유일하게 상징하고 있을 뿐이다.

주민들은 고래로 이름을 날린 옛 장생포항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 위해 95년부터 해마다 9~10월이면 고래축제를 열고 있다. 고래를 해체하던 장면 등을 담은 사진전을 열고 먹거리 장터를 열어 고래고기 맛을 음미한다.

특히 올해는 고래잡이 재개에 대한 기대감이 확산되면서 행사기간을 앞당겨 5월에 개최했다. 고래잡이 재개를 허가해 달라는 무언의 시위성격이 강했다.

장생포항 주민들은 고래잡이가 당장 이뤄질수 있을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년 6월 국제포경위원회 정기회의에서 한국정부가 40개 회원국을 설득시킨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포경재개시 재건할 마을의 청사진은 이미 그려놓고 고래축제준비위원회 관계자는 “장생포를 고래도시로 상징화시켜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해야 한다”며 “단순히 먹고 마시는 음식문화로는 경쟁력있는 마을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주민들은 무분별한 고래포획에 대해서도 경계의 목소리를 높인다.

할매집 주인 박숙자(56)씨는 “새끼 고래는 잡지 못하게 하고 연간 어획가능한 마리수를 정해 고래 멸종을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래고기를 팔아 2남2녀를 키웠다는 박씨는 “장생포 어민들이 고래수출도 많이 해 달러벌이를 톡톡히 했다”며 “일본이나 노르웨이 등 선진국들의 무차별적인 고래포획이 고래멸종의 주범인데도 장생포 어민들을 고래멸종의 주범으로 모는 것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2,000여세대 1만여명의 장생포항 주민들은 13년만에 울산 앞바다와 동해에 나타난 고래떼가 마을의 옛 명성을 되찾아주길 학수고대하고 있다.

김광수 서울경제 기자 ksk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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