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사정 신호탄] 검찰 칼 '정치권 정조준'

07/22(목) 08:18

‘본격 사정의 서막인가, 검찰의 대반격인가’

임창렬경기도지사 부부에 대한 사법처리를 계기로 드러난 검찰의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청와대도 공직사회의 기강확립과 지도층 부패척결을 위해 강도높고 지속적인 사정 작업을 벌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제2, 제3의 임창렬이 누가 될 것인가’며 불안해 하고 있다.

검찰은 임지사부부를 하루간격으로 인천지검으로 소환해 특가법상 알선수재혐의로 모두 구속시켰다. 임지사의 부인 주혜란(51)씨가 소환된 날 대검 중수부는 한나라당 전재정국장 김태원(48)씨를 정치자금법위반혐의로 구속시켰다. 검찰 고위간부들이 6월 25일 전국검사장회의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선언한지 얼마 되지 않아 여야를 동시에 겨눈 검찰의 수사 배경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이다.

김 전국장은 한나라당의 ‘아킬레스건’인 대선자금 불법모금의 핵심 관계자이고 임지사는 여권의 실세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검찰은 김 전국장에 이어 불법모금에 관련된 한나라당 서상목의원과 김태호의원을 소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또 임지사 구속을 계기로 벌써부터 ‘주혜란 리스트’ ‘서이석 리스트’ 등이 돌고 있어 분위기는 급박하게 진전되고 있다.

다목적 효과 노린 고강도 사정

일각에서는 검찰이 어수선하게 돌아가는 정국을 반전시키기위해 사정의 칼날을 휘두를 ‘때를 기다려왔다’는 설이 설득력 있게 나오고 있다. 검찰이 “특검제를 반대한다”고 공식입장을 밝힌지 불과 며칠만에 후폭풍이 엄청난 두 사건이 잇따라 터져나온 것이 우연의 일치는 아니라는 것이다. 또 고위공직자와 정치권의 비리색출이라는 고강도 사정은 각종 현안들로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여권핵심부에도 정국타개의 실마리를 줄 수 있고 자연스럽게 특검제 도입논의도 잠재울 수 있다는 다목적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판단이라는 것이다.

우선 한나라당의 대선자금 조성경위와 불법모금된 돈의 집행내역을 훤히 알고 있는 김 전국장을 검찰이 ‘손아귀’에 넣어둠으로써 한나라당의 특검제 도입공세 등으로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김대중대통령 내외와 친분이 깊은 주씨와 주요 광역단체장인 임지사의 비리를 들춰냄으로써 한나라당의 ‘표적 ·편파 수사’ ‘야당파괴’ 시비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 무엇보다 여야를 향해 동시에 칼날을 세워 검찰의 입지를 넓히고 진형구 전 대검공안부장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으로 실추된 위상과 권위를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도 고려됐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이같은 분석에 대해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검찰관계자는 “임지사부부의 혐의는 퇴출된 경기은행 전직 임원들의 비리 수사과정에서 우연히 포착됐으며 김 전국장 체포는 10개월동안 집요한 추적끝에 가능했다”며 ‘시기조절설’ 등을 일축했다. 검찰은 일부 언론에 시기조절설이 보도되자 이례적으로 ‘김태원 검거경위’라는 A4용지 두장 분량의 문서를 배포했다. 이 문서에는 “근거없는 시기조절설은 검찰의 중립성을 훼손하려는 의도다” “검찰 본연의 법집행활동을 왜곡하는 것으로 유감이다” 고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검찰 고위관계자도 “피의자는 생물인데 어떻게 시기를 조절한단 말인가. 말도 안된다. 항간에 특검제 정국 돌파용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수사의 기본도 모르는 말이다”고 발끈했다.

임지사 부부 수사는 ‘준비된 작품’

하지만 검찰의 두 사건 처리 전후과정을 살펴볼 때 김 전국장의 경우는 몰라도 최소한 임지사부부 사법처리만은 ‘준비된 작품’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단적인 예로 검찰은 임지사부부 소환을 며칠 앞둔 8일 전국 지검별로 진행된 퇴출은행임원 비리 수사 결과를 내놓겠다고 했다가 하룻만에 갑자기 무기연기했다. 6월초 검찰인사이후 뜸했던 보도자료를 제공할 목적으로 공보관실에까지 A4용지 2쪽짜리 자료가 전달됐으나 결재과정에서 대검 고위간부로부터 “연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 자료는 곧바로 회수돼 어떤 내용이 담긴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김전국장의 체포로 예상되는 한나라당의 정치공세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임지사 부부의 소환및 사법처리일정을 예정보다 앞당겼을 것이란 분석이다. 임지사 부부비리에 대해 상당기간 내사가 진행됐다는 점도 이같은 해석을 뒷받침한다. 검찰 고위관계자들은 그동안 정국 돌파용 사건이 필요하다는 의견에는 공감하면서도 “시기적으로 이르다. (검찰에 대한)여론만 좀 나아지면…”이라고 종종 말해 낚아놓은 ‘대어’를 건져올릴 타이밍을 맞추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대어가 ‘특검제 무산용’이라는 정치공세에 휘말릴 땐 검찰이 다시 주저앉을 수 밖에 없다는 상황인식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했다. 검찰 고위관계자도 “(특검제 정국을)돌파는 해야 하는데 자칫 헛발을 디뎠다간 더 꼬인다”며 애매모호한 말을 하기도 했다.

제2사정 신호탄인가

이같은 정황을 토대로 이미 검찰의 제2사정이 개시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야를 가리지 않는 전방위사정을 통해 날개도 없이 추락하고 있는 검찰위상을 완전히 반전시킨다는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반격을 초래할 수 있다는 부담 탓인지 검찰은 조심스런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제2사정설에 대해서도 “6월초 검찰인사 때도 그렇고 검사장회의 직후에도 사정설이 나오더니 또냐”며 “비리가 포착되면 당연히 (수사)하는 것이지 기획사정은 없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다. 또다른 검찰 관계자도 “임지사사건은 우연찮은 국지전일 뿐”이라며 임지사부부사건은 돌출된 비리를 포착한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인천지검장이 9일 직접 박순용 검찰총장에게 임지사 사건을 보고한 직후에 퇴출은행 관련 비리 보도자료배포를 중단시킨 점을 보더라는 임지사부부사건은 전혀 계획되지 않았음이 드러난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고위공직자들의 촉각은 곤두서 있지만 오히려 검찰의 표면적인 움직임은 여유가 있다.

검찰은 19일부터 법무부와 대검 검사장 11명이 일선 지검과 지청을 순시할 계획을 잡아놓고 있다. 검찰은 일선 검사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내부기강을 확립하고 일선에 검찰의 정치로부터의 중립의지를 전달함으로써 전열을 재정비하겠다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일단 숨고르기를 하면서 정치권이나 여론의 향방을 지켜보면서 분위기가 괜찮다는 판단이 서면 즉각 정조준에 들어가지 않겠냐는 전망이다.

검찰주변에서는 이미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부 언론인의 비리사실도 상당 수준 파악해 놓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검찰은 일단 여권 광역단체장 부부의 비리를 밝혀내 신속히 사법처리함으로써 검찰의 실추된 위상회복에 상당한 플러스효과를 가져왔다고 보고 있다.

임지사부부 구속을 계기로 여의도주변에는 벌써부터 사정의 차가운 바람이 감지되고 있어 곧이어 불어닥칠 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이진동 사회부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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