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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사정 신호탄] 조연으로 살기엔 튀었던 '헬렌주'

“어느 나라 특파원입니까. 중국 기자입니까?”

DJ와 주혜란씨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85년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서울의 스페인 대사관에서 열린 스페인 왕 생일축하 파티석상에서다. 당시 주씨는 용산에 거주하는 주한 외교관들의 주치의로 일하던 인연으로 이 파티에 참석했다가 김대통령을 만나게 됐다. 김총재는 주씨를 중국인으로 알았던지 첫 질문을 영어로 했다고 한다.

주씨는 미발간 자서전 ‘따뜻한 세상을 위하여’에서 자신과 김대통령의 인연을 자랑삼아 이야기하고 있다. 자서전에 따르면 이후 주씨는 김대통령과 각별한 친분을 유지했고 임창열지사와의 결혼에도 김대통령이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임·주 부부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

주씨와 임창열경기지사. 화려한 부상과 급속한 추락…. 이들 부부의 이야기는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주씨가 임지사를 처음 만난 것은 90년 12월16일 워싱턴에서다. 주씨가 서울 강남구 보건소장으로 있을 때 에이즈 관련 심포지엄 참석차 미국을 잠시 방문했을 때 였다. 역시 의사인 여동생이 당시 세계은행 이사로 미국에 파견돼 있던 임지사를 소개했다. 주씨가 42세, 임지사가 47세 때였다. 임지사에 대한 주씨의 첫 인상은 ‘시골 아저씨 처럼 수수하고 소박하면서도 아주 당당한 남자’였다.

프로포즈는 활달한 성격의 주씨가 먼저 했다. 귀국하는 날 공항으로 배웅나온 임지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내가 결혼 상대자가 될 수 있는지 아닌지 얘기 좀 해봐요.” 귀국후 김대통령으로부터 “그 사람 아주 똑똑하고 능력있는 남자다. TK도 아닌데 이만큼 출세했으면 대단한 거지. 어서 결혼해서 내조 잘해요”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확 쏠려 버렸다고 한다.

두사람 모두 딸하나를 둔채 첫결혼에 실패하고 혼자 살던 처지였다. 마음 한구석에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있었던 터라 서로 끌린 것은 인지상정. 91년 2월22일 워싱턴 교외의 한 교회에서 두사람은 조촐하게 촛불 결혼식을 올렸다. 첫만남에서 두달 남짓 만이다.

주혜란과 임창열.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으며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직설적으로 표출하는 주씨. 침착성과 저돌성을 동시에 갖춘 임지사. 의사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움 없이 자란 주씨.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공부해 행정고시에 합격한 임지사. 성공한 커리어 우먼과 역경을 딛고 부총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 비록 첫결혼 실패의 상처를 안고 있긴 했지만 두사람의 결합은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두사람의 결합은 ‘추락의 신호탄’

그러나 결합은 추락의 신호탄이었을까. 성격차이와 딸 문제 등으로 의견충돌이 잦았다는 것이 주변의 얘기다. 문제는 임씨가 정치판으로 뛰어 들면서 불거졌다. 주씨는 남편이 경기지사에 취임한 뒤 ‘경기도에는 지사가 둘 있다’ ‘경기도의 힐러리’란 비아냥을 들을 만큼 ‘너무 나갔다’. 올 5월 임지사의 생일파티 때는 주씨가 손님 150여명을 초대하는 바람에 구설수에 올랐다. 임지사 측근의 이야기. “당초 친한 목사님 몇분만 모시고 조촐히 치르기로 했다가 당일 아침 느닷없이 주씨가 150여명을 초대하는 성대한 만찬 계획을 밝히자 임지사가 크게 역정을 냈다.”

주씨의 경력을 보면 자연스러운 결과인지도 모른다. ‘마당발’ ‘에이즈 박사’ ‘윤락녀의 대모’란 별명에 걸맞게 주씨의 과거 활동은 힘찼고 또 화려했다. 고려대 의대를 거쳐 일본 쇼와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개업보다는 보건소를 택했다. 78년 의정부 보건소장 때는 기지촌 여성을 대상으로 윤락녀 자치회를 결성해 사회복지에 힘썼다. 80년 8월에는 서울지역 최초의 여성 보건소장으로 취임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84년 용산보건소장 때는 윤락녀를 대상으로 에이즈 예방교육을 실시하면서 일반인들에게 급속하게 확산되던 ‘에이즈 공포’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유명세’를 탔다.

주씨 측근들의 말에 따르면 그는 화려함과 항상 주위에 사람이 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성미가 차는 성격의 소유자라고 한다.

관심영역도 다양해 그림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노래하기도 좋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 화랑가에서 고가 미술품을 사모으는 큰손 중 하나로 통했다는 얘기부터 강남에서 갤러리를 위장소유하고 있다는 의혹, 이형자씨로 부터 그림을 받아 리스트에 올라 있다는 의혹도 정가에 떠돌고 있다. 노래는 그의 외성적인 성격은 많은 일화를 남겼다. 지난해 수원에서 열린 한 오페라에서는 왕비로 출연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경기도 기관장 모임에서는 ‘즉석 공연’을 하는 쇼맨십을 발휘한 적도 있다.

4억과 1억이 말해주는 주씨 파워

김대통령이 결혼전에 주씨에게 했던 “내조 잘하라”는 당부를 저버린 것이 결국 추락을 불렀다. 오히려 지사 남편을 조연으로 밀어낸(?) 그의 지나침이 비리로 연결고 말았다. 경기은행 퇴출을 막기 위한 로비 자금 4억원이 그에게 온 배경도 따지고 보면 여기에 있다.

남편이 받은 돈은 1억원. 4대 1의 비율은 대외적으로 인지된 주씨와 임지사의 상대적 파워를 말해주는 것일까. 아니면 부부간 ‘베갯머리 송사’의 힘을 과신했기 때문일까. 임지사는 검찰에서 주씨가 돈받은 사실을 아내가 소환된 뒤 비로소 알았다고 주장했다. 주씨도 남편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진실은 수사로 밝혀지겠지만 두사람의 주장대로라면 아내 따로, 남편 따로 ‘두주머니’를 찼다는 것이 된다.

부부 추락의 원인에는 남편과 아내, 지사와 지사아내라는 ‘자리에 대한 혼돈’이 내재하고 있다. ‘과잉내조(치맛바람)’와 ‘아내관리 부족’이다.

이들 부부의 이야기는 그래서 우리시대에 착잡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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