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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쇼크와 재벌개혁] 재벌개혁 "물 건너간것 아냐"

‘정권은 바뀌어도 재벌은 계속된다’는 재벌불패의 신화가 이번에도 깨지지 않는 걸까. ‘국민의 정부’가 투명경영과 건실한 재무구조를 목표로 추진해온 재벌개혁이 난관에 봉착했다.

지난해말 이후 7개월 동안 정부의 암묵적 후원아래 근근히 버텨오던 대우가 엄청난 단기부채압박을 견디지 못해 채권단의 출자전환으로 사실상 워크아웃 상태에 빠져 들었고, 5대그룹 개혁의 완결판인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은 삼성자동차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사실상 물거품이 됐다.

이처럼 정부가 ‘죽을 쑤고’있지만 대우를 제외한 5대재벌은 영향력을 더욱 키워가고 있다. 변칙적 상호출자로 선단식 결속력은 항공모함형에 가까울 정도로 오히려 강화하고 있고 보험, 증권, 카드 등 제 2금융권에 대한 지배력도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여론으로부터 끊임없이 비판받아온 재벌 오너의 ‘황제식 경영’은 요지부동이다. 정부가 뛰고 있다면 5대재벌은 날고 있는 셈인 것이다.

숫자놀음에 불과한 ‘부채비율 감소’

불과 3개월전인 4월까지만 해도 정부의 재벌정책은 성과를 거두는 것처럼 보였다. 공정거래위원회가 4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0대 그룹의 부채비율은 98년말 현재 379.8%로 97년말(518.9%)에 비해 대폭 줄었다. 특히 5대 그룹은 472.9%에서 335%로 줄어 6대이하 그룹이 616.8%에서 497.7%로 감소한 것에 비해 감소폭도 컸고 절대적인 부채비율도 훨씬 낮았다. 이는 겉으로만 볼때 정부의 재벌정책이 5대 그룹에 상당부분 먹혀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환상은 불과 두달만에 깨졌다. 공정위가 6월 발표한 자료에서 부채비율 감소가 완전히 숫자놀음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자본과 부채의 비율인 ‘부채비율(부채/자본)’을 줄이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 분자인 부채규모를 줄이거나 분모인 자본을 늘리는 것이다. 일반인은 물론 부채비율 축소를 독려했던 정부도 재벌이 부채비율 축소를 위해 기업매각이나 청산, 부채상환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영악한’ 5대 재벌이 선택한 방법은 분모를 늘리는 것이었다.

공정위에 따르면 5대 그룹의 경우 98년 4월 11조3,000억원이던 출자총액이 99년 4월에는 22조8,000억원으로 두배 이상 늘어났고 늘어난 금액의 대부분(7조9,000억원)은 계열사가 실시하는 유상증자 참여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따라 5대 그룹의 내부지분율은 46.6%에서 53.5%로 6.9% 포인트 올라갔는데 기업에 대한 지배력이 지분율에 따라 결정되는 것을 감안하면 재벌 총수의 지배력은 지난 1년동안 6.9%나 강화된 셈이다.

문제는 재벌이 유상증자에 투입한 7조9,000억원이 과연 재벌 총수의 고통분담을 통해 나온 것이냐는 점이다. 유감스럽게도 98년 지수 300선을 밑돌았던 주가가 99년에는 지수 1,000선을 돌파한 것만으로도 재벌이 돈 한푼 들이지않고 부채비율을 줄였다는 점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나라 돈줄 쥔 5대재벌

지난 1년 동안 5대그룹의 점증하는 위력은 금융업 분야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최근 대우가 “삼성생명, 삼성화재 등 삼성계열 금융회사의 집중적인 여신회수 때문에 대우의 위기가 왔다”고 주장할 만큼 재벌계열 금융회사의 영향력은 가히 다른 기업의 ‘생사여탈권’까지 쥐게 될 정도로 커져 버렸다.

실제로 5대그룹은 총 33개의 금융기관을 소유, 비은행 금융산업에서의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5대그룹 계열 금융기관의 비중은 3월말 현재 자산기준으로 34.7%에 달하는데 손보업, 증권업, 신용카드업에서는 그 비중이 각각 47.3%, 54.6%, 52.2% 등으로 절반가량을 점하고 있다. 생보업과 투신업의 경우도 각각 40.3%와 30.2%의 점유율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증시활황에 따라 모처럼 활기를 띄고 있는 증권·투신업종에서는 ‘시중자금을 5대그룹이 독식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5대재벌 계열의 증권·투신사는 올들어 70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끌어들였는데 이에 따라 투신시장에서 5대재벌 계열 투신사의 수탁비중은 31%, 5대재벌 증권사의 수익증권 및 뮤추얼펀드 판매비중은 40%에 이르고 있다. 온 나라의 돈줄을 5대재벌의 쥐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연말까지만 버티자” 지연전술

한편 정부의 재벌정책이 난관에 빠져들고 재벌들이 오히려 힘을 키워나가자 재계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재벌들이 특유의 ‘김빼기 작전’에 돌입했으며 “재벌개혁은 완전히 물건너 갔다”라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요컨대 5대 재벌이 암묵적으로 ‘99년말까지만 버티면 된다’는 판단아래 지연 전술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재벌개혁의 성공여부에 회의적인 입장을 표시하는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갈피를 잡지못하고 있는 정부의 대우처리에서 찾고 있다. 이들은 “당초 ‘대우의 자체 구조조정’ 방침을 내세웠던 정부가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적극 개입’으로 돌아선 것은 정부조차도 자신들의 주장과 달리 구체적인 ‘재벌개혁 플랜’이 없다는 점을 반증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사실상 부도직전의 위기까지 몰렸던 대우그룹에 단기부채 상환을 연장시키고 4조원을 지원키로 한 것은 97년 6월 기아를 부도유예협약에 넣은 것과 똑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김회장에게 대우자동차 경영권을 2~3년간 인정했던 것은 정부의 상황인식이 얼마나 안이한지를 여실히 증명한다”고 주장했다.

재벌의 힘을 빼기는 커녕 오히려 저금리 정책으로 재벌의 힘을 키워준 정부로서는 정책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기임에 틀림없다. chcho@hk.co.kr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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