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쇼크와 재벌개혁] 김우중신화 침몰하나

07/28(수) 13:09

‘Every Street is Paved with Gold(모든 길은 금으로 포장돼 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의 영문 번역판이다. 김우중 대우그룹회장의 자서전이다.

‘한국 최고의 세일즈맨’이란 별명에 걸맞게 그가 걸어온 모든 길은 노다지판으로 연결됐다. 적어도 그는 척박한 지표에 가려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땅속에서 금맥을 찾아내고 파내는 놀라운 안목과 수완, 정열, 그리고 공격정신을 갖고 있었다. ‘김우중 신화’는 이렇게 해서 생겨났고 굳어졌다.

그의 나이 62세, 대우그룹은 재계 2위로 우뚝섰다. 초등학생 시절 대구 수성구 방천시장에서 6·25 피란을 겪으며 신문팔이로 사업감각을 터득한 지 반세기, 67년 3월 대우실업이 창업된 지 32년 만이다. 그러나 이제 그의 신화는 백척간두에 서있다.

대우그룹. 그의 분신 ‘대우호’가 100억달러(12조원)에 이르는 외채 부담의 폭풍우를 이겨내지 못하고 단말마의 신음을 내뱉으며 헐떡거리고 있다. 당초 올 연말까지 6개월간 유예키로 했던 부채상환도 대우호를 위협하는 대양의 노여움에 정부는 목적지를 급선회했다.

왜 일까. ‘고독한 최고 경영자’란 수식어가 항상 그를 따라 다니듯이 대우그룹의 위기는 김회장의 위기이고, 위기의 원인 역시 그에게 있다. 김회장의 공격적 경영 스타일이다. 호시절 순풍에 돛을 달게 했던 그의 스타일이 이제는 노도한 폭풍속에 돛을 올려 배를 사정없이 내둘리게 만든 꼴이다.

벽에 부딪힌 세계경영, 부채 눈덩이

그의 스타일은 한국이 IMF의 위기에 빠지면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재벌들이 너나할 것 없이 감량경영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재정리하는 동안 그는 오히려‘위기는 기회’라는 표어를 꺼내 들었다. 조직 확대와 함께 해외투자를 늘리는 확대경영 노선을 선택한 것이다. “50억달러 수출”을 외치며 밀어내기 수출을 강행한 탓에 아직 받지 못한 무역어음만 40억달러에 달한다.

눈덩이처럼 부채가 불어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97년 말 IMF가 한국을 엄습하기 직전 대우그룹의 전체 부채는 42조8,000억원. LG그룹보다 1,000억원이 적었다. 그러나 1년 뒤 상황은 완전히 역전됐다. LG는 36조4,000억원으로 6조원이 줄어든 반면 대우의 부채는 59조9,000억원으로 17조원이 늘어났다.

김회장의 공격적 확대 경영노선에 대한 경계신호는 이미 지난해 초 외국언론에서도 나타났다. 지난해 4월23일자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AWSJ)의 보도. “김회장의 전략공식은 ‘투자하고, 투자하고, 좀 더 투자하자’는 것(중략). 대우가 성장을 계속하고는 있지만, 김회장의 계획은 집단적인 도산으로 이어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김회장이 외쳐 온 이른바 ‘세계경영’의 그림자였다.

김회장의 공격성은 IMF에서만 드러난 게 아니다. 32년 전의 조그만 섬유 수출업체 대우실업이 재계 2위의 대우그룹으로 비약하는 전 과정은 공격경영으로 일관돼 있다.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경제건설 정책과 놀라운 김회장의 대외차입 능력에 힘입은 군대식 ‘약진 앞으로’였다. 그래서 그에게 붙은 별명은 ‘인수왕 김우중’. 대우그룹의 역사는 미국식 ‘기업사냥’에 버금가는 인수·합병을 통한 사업 다각화의 역사였다.

69년 세창직물 인수와 70년 동남섬유 인수, 72년 고려피혁 인수를 통해 기업 기반을 닦았고 73년들어 영진토건, 동양증권, 동남전기를 사들여 건설·증권·전자 분야로 발을 넓혔다. 76년에는 부실기업으로 정리돼 산업은행이 관리하고 있던 한국기계를 인수해 오늘날 대우중공업의 터를 닦았다.

기업사냥 통한 계열사 늘리기

기업가로서 김회장의 수완과 담판 능력이 한 눈에 드러난 예는 78년 옥포조선소 건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강한 의욕을 보인 옥포조선소 건설을 떠맡으면서 김회장이 내건 조건은 정부로서도 다소 수용하기 벅찰 정도였다. 첫째, 조선소 건설비 전액을 국가에서 지원할 것. 둘째, 조선업 불황을 대비해 미국 7함대 수리를 유치할 것. 셋째, 옥포를 대단위 종합기계 공업단지로 육성할 것. 대우는 이렇게 해서 조선사업에 뛰어 들었다.

정부가 기획하고 지원하는 가운데 정부가 정한 기업이 정부의 정책사업을 해내던 국가주도의 자본주의 건설기 70년대. 대우는 기업사냥을 통해 하나 둘 계열사를 늘려나가 마침내 재벌대열에 우뚝 섰다.

그가 세인으로부터 “정권과의 결탁을 통한 성장”이란 비판을 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그는 젊은이들로 부터 가장 존경받은 기업인으로 꼽히는 또다른 면모를 갖고 있다. 가진 재산이라곤 몸뚱이 하나 밖에 없던 그가 혜성처럼 나타나 10년만에 재계의 한 축을 점하게 된 입지전적 성공담이 매력과 존경을 자아냈으리라.

인간 김우중. 김회장의 기력은 아마 3단. 기풍이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김회장과 10여차례 바둑을 두어 본 서능욱 9단의 평을 들어보자. “공격적이고 기력에 비해 대세관이 좋고 전투에 강하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아 실수가 많고 가끔 황당무계한 수를 둔다.”김회장은 성격이 급하기로 유명하지만 바둑에서는 장고파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승부욕·감각 탁월, 동유럽선 국빈 예우

그의 대세관은 세계경영에서 발휘됐다. 유엔무역개발회의는 97년 대우를 “해외인력 20만명 해외재산 119억달러를 가진 개발도상국 최대의 초국적 기업”으로 평가했다. 김회장의 감각이 새로운 신천지와 틈새시장을 찾아 낸 결과다.

그는 이같은 평가에 어울리게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동유럽 국가에서는 국가원수급 예우를 받았다. 동유럽 투자는 그의 아웃소싱(Out Sourcing) 능력이 십분 발휘된 영역이다. 서유럽이 동유럽 지역의 부흥을 위해 창설한 ‘동유럽부흥은행(EBRD)’에서 자금을 빌려오고 대우는 경영만 하는 형태였다.

김회장은 승부욕이 강해 바둑에서도 한번지면 이길 때까지 두는 성미가 있다고 한다. 이같은 승부욕은 정부의 재벌 구조조정 정책에 맞서 ‘재벌 필요론’을 역설해 온 그의 태도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지난해 전경련 회장 대행자격으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특강중 이렇게 말했다. “대기업은 우리나라에서 절대 필요하다. 대기업 체제가 유지되지 못할 경우 앞으로 21세기 우리나라 자본주의 체제는 위험에 빠질 것이다.”(창업세대가 비판받고 있는 현실을 거론하며) “이런 일은 세계 어느 나라나 똑같으며, 기업의 역사를 보면 전부 그랬다. 예를 들어 카네기 재단이나 포드 재단 사람들도 돈 벌 때는 총질하면서 벌었는데, 후대가 그 돈을 잘 써서 사회적으로 세계적으로 아름답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그의 경우에 ‘후대가 그 돈을 잘 쓸 수 있을지’여부는 의문이다. 그가 채무상환을 연장하는 대가로 내놓은 담보는 10억원 상당의 자택을 제외한 모든 것이었다.

이제부터 김우중과 대우호가 걸어야 할 길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의 자서전 영문판 제목은 ‘모든 길은 가시로 포장돼 있다’로 바꿔 써야 할 지도 모른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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