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쇼크와 재벌개혁] 대우 폭풍에 휘말린 경제

07/28(수) 13:10

‘설마, 설마하던 사태’가 벌어졌다. 은행, 투자신탁회사 등 금융기관이 대우의 요구대로 단기부채 4조원의 만기를 6개월만 연장시켜주면 ‘만사 OK’로 보였던 대우문제가 ‘일파만파(一波萬波)’로 확산되고 있다.

유동성 문제만 해결하면 될 것이라는 이헌재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이나 재정경제부 고위 관리들의 판단과는 달리 ‘시장(市場)이 대우를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주가가 사상 최대로 폭락하고, 금리가 속등하는가 하면, 해외시장에서 한국물의 가격이 일제 곤두박질치는 등 ‘금융공황’ 사태직전까지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7월23일 주식시장에서는 한국 증시역사에 ‘블랙 프라이데이(Black Friday·검은 금요일)’로 기록될 사상 최대의 폭락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종합주가지수는 전날보다 71.70포인트(하락률 7.34%)가 폭락한 904.96으로 마감됐다. 자금시장에서도 대우그룹 지원을 위해 투신사들이 보유채권을 내다 팔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3년만기 회사채금리가 하루 동안 0.42%포인트나 치솟는 이변을 연출했다.

잘못된 상황판단, 금융공황 직전까지

정부의 잘못된 대우처리 방식에 대한 불만은 해외시장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났다. 뉴욕시장에 상장된 SK텔레콤의 주식예탁증서(DR) 가격이 하루만에 4.1%나 폭락했고 한국전력과 한국통신이 발행한 DR도 각각 2.7%, 0.3% 떨어졌다. 또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가산금리가 지난 5월25일 이후 가장 높은 2.0%포인트에 육박했다. 몇몇 관계자들은 “해외 투자자들의 시각이 갈수록 싸늘해지고 있다”며 “한국경제가 다시 환란국면으로 빠져드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이처럼 대우문제가 당초 예상과는 달리 금융공황으로까지 치닫는 것은 무엇보다도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들의 안이하고 잘못된 상황판단이 큰 몫을 했다. 금융당국은 “덩치 큰 기업은 못 죽인다는 ‘대마불사’ 신화는 사라졌다”고 공언해 놓고도 또다시 명백한 부실기업이지만, 부채가 60조원에 달하는 대우의 규모에 질려 적당히 처리하려는 잘못을 범했다.

실제로 정부는 초기 대우처리 과정에서 ‘대마불사’ 신화의 신봉자처럼 행동했다. 대우그룹 관련 채권단회의에 이례적으로 금감위 부위원장이 참석, “대우가 망하면 당신들도 망한다”는 우회적이지만 살벌한 표현으로 채권기관 대표자들에게 압박을 가했다. 심지어 제일은행에서 7월22일 열린 회의에서는 “우리는 (침몰위기에 빠진) 타이타닉호에 함께 탔다”며 자금지원을 반대하는 회사에 대해 압력을 가했다. ‘벼랑끝 전술’을 펴고 있는 대우 경영진을 제재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대우와 합세하는 형국이었다.

‘대우 편들기’일주일만에 ‘출자전환’선회

그러나 정부의 ‘대우 편들기’는 불과 일주일만에 금융위기의 재연으로 이어졌고 정부는 체면을 완전히 구긴채 대우 처리정책을 ‘대우의 자체 정상화’에서 ‘출자전환을 통한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으로 180도 선회시켰다.

이헌재금감위원장은 금융시장이 요동치자 23일 오후 늦게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대우그룹의 계열사 매각이 부진할 경우 출자전환을 통해 대우계열사들을 우선 인수한뒤 매각을 진행시키겠다”고 밝혔다. 이위원장은 이 자리에서도 “대우의 구조조정 의지나 실현가능성에 대해 시장이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정책 오류를 실체없는 시장으로 돌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97년 6월 기아자동차를 ‘준비없이 부도내는’바람에 외환위기를 초래한지 불과 2년만에 기아의 100배에 달하는 폭발력을 지닌 대우를 허둥지둥, 임기응변식으로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정부가 김우중대우회장의 기득권을 인정하는 방식에서 출자전환을 통한 경영권 박탈과 그에 따른 대우계열사의 분할 매각으로 급선회하면서 정부의 재벌정책과 재계판도에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우선 이헌재위원장이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출자전환은 대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나머지 5대 그룹에 대해서도 출자전환을 할 수 있다”고 밝힌 부분의 진의가 무엇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즉, 정부가 현대, 삼성, LG, SK그룹에 대해서도 출자전환을 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지지부진한 재벌개혁을 보다 강하게 밀어 붙이겠다’는 의지의 표명중 어느 쪽이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후자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나머지 4대 그룹의 경우 대우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만큼 자금사정이 양호하므로 정부가 판을 깨면서까지 출자전환을 할 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로서야 지지부진한 재벌개혁을 한꺼번에 반전시킬 계기를 찾고 있겠지만 마땅한 대책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벌개혁 ‘물거품’우려 확산

또 한편에서는 채권단 출자전환으로 대우가 해체될 경우 재벌의 양극화가 극도로 심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즉, 5대 그룹중 상위 2개 재벌(현대, 삼성)과 하위 2개 재벌(SK, LG)의 완충역할을 하던 대우가 해체될 경우 현대와 삼성이라는 두 ‘슈퍼 재벌’의 독주체제가 더욱 공고해진다는 것이다.

한 전문가는 “해외투자자를 제외하고는 매물로 나온 대우그룹 계열사를 인수할 정도의 자금력이 있는 곳은 현대, 삼성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대우문제로 금융시장이 흔들리자 재계 일부에서 대우자동차를 삼성에게 넘기는 ‘역(逆) 빅딜’설이 강하게 제기된 것도 그같은 맥락에서 파악되야 한다”고 설명했다.

‘만지면 만질수록 커지는’ 대우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든지 애당초 정부가 주장했던 재벌개혁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는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조철환·주간한국부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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