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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제 줄다리기, 돌파구 없나

“특검제 정국에 해법은 없다. 여든 야든 한쪽이 항복선언을 하며 백기를 들지 않는한 접점은 없다. 적어도 아직까진 그렇다. 변화의 조짐은 있는가. 물론 있다. 그러나 아직 개연성의 차원이다.”

특별검사제 도입을 둘러싼 여야간의 지리한 대치정국이 계속되고 있다. 국민회의는 조폐공사 파업유도사건만 우선 도입하자는 입장인데 반해 한나라당은 이참에 특검제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기존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여야 총무는 그간 셀수 없을 정도로 만났지만 만날 때마다 서로를 향해 “말이 안통하는 사람들”이라며 고개를 젓고 나왔다. 참다 못한 국민회의는 ‘제한적 특검제 단독처리’라는 강수(强手)를 들고 나왔고 한나라당은 “특검제까지 날치기를 하려면 해보라”고 눈썹하나 깜박하지 않고 있다. 결국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지난주말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건만 다루는 특검제 법안을 확정했다. 특검제 단독처리라는 파행이 눈앞에 예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김대중대통령은 손숙환경부장관을 경질한뒤 정국상황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민생과 대화의 정치를 선언, 변수가 생기기는 했다. 여권은 정국이 최악의 상황으로 굴러가는 것을 막기위해 ‘막판 타협’이라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로선 쉽지 않을 전망. 여야 공히 특검제문제가 어떻게 풀리느냐는 김대통령의 남은 임기동안 정국주도권을 결정할 수 있는 중대사안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국 주도권 걸린 중대사안

최근의 특검제 정국을 이해하려면 특검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야 여야가 왜 양보할 수 없는 한판승부를 벌이는지에 대한 통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검제의 논리는 행정부의 일부인 검찰이 어떻게 대통령의 비리를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느냐는 비판으로부터 출발한다. 거꾸로 말하면 검찰에 대한 불신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 미국의 경우 49명의 고위공무원 범죄를 수사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표적은 대통령이다. 그러나 취지는 좋았지만 특검제는 미국에서 조차 ‘실패한 제도’다. 미의회의 ‘특별검사제 연구위원회’는 3년간의 연구검토끝에 특검제가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으며 폐기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의회가 꼽은 특검제의 가장 큰 단점은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클린턴대통령의 금융비리의혹사건인 화이트워터사건의 특별검사로 임명된 스타검사가 대통령의 뒤를 뒤지다 엉뚱하게 잇딴 성추문사건을 들춰낸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 미의회의 표현대로라면 특검제가 ‘마녀사냥의 도구로 전락해 장발장의 악몽을 연출했다’는 것이고 우리식으론 ‘한번 찍히는 순간 대상자는 어떤 식으로든 인생을 종치게 만드는 표적수사’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이 쏟아부어졌고 국민의 관심사는 언론이 쏟아내는 ‘엘로우 뉴스’에 집중됐다는 점도 거론되는 부작용이다.

하지만 이같은 미국의 케이스도 과거 우리나라에게는 별반 타산지석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는 검찰이 ‘권력의 시녀’라는 혹평을 받을 정도로 강한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민들에겐 ‘특검제는 좋은 것’이라고 각인돼있다. 시민단체를 비롯한 일반 여론은 “어찌됐던 특검제를 한 번 해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당엔 권부 향해 날릴 수 있는 ‘화살’

야당이 파업유도사건에 대한 특검제까지 마다하며 특검제 제도화에 대해 당의 운명을 건 듯 고집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야당으로선 특검제가 제도화되면 김대통령의 남은 임기동안 언제든지 사용가능한 핵폭탄급 무기를 손에 쥐게 된다. 권력형 비리의 징후가 보이는 모든 사안에 대해 특검제를 발동할 수 있는 것. 다수당인 여당이 국회에서 제동을 걸려 하겠지만 ‘여론은 특검제편’이라는 속성상 관철되지 않더라도 야당은 ‘뒤가 구린 여당’이라는 전리품을 얻을 수 있다. 특히 특검제는 권력형비리, 특히 대통령을 향해 화살을 날리기 때문에 도입된다 하더라도 야당보다는 여당이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고 타격도 크다. 만약 권력형 비리의혹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터진다면 이후 상황은 불문가지이다. 빨리 특검제와 국정조사를 통해 파업유도의혹을 밝히라는 노동계의 요구와 “야당은 총선때까지 특검제 정국으로 끌고가려 할 뿐”이라는 여권의 공세에도 불구, 한나라당이 버티고 있는 것도 이같은 계산 때문이라는 것이 정가의 분석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이회창총재가 ‘3년 한시적 특검제론’을 들고 나온 대목. 공교롭게도 3년이면 김대통령의 임기와 겹친다. 이총재의 본심이야 어떻든 당장 여권에선 “현정권만 특검제를 하자는 얄팍한 술수”라며 역공을 하고 나왔다. 한나라당의 전략상 미스였다.

여당, 3년간 ‘화약’안고 정치하는 꼴

김영배총재권한대행은 “일단 파업유도의혹사건만 특검제를 도입하고 제도로서의 특검제는 정치개혁특위에서 협상에서 다루자”면서 “이는 특검제 제도화를 수용하겠다는 의미”라고 누차 말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여권에선 “이번에 시범적으로 해보고”라는 단서를 단다. 일단 파업유도건 수사로 특검제 득실을 따져보고 여·야, 시민단체 등으로 연구단을 구성해 미국에 가서 특검제의 장단점을 살펴보자는 것. 그러나 미국에선 앞서 말한 것처럼 특검제는 사망선고가 내려진 상태이다. 결국 여전히 특검제에 대한 비판론을 깔고 있다. 여권으로선 특검제를 내 주고 3년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악몽을 기다릴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또 다른 측면에서 특검제의 도입은 곧 검찰의 유명무실화를 의미한다. 앞으로 공직비리사건에 관한한 검찰 수사후 특검제 수순을 밟을 공산이 크고 정치스캔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결국 검찰은 더더욱 불신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정권안보차원에선 중요한 통치기반인 검찰을 적대세력 내지는 솜방망이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셈이다.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정치실험’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야 모두 여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언제까지 파업유도건에 대한 조사를 유보할 것이냐는 비판을 감당하기 어렵고 여당도 조속히 민심수습과 정국안정을 도모해야 한다. 여권 핵심부에선 대통령의 사과이후 파업유도건외에 고급옷사건도 특검제 도입대상에 포함시키는 방안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옷사건의 경우 검찰수사에서 전말이 밝혀진 만큼 당시 검찰수사가 현직 법무부장관의 존재때문에 축소됐는지 여부로 국한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옷사건의 정쟁화는 막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제도적 특검제에 대해선 여전히 고개를 젓는다.

반면 옷사건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로 판을 벌이려 했던 한나라당이 여권의 요구에 순응할 지는 불투명하다. 야당내에선 “덥석 물기엔 파이가 너무 적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야당은 특검제의 부분 도입이라는 과실은 따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옷사건의 줄다리기 과정에서 타협점이 도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 유보됐던 김대통령과 이회창총재간의 단독 회담이 성사돼 막판 빅딜이 이뤄질 개연성도 있다. 그러나 만약 근일내로 접점찾기에 실패한다면…, 그렇다면 여야는 제 갈길을 갈 수 밖에 없을 듯하다.

아무튼 여당이 단독으로 부분 특검제를 강행하든 여야가 타협점을 찾든 이미 특검제의 물꼬는 터졌다. 한번 터진 물꼬는 계속 구멍을 넓혀 갈 것이고 이로인한 향후의 파장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여야의 정쟁과 상관없이 우리사회는 이미 특검제라는 ‘위험하면서도 매력적인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이태희·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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