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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 큰정치' 어디 갔나

한나라당 이회창총재의 새정치가 사라졌다. 지난해 8월말 당권을 잡으면서 내걸었던 ‘새정치, 큰정치’의 깃발을 찾아 볼 수가 없다. 4월14일 성균관대 경영대학원 조찬강연서 주창했던 제2창당 선언도 3개월째 길을 잃은 상태. 당시 당 안팎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뉴 밀레니엄 리더십’도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고해서 이총재가 복지부동(伏地不動)중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분단위로 일정을 쪼갤 만큼 정신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동선(動線)을 쫓아야하는 기자나 보좌진들이 가뿐 숨을 몰아쉬어야 할 정도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복잡한 당내 사정이 ‘걸림돌’

새정치의 걸림돌은 먼저 한나라당 내부에서 찾을 수 있다. 한나라당은 여러 갈래의 뿌리가 얼키고 설킨 정당. 이총재가 총재직에 오른 뒤 10개월여 동안 매달렸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조금도 해결되지 않았다.

당연히 특정 사안이 불거져 나올 때마다 내홍(內訌)이 있었다. ‘십인십색’의 목소리가 걸러지지 않은 채 터져 나왔다. 때로는 양 극단의 의견이 교대로 이총재를 흔드는 바람에 당의 중심이 흔들리기도 했다.

한나라당이 아직껏 확정하지 않은 선거구제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총재는 “권력구조 문제가 결정되지 않은 채 중선거구제냐 소선거구제냐를 논의한다는 것은 본말이 뒤바뀐 것”이라며 “여권에서 내각제냐 대통령제냐의 문제를 먼저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부의 복잡한 사정을 굳이 서둘러 드러내고 싶지 않은 속셈이 숨어 있다. 당론은 소선거구제로 굳혔지만 중선거구제를 선호하는 당내 움직임이 여전히 사그러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의 박근혜부총재의 사퇴파동이나 김영삼 전대통령과의 어정쩡한 선긋기도 본질적으로는 여기에 맞닿아 있다.

박부총재가 “박정희 전대통령의 재평가 작업에 당 지도부가 소극적”이라며 부총재직을 내놓자 이총재는 여러 차례 설득작업을 벌였고 마침내 “산업화 근대화의 초석을 놓은 박대통령의 업적은 그 누구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고까지 언급했다.

김전대통령과의 관계설정도 마찬가지. 이른바 ‘2중대’ 발언이 나왔지만 한나라당은 결국 마지막 다리를 건너지 못했다. 이총재는 이 발언이 언론에 보도된 직후 “지금은 진정으로 나라를 생각할 때이며 분별있는 행동이 필요하다”며 상도동과의 전면전을 불사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당내 부산·경남 지역 출신의원들이 문제가 됐다. 내년 총선까지는 그저 조용히 넘어가기만을 바라는 이들 의원들은 은근히 화해를 종용했다. 부산·경남지역에서의 김전대통령의 정치적 영향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총재는 결국 슬그머니 총을 거두었다. 6월 29일 부산 방문길에서는 “다소의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김전대통령의 발언은 야당이 야당으로서 제대로 서야한다는 뜻으로 안다”며 한발 물러서기까지 했다.

앞이 안보이는 여야대치 정국

숨 고를 틈을 주지않는 정국상황도 이총재의 구상을 가로막고 있다. 최근 이총재의 움직임은 정국상황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정국에 함몰 돼 있다. 쉴 새없이 터져 나오는 굵직굵직한 현안들 때문에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여유를 찾을 수가 없다는 뜻이다.

실제 이총재는 고관집 절도사건, 고급 옷 로비 의혹, 조폐공사 파업유도 공작 의혹 등 여권의 잇따른 악재에 대해 공세를 취하는 데 온 신경을 쏟아야 할 판이다. “여당은 위기여서 위기지만 야당은 호기여서 위기”라는 한 당직자의 말처럼 이총재로서는 여권을 떠난 민심을 한나라당으로 끌어들이는 데 골몰할 수 밖에 없었다.

각종 의혹사건에 대한 특검제와 국정조사 등을 놓고 여야가 대치전선을 형성하기 전에는 여권의 야당 두드리기를 막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총재 자신의 표현대로 “지난 한해는 살아남기 위한 투쟁”으로 채워졌던 것이다.

결국 이런 당 안팎의 사정이 이총재로 하여금 ‘뉴 밀레니엄 리더십’이나 ‘새정치, 큰정치’에 침잠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정중동(靜中動)이냐 정중정(靜中靜)이냐

이총재는 지난달 25일 확대당직자회의서 의미있는 발언을 했다. “당이 정쟁에만 치우쳐서는 곤란하다. 한나라당은 대안세력으로 자리잡아야 하며 그같은 변화의 노력이 없으면 야당에 대한 신뢰가 배신감으로 변할 것이다.”

당내 사정에 밝은 상당수 당직자들은 이날 발언을 “오랜 기간 준비된 내용”으로 받아들였다. 적어도 새정치 구상에 대해서는 이총재가 정중동(靜中動)의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총재실의 한 측근은 “1년이 채 남지 않은 16대 총선을 감안하면 늦어도 8월안에 새정치와 제2창당의 마스터플랜을 마무리해야 한다”며 “곧 있을 국회대표연설은 정부여당과 한나라당 내부 모두를 겨냥한 것이 될 터이니 주목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총재의 대표연설이 여권을 비판하는 것을 넘어서 ▲당직개편 ▲제2창당 준비위원회 구성 등 획기적인 당의 구조조정까지 아우를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총재는 7월1일 있은 국회 대표연설에서 자신의 새정치 구상을 구체화하는 것을 시도하지 않았다. 단지 “이제 야당도 변해야 하고 새로운 야당으로 거듭 태어나야 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원론적인 내용을 잠깐 언급했을 뿐이다. 이총재의 새정치는 ‘정중정(靜中靜)’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최성욱·정치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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