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발-역정-사과-격노-경질

07/15(목) 14:20

공동여당이 한바탕 소동을 겪었다. 여권의 공조를 깨뜨리기 직전의 상황까지 초래한 전례없는 위기였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나. 누가 사단을 일으킨 것인가.

7월 2일 갈등의 잉태

사단은 7월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서울공항에는 김대중대통령의 방미 출국 환송을 위해 김종필총리, 김영배 국민회의총재대행, 박태준 자민련총재, 김중권 청와대비서실장이 한 자리에 모였다. 김대통령이 비행기에 오른뒤 김총리가 “우리끼리 얘기 좀 하자”며 네 사람을 불러 모았다.

김총리의 입에서 놀라운 얘기가 터져 나왔다. “어제 저녁에 청와대에서 김대통령을 뵙고 특검제에 대해 야당의 입장을 수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검찰의 파업유도의혹에 한해 특검제를 적용키로 한 기존 공동여당 당론을 수정해옷로비사건에까지 특검제를 도입키로 하자. 내가 이 방침을 오후의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 답변을 통해 밝히겠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김총리는 1일 오후 청와대에서 김대통령을 독대, “우리가 꺼릴 게 뭐가 있느냐. 특검제 그것 아무 것도 아니다. 받읍시다”라고 김대통령을 재촉했고 김대통령은 “좋다. 당, 청와대 비서실장과 협의해 총리가 잘 하시오”라고 재가했다.

김총리의 말에 얼굴이 굳어진 김영배대행이 먼저 제동을 걸었다. “그런 얘기를 정부에서 하실 게 아닙니다. 당에게 맡겨 주십시오.” 김중권실장도 여기에 동조했다. 박총재도 은근히 김대행편에 섰다.

이러자 김총리도 “좋다. 대정부질문에서는 원론적인 얘기만 할테니 당에서 잘 알아서 협상을 진행시켜 보라”고 동의했다.

그후 김실장을 뺀 나머지 세 사람은 국회로 돌아왔고 곧바로 김대행과 박총재는 양당 총무들을 불러모아 새로운 지침에 따른 대야 협상 방안을 논의했다. 결론은 ‘국민회의는 기존 당론을 고수하고 자민련이 총리의 생각을 협상안으로 제시, 한나라당을 유인하자’는 양당의 역할 분담이었다.

그러나 곧 일이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김총리가 답변에서 “여야가 합의하면 특검제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한뒤 보충질의 답변을 통해 “특검제라는게 처음하는 것으로 여러 문제가 있는 제도지만 이번에는 야당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에 대해 한시적으로 해보자”며 “구체적인 대상은 여야간에 협상을 통해 합의하면 된다”고 말해 오전의 여권 4자회동에서 묵계된 발언 수위를 넘어버린 것이었다. 특히 김총리의 ‘한시적 특검제 수용’ 발언은 “시한을 정해 특검제를 제도로서 전면 도입하자”는 야당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석돼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총리는 총리 나는 나” 김대행 반발

김총리는 국회가 모두 끝난뒤 기자들에게 “야당이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것에 대해 몇달동안 해서 끝내자는 의미로 야당도 더이상 정쟁화하려 들면 안된다”고 야당의 주장을 받아들이는게 아님을 밝혔지만 일부 언론들은 ‘여, 특검제 전면수용’으로 보도했다.

이러자 국민회의에선 김대행이 직접 나서 “우리는 입장을 바꾼 게 없다. 나는 총리의 지시를 받는 사람이 아니다. 총리는 총리고 나는 나”라며 강하게 김총리의 발언을 부정하고 나섰다. 김대행은 “우리 당 총재가 나에게 아무 말도 안했는데 어떻게 내가 입장을 바꾸겠느냐”면서 “정부에서 특검제 얘기를 할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심지어 김대행은 자민련측에서 김대행이 김총리의 입장에 동의했다는 말을 흘린데 대해 “지랄하고 있네”라는 감정적인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김대행의 ‘오버액션’은 3일과 4일에도 계속됐고 끝내 5일 국회가 파행됨으로써 공동여당내의 집안 싸움으로까지 비화했다. 한나라당이 5일로 예정됐던 국회 외교·통일분야 대정부질문을 “특검제에 대한 여당의 입장이 단일화하지 않았다”며 거부해 버리자 이번에는 김총리가 화를 냈다.

“혼자 다하라고 해” 김총리 역정

김총리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자민련 강창희총무가 본회의 무산 사실을 보고하자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특검제에 대해 분명히 대통령과 합의했다. 받자고 했고 하자고 했다. 그런데 딴소리를 하는 친구가 누구냐. 다 혼자 하라고 해. 소리지르면 좋지 않아. 저희 당 총재가 나에게 다 맡겼어. 그런데 딴소리를 해. 국민회의 혼자 다 하라고 해. 뭐하는 친구들이야. 큰소리 더 안지르도록 해. 더 소리지르면 좋지 않아. 참는데도 한계가 있지. 어떻게 하라는 말이냐”고 쏘아붙인 뒤 의사당을 나가 버렸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회의가 긴장한 것은 당연. 김대행은 의원총회도중 이를 듣고 곧바로 자민련 박총재에게 가서 “어떻게 된 일이냐. 우리가 협상전략을 그렇게 짰던 것 아니냐. 강총무가 제대로 얘기를 안한게 아니냐”고 ‘항변’했다. 김대행은 기자들에게도 “내가 총리의 답변을 부정했던 것은 협상전략차원이었다”면서 “총리에게 누를 끼치려던 것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김대행은 오후에 김총리에게 전화를 걸어 해명하려 했지만 김총리는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공동여당은 급기야 5일 오후 급히 양당 수뇌부회동을 갖고 김총리 얘기대로 “옷로비사건에 특검제를 추가로 적용할 수 있다”는 단일안을 만들어 야당에게 제시했고 이를 통해 총리실의 반발도 누그러졌다. 국민회의 손세일총무가 6일 아침 국회 총리대기실로 김총리를 찾아가 직접 머리를 조아린 것도 주효했다.

7일에는 고위국정협의회를 갖기 전 김총리와 20여분간 만나 “김총리 얘기를 부인하면서 기존 당론 고수를 외친 것은 대야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자민련측과 사전에 합의한 작전의 하나였는데 이 부분이 김총리에게 잘 전달되지 않아 문제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김총리도 밝은 표정으로 화답했다.

“김총리 발언은 잘못”…자민련 발칵

그러나 상황은 하룻만에 급반전했다. 위기의 미봉은 위기의 극대화로 전격 U턴했다.

8일 오전11시께까지만해도 국민회의 김영배총재대행은 희색이 만면했다. 아침 당8역회의에서 이뤄진 자신과 당8역 사의 표명에 대해 김대중대통령이 ‘총재대행 사의 반려, 8역 수리’라는 ‘선물’을 안겨줬기 때문이었다. 김대행은 이날 아침 고위당직자회의에서 “민심을 수습하고 당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전부 사퇴하자”며 전격적으로 자신과 당8역의 사의를 표명해 세상을 놀라게 했었다.

그러나 이때 김대행은 이미 자신의 ‘무덤’을 파고 난 뒤였다. 김대행은 오전 10시께 주례보고를 위해 국회에서 청와대로 들어가는 차안에서 한 기자에게 “김총리의 특검제 전면수용 발언은 잘못됐다” “7일 국정협의회에서도 두 여당의 협상전략은 잘못됐다고 자세히 말했는데 자민련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는 등 JP와 자민련을 비판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대로 언론에 보도돼 김대행이 웃음을 지으며 국회로 다시 돌아온 오전 11시30분께 이미 총리실과 자민련은 들끓고 있었다.

낮 12시30분께 자민련 고위당직자, 일부 국무위원들과 오찬을 함께 하기 위해 여의도의 한 음식점을 찾은 JP는 자리에 앉자 마자 김중권 청와대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김대행이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계속 이러면 공조를 유지할 수 없다”고 항의했다. 김총리는 이어 자민련 당직자들에게 “그런 사람(김대행)과 함께 파트너가 돼서 일하기가 어렵지 않겠느냐”면서 “이제 헤어질 때가 됐구먼…”이라며 공동여당의 결별까지 시사하고 나섰다. 김총리는 “야당에서 질문하는데 총리가 얘기하지 않을 수가 있느냐”고 격렬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오찬이 끝날 때쯤 김용채 총리비서실장은 “김대행이 어제 김총리를 만나 직접 사과해 서로 이해가 됐는데 오늘 사실과 거리가 있는 얘기를 또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요지의 성명을 공식 발표했다. 자민련 강창희총무도 기자간담회를 갖고 “김대행의 비겁한 발언이 공동정부를 침몰시키려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김대행의 적절한 조치가 있기 전에는 국회운영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태준총재도 오후에 김중권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김대행의 경질을 주문했다.

김총리, 김대행 경질 강력 요구

김영배대행은 오전11시40분께 본회의장에서 처음으로 자민련의 격한 분위기를 전해 듣고 “발언내용이 와전됐다”면서 “JP의 국회 발언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총리의 발언을 ‘특검제 전면 도입’이라고 보도한 언론이 잘못됐다고 말한 것을 언론이 잘못 썼다”고 해명했지만 무위에 그쳤다.

청와대에서도 김중권비서실장과 김정길정무수석이 나서 김총리를 달랬지만 오히려 김총리는 “그 사람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나 먼저 알아보라. 그 친구와는 계속 같이 일 못한다. 그 사람이 그만두든 내가 그만 두든 알아서 하라”고 노골적으로 김대행 경질을 요구했다.

김총리의 반응을 접한 김실장등은 김대행과 접촉, “JP에게 사과해서 문제를 푸는게 어떠냐”고 권유했지만 이번에는 김대행이 “내가 뭘 잘못했느냐. 사실이 아닌 보도를 갖고 얘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 일을 그렇게 처리하면 안된다. 차라리 내가 그만 두겠다. 대통령께 내가 물러나겠다는 뜻을 전해달라”며 버텼다.

결국 김대통령은 김대행 사표 반려를 발표한지 5시간반만에 김대행 사표 수리를 결정할 수 밖에 없었다. hsso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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