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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에 휩싸인 햇볕정책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에 먹구름이 몰아닥치고있다.

이솝우화에서 비롯된 이른바 햇볕정책은 김대중대통령이 집권하기전부터 ‘트레이드 마크’처럼 주장해온 대북정책. 그러나 행인의 외투를 벗길 수 있는 것은 ‘강풍’이 아니라 햇볕이라는 우화의 본래내용처럼 이 용어가 자칫 북한의 멸망이나 대북흡수통일을 추구하는 고도의 전략이라는 북한의 비난이 잇달자 요즘은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으로 더 자주 불리고있다.

정부가 대북 포용정책을 구체적으로 가시화한 것은 김대중대통령이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평화공존 등 대북 3대 원칙을 천명하면서부터. 이후 당시 임동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미·일·중·러 등 한반도주변 4대국을 순방하며 북·미 및 북·일 수교 등을 골자로 하는 포용정책을 설파해 이들국가로부터 지지를 받아냄으로써 탄력을 얻게 됐다. 그러다 대북 강경론을 내세운 미 의회의 압력에 밀린 클린턴 행정부가 윌리엄 페리 전국방장관을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 미국의 대북 정책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하는 과정에서 하마터면 포용정책이 물거품이 될뻔한 위기에 처하기도 했었다. 이에 김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을 비롯한 4강 순방외교 등을 통해 페리조정관의 대북권고안 방향을 포용정책의 큰 틀안으로 묶어두는 데 성공했다.

햇볕정책은 일출직후부터 국내외 보수세력으로부터 ‘북한의 정체와 전략’을 순진하게 보는 섣부른 ‘진보주의자’들의 유화책이라는 비난에 직면했다. 특히 야당으로부터 ‘주기만하고 받지는 못하는 짝사랑정책’이라는 가혹한 비판이 빗발쳤다.

햇볕정책은 북한에 의해서도 시험대에 올랐다.

맨처음 터져나온 것은 지난해 7월 동해안 잠수함침투사건. 또한 이 파문이 가라앉기도 전에 지난해 8월 북한 금창리에 새로운 대규모 지하핵의혹시설이 불거져 나왔고 같은달 31일에는 북한이 인공위성을 위장한 다단계로켓을 시험발사했다.

그러나 금창리파문은 다행히도 핵확산방지를 외교정책의 최우선으로 여기는 미국이 적극 개입, 대량의 식량지원을 댓가로 현장조사를 실시한 결과 일단 핵시설로 전용하지는 못하도록 발목을 붙들어맴으로써 진정돼가고 있다. 동북아안정에 최대의 암초로 대두됐던 금창리뇌관이 제거됨으로써 정부의 햇볕정책도 한층 빛을 발할 분위기가 조성된 셈이었다.

그러나 역시 문제는 북한. 예측불가능한 행동을 일삼아온 과거의 행태에 걸맞게 6월들어 연쇄적으로 도발을 저지름으로써 우리정부를 코너로 몰았다.

햇볕정책에 또 다시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

맨처음 불어닥친 난기류는 6월7일부터 비롯된 서해안 북방한계선(NLL)침범행위. 꽃게잡이 어선을 앞세워 NLL을 넘던 북한은 우리해군이 함선을 이용, 밀어내기작전으로 맞서자 15일에는 선제사격을 가해왔다. 이로말미암아 결국 양측 함선간에 교전사태가 벌어졌고 남북관계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았다. 서해교전사태의 포연이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이번에는 20일 저녁 금강산 관광객 민영미씨를 ‘귀순공작요원’이라며 억류했다. 또한 북한은 민씨 억류사실이 서울에 알려진 21일에는 베이징에서 열리는 남북차관급회담에서 사전에 합의된 ‘이산가족문제’대신 ‘서해교전사태 사과’를 들고나와 회담을 결렬시켰다. 바다와 금강산과 베이징에서 동시다발로 우리측을 압박하고 나온 것이다.

이처럼 햇볕정책에 전면적 소나기가 몰아닥치자 포용정책이 도마위에 오른 것은 당연한 수순.

야당과 보수세력및 대북강경론을 펴는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회등의 줄기찬 공세에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정부는 국가안보회의(NSC)상임위를 잇달아 여는등 햇볕정책에 대한 재검검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우리국민의 안위가 관련된 민씨억류사건은 사안의 성격이 보다 심각했다.

정부는 21일 저녁 긴급소집된 국가안보회의 (NSC)상임위에서도 포용정책의 효용성을 놓고 심각한 난상토론을 벌인 끝에 포용정책의 기조는 유지하되 사안별로 선별해 적용키로 방침을 정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일단 실질적으로 북한 체제를 이끌고 있는 군부가 서해 사태 이후 북한군의 위신과 사기를 고려, 일련의 강경사태를 주도한 것으로 분석했다. 정부관계자는 “23일 베이징 북·미 고위급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NLL문제에 관해 미국측과만 대화하겠다고 밝힌 점을 보면 이른바 북한의 의도는 ‘통미봉남(通美封南)’전략에 따른 행동으로 판단된다”며 “8월의 4자회담과 페리조정관의 대북정책권고안 완성을 앞두고 북한이 보다 많은 실리를 얻어내기위해 특유의 벼랑끝 압박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판단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북한의 ‘압박작전’에 마냥 이끌려 다닌다는 여론의 비난이 잇달자 결국 김대중대통령이 직접나섰다.

김대중대통령은 25일 열린 월례 기자간담회에서 “햇볕정책은 정당하며 앞으로도 계속 추진될 것”이라고 전제한 뒤 “북한과의 교섭에서 상호주의를 고수하되 전술적 융통성을 발휘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는 새정부가 출범이후 햇볕정책의 일환으로 채택했던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다’는 이른바 ‘선공후득(先供後得)원칙’을 일부 수정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새정부는 지난해 4월 베이징 남북 비료회담이 ‘이산가족회담 성사등 요구조건을 들어줘야 비료를 줄 수 있다’는 상호주의를 내세우는 바람에 결렬되자 남북당국자간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문민정부시절의 ‘원칙적 상호주의’를 변경, 선공후득전술을 구사했다. 실제로 비료를 먼저 주는 식으로 진행된 이 전술은 차관급회담의 성사라는 획기적 성과를 낳았다.

김대통령은 그러나 이날 “대북강경정책을 쓰던 과거정권때도 김신조사건이나 아웅산테러사건등이 일어난 것을 보면 최근 북의 도발이 햇볕정책의 결과라는 지적은 적절치 않다”며 여전히 햇볕정책 유용론을 주장했다.

정부관계자는 “김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햇볕정책이라는 총론은 유지하되 각론에서는 사안별로 유연하게 상호주의를 적용하겠다는 의미”라며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대북경협사업 전반을 지속하겠다는 것도 이같은 기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정부가 상호주의을 내세운 만큼 햇볕정책의 앞날은 이제 북한의 태도에 달려있다.

윤승용·정치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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