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누이좋고 매부좋은'영수증 정책

07/23(금) 11:48

대만사람들은 두달마다 한번씩 ‘국민적 행사’를 치른다. 행사일은 2월25일, 4월25일 등 격월로 돌아오는 25일. 국민적 행사라 해서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신문 1면이나 2면에 난 ‘영수증 당첨표’를 놓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번호를 맞춰 보는 일이다. 당첨번호는 인터넷에도 게시된다.

영수증은 특별한 게 아니다. 모든 거래에서 사용된 평범한 영수증이다. 대만에서 영수증은 ‘통이파비아오(統一發票)’로 불린다. 모든 통이파비아오에는 8자리수로 된 고유의 일련번호가 찍혀 있다.

대만사람들이 25일을 고대하는 것은 이날 재수좋으면 ‘돈벼락’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 두달마다 통이파비아오에 찍힌 번호를 추첨해 상금을 주는 것이다.

상금은 특등부터 6등까지 7등급으로 나눠 주어진다. 한장이 걸리는 특등의 상금은 신대만패 200만원, 원화로 따지면 자그만치 7,200만원이다. 다섯장을 추첨하는 2등 상금은 720만원. 마지막 세자리수가 일치할 때 당첨되는 6등의 상금은 720원이다. 상금은 지정된 기간내에 가까운 은행에 가서 당첨된 통이파비아오를 제시하면 즉시 지급해 준다.

대만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영수증 주고받기를 제도권내에 수렴한 사례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인 거래 영수증의 번호를 추첨해 상금을 줌으로써 영수증 주고받기를 생활화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대만에서 통이파비아오 추첨제도를 실시한 것은 1951년 1월. 장제스 전총통의 국민당이 공산당에 밀려 내려온 지 2년만이다. 고질적인 탈세를 막자는 게 그 목적이었다. 부패가 국공내전 패인의 주요 원인중 하나였다는 반성이 제도 실시의 배경이다.

현재 통이파비아오는 병원비와 관공서의 수수료를 제외한 거의 모든 거래에서 발급된다. 구멍가게 물건판매에서부터 변호사 수임비에 이르기 까지 사적 거래에는 예외가 없다. 단돈 10원짜리 물건을 사도 영수증은 오고 간다. 상금이 걸려 있는 만큼 소비자들은 반드시 영수증을 요구하게 마련. 거래 상대자도 마찬가지다. 말 안해도 영수증을 발급해 주고, 혹 소비자가 잊고 계산대를 나서면 불러서 준다. 덕분에 대만에서는 영수증 조작이나 무자료 거래에 따른 탈세를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신용카드 사용을 놓고 국세청과 자영업자들간에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영수증이 오가지 않는 무자료 거래와 이로 인한 탈세를 막아 보자는 국세청과 무자료 거래에 익숙한 업체들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

국세청은 자영업소를 신용카드사에 가입시킨다는 목표아래 연매출액 1억5,000만원 이상 업소(병·의원, 학원은 7,500만원 이상) 3만3,600여곳에 강제 가맹 지정서를 보냈다. “7월말까지 신용카드에 가입하라”는 통첩성 지시였다.

넉달의 여유를 주었지만 성과는 신통치가 않다. 국세청에 따르면 7월11일 현재 신용카드사에 가맹한 곳은 지정 업소의 30%정도에 불과하다. 병원과 음식점의 절반이 가입한 데 비해 소매·서비스 업소는 30%에도 못미치고 있다고 한다. 이에 국세청은 “7월말까지 가입하지 않는 업소에는 필요하다면 세무조사도 실시할 방침”이라고 아울러 “시민단체 등에서 ‘신용카드 미가맹 업소 이용않기’운동을 벌여 준다면 큰 압력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은근히 국민의 힘에도 기대는 인상이다.

국세청이 추징한 탈루세액은 올 상반기만 1조3,981억원. 음성 탈루소득자 3,249명에 대한 세무조사를 통해서다. 이 돈은 지난해 전체 추징세액 1조6,000억원에 육박하는 액수다. 경실련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세무조사율은 0.1%수준. 전체 과세조사 대상 중 0.1%만 표본조사 등의 방법을 통해 실제 추적을 받고 있다. 이 비율은 선진국의 2~3%에 비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올 상반기에 추징한 세금도 결국 빙산의 일각인 셈이다. 천문학적인 액수의 세금이 국고로 들어오지 않고 허공에 뜨는 것이다. 이러니 세무조사 받은 업소나 개인만 ‘재수없게 걸려 들었다’며 오히려 피해자로 둔갑하는 사정이 벌어진다. 원천징수를 당하는 월급쟁이들의 불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업소에서는 국세청의 세무조사 위협에 대해서도 ‘할테면 해보라’는 식이다. 대부분의 신용카드 미가맹 업소들은 일부 손님들의 항의와 세무서측의 권유에도 막무가내로 버티고 있다고 한다. 매출액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보다는 확률이 극히 낮은 세무조사를 감수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다.

재정경제부가 올해 초 신용카드 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의도도 영수증 발급을 의무화해 세원이 곧바로 노출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재경부는 이를 위해 신용카드 영수증에 대해 일정비율의 소득세를 공제해 주기로 했다. 소비자들에게 신용카드 사용을 권장하고 아울러 영수증을 요구하도록 유인을 제공한다는 것. 그러나 이 제도는 인센티브가 너무 미미해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만의 영수증 이야기를 좀 더해보자. 대만 거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소매 체인점인 ‘세븐 일레븐’. 세븐 일레븐은 통이파비아오를 이용해 매상을 올리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개발했다. 정부가 주관하는 추첨 이외에 세븐 일레븐에서도 자체적으로 통이파비아오 번호를 추첨해 상금을 주는 것이다. 물론 추첨대상은 세븐 일레븐에서 물건을 사고 받은 통이파비아오에 한정된다. 상금은 정부가 주는 것보다 훨씬 많다. 특등은 한화로 2억원이 넘는다. 업체 수익 늘려서 좋고, 영수증 주고 받기에 힘을 보태서 좋고.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다.

영수증 주고 받기 생활화를 위해 만들어낸 대만의 추첨제도는 생각지 않았던 순기능도 하고 있다. 대만 국립 정치대학의 비서실장 차이리엔캉(蔡連康·한국어학과) 교수는 “통이파비아오 추첨제도가 실시된 이후 각종 복권들이 거의 자취를 감춰 사행성 산업을 통제하는 데도 일조했다”고

대만의 세븐 일레븐 계산대에는 조그만 통이 하나씩 비치돼 있다. 소비자들이 원할 경우 통이파비아오를 넣도록 마련된 것이다. 여기에 모여진 통이파비아오는 당첨될 경우 불우이웃돕기에 쓰여진다.

효율적인 과세는 정부의 기본적인 의무다. 봉급생활자들의 피해의식과 상대적 박탈감도 효율적인 과세를 통해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다. 효율적인 과세의 지름길은 영수증 주고 받기를 생활화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무역업을 하고 있는 교포 H씨는 “우리나라는 왜 이런 손쉬운 제도를 배우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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