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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는 지금 '엄동설한'

“나, 지금 떨고 있니…”

94년 겨울 인기리에 방영된 TV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사형집행을 앞두고 주인공인 최민수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내뱉은 말이다. 그런데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이 말이 요즘 재계에서 되살아 났다.

6월 29일 정부가 재계 서열 6위인 한진그룹에 대해 특별세무조사에 나서자 대기업 구조조정 관계자들 사이에서 정부가 집권 중반기를 맞아 ‘재벌 길들이기’에 나섰으며 ‘제2, 제3의 한진이 나올 수도 있다’라는 불안감이 호수위에 물결 번지듯 퍼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단순한 ‘재벌 길들이기’차원을 넘어 ‘재벌 해체의 수순’이라는 견해까지 나오고 있다. 요컨대 재계가 와들 와들 떨고 있는 것이다.

재계는 우선 한진그룹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상상외의 대규모라는 점에 크게 놀라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서울지방국세청에서 특별조사를 전담하는 조사2국 20개팀 150여명이 대부분 동원됐다는 점은 조사규모가 방대하며 뭔가 엄청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재계는 또 ‘왜 한진그룹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의 목적을 “법인세와 주가변동 내용에 대한 조사”라고 밝히고 있지만 그 말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진측은 국세청이 혐의로 내세우는 경영부실과 주가변동 부분에 대해 “세무조사를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며 펄쩍 뛰고 있다. 한진측은 대한항공의 잦은 사고 등 경영부실 요인이 세무조사라는 설명에 대해 “지난해 3,000억원의 흑자를 냈는데 무슨 경영부실이냐”고 반박한다. 또 주가변동설(대한항공과 한진해운 등 2개 상장사의 주가가 지난해 연초 대비 각각 140%와 70%씩 상승한 것)에 대해서도 “주가 변동이라면 금융감독원이 나서야지 왜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하느냐”는 입장이다.

“족벌체제에 시범케이스”재벌 긴장

재계는 이같은 사정과 정부가 이미 한진의 오너체제에 칼을 들이댄 경력(조중훈회장의 퇴진 요구)이 있었다는 점에서 한진에 대한 세무조사를 정치적, 정책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한진그룹은 지난 4월 잦은 항공기 사고와 관련, 김대중대통령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조중훈 전회장은 이때 형식상으로는 회장직에 물러났지만 조회장 일가는 여전히 대한항공의 주식지분 25.3%를 보유하며 후선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 정부의 의중을 제대로 읽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결국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 여전히 족벌체제를 유지하려는 재벌들에 대해 정부가 한진을 시범케이스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재계를 긴장시키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이번 조사가 구조개혁을 위한 압박수단이라면 다른 그룹도 조사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는 부분이 재계를 떨게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일부에서는 6월 28일 청와대가 직접 발표한 ‘5대그룹의 제2 금융권 지배구조 개혁방침’과 한진에 대한 특별세무조사가 ‘재벌 해체’를 종착점으로 하는 재벌개혁의 신호탄이라는 극단적인 전망도 나오고 있다.

5대그룹의 한 임원은 “정부가 최근 내세우는 일련의 대기업 정책은 대기업의 손과 팔을 잘라 궁극적으로 재벌 해체를 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며 “그 본보기로 삼성과 한진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전경련의 한 임원도 “정부가 재벌개혁을 어디까지 끌고 가려 하는지 알 수 없어 대기업들이 불안해 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물론 일부 재계 인사들은 공공·노동부문의 개혁이 여의치 않자 정부가 기업개혁의 고삐를 죔으로써 국면전환을 노리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하고 있다. 어쨌든 99년 여름은 재계에 추운 여름임에 틀림없다.

조철환·주간한국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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