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탐구] 경찰이 싫어 경찰이 된 절반의 '코미디언'

07/14(수) 15:21

‘연홍식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하다. 그와 조금만 친해져도 금새 연홍식化된다. 한 후배와의 통화중 일부. “난데,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약속시간보다 정확히 12분(공연히 2자를 덧붙여본다) 더 늦을거 같다.” 송화기 너머 대답. “형. 너무한 거 아냐? 나, 12분이나 못 기다려.” “그럼?” “12분은 너무하고, 11분!” 함께 일한지 넉달 남짓됐다는 동료형사도 마찬가지. 연홍식씨가 근무중에도 가끔 웃기냐고 묻자 태연히 대답한다. “아뇨. 가끔이 아니라 자주 웃깁니다.”

웃음에 관한한 프로같은 아마추어

서울 성동경찰서 정보과 연홍식(40)형사. 개그맨도 아닌데 그는 ‘웃기는 남자’다. 그러나 더 짧게 말해 ‘웃기는 형사’라고 표현하면 질색을 하는, 엄연한 형사다. 떠도는 전설도 많다. 한 TV토크쇼에서 누가 연산군의 이야기에 빗대 잠자리 30마리를 먹으면 잠자리가 편할까고 묻자, 표정도 근엄한 그가 ‘아마 안 그럴거다. 나도 한때 매미 50마리를 잡아먹어봤는데 오히려 매미(마음이) 전혀 안 편하더라’고 순식간에 받아쳐 다들 감탄을 했다던가.

근무중이라고 다를게 없다. 상황만 허락되면 언제든 튄다. 강력반 형사로 근무하던 언젠가 한 젊은이가 살인사건 용의자로 잡혀왔다. 수갑을 찬 채 커피를 마시다가 그만 제 무릎에 엎지르고는 뜨겁다며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것을 그가 보았다. “어이. 잘못하면 사형이야. 지금 뜨거운게 문제야?” 차분한 목소리에 진지한 표정. 오히려 잔뜩 긴장했던 용의자가 먼저 웃음을 터뜨려 버렸다.

그는 그렇게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놓는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틈만 나면 남을 웃기고 골린다. ‘준비 된’유머시리즈만도 여러종. 잠깐 앉은 사이에도‘말’시리즈를 쉬지않고 쏟아내는, 프로같은 아마추어다.

그러나 이 정도 단서로 ‘싱거운 사람’이란 속단은 금물. 농담만 아니면 그는 냉정하고 매서운 편에 가깝다. 정보과로 옮기기전 강력계 형사로만 7년을 근무, 무술실력만도 태권도 5단, 합기도 4단, 유도 3단, 검도 2단의 ‘걸어다니는 무기’다. 일종의 독심술도 뛰어나다. 워낙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니 처음 보는 사람도 한 눈에 ‘감’을 잡는다. 또한 최근까지도 경찰내 검거율 1위를 차지할만큼 노련한 프로. 매사 맺고 끊음도 칼 같은 사람이다.

고교땐 불량서클 영입대상 1호인 ‘주먹’

고향은 충북 청주. 3형제중 둘째로 그 같은 돌연변이는 형제중 혼자다. 체격이 좋은데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 온갖 운동으로 단련된터라 학내 불량서클이며 깡패들의 ‘영입’ 희망대상 1호였고 그런저런 시비로 싸움도 잦았다. 고2때는 거의 일주일중 나흘을 싸우고 다녔다. 한 번은 이유없이 사진반 여학생을 때린 불량배들에게 사과를 받으러 갔다가 갑자기 수십명이 포위, 20대 1의 싸움을 벌였고, 마침 그 장면을 목격한 새 담임교사로부터 깡패로 오해받아 퇴학위기까지 몰린 적도 있다. 그러나 결석, 지각 한 번 없었던데다 그 집요한 유혹에도 불구하고 불량서클에 가입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돼 다행히 무사통과.

부산상고를 거쳐 경남공업전문대를 졸업했다. 재수시절엔 음악다방 DJ도 해봤고 군에선 군수사령부 태권도선수단에서 복무했다. 대학졸업후 신발하청업을 하던 아버지 사업을 도와 접착제로 신발 밑창을 붙이는 일도 1년쯤 했다. 그리고 한 태권도장의 관장생활도 1년. 해군사관학교 태권도교관 채용시험에도 합격했지만 ‘가방끈이 짧다’는 이유로 최종무산됐다. 아버지 사업이 완전히 망한 뒤 혼자 서울로 올라왔다. 단 석달이긴 하지만 국회의원 보좌관 생활도 했다. 스포츠신문 기자의 꿈을 꾼 적도 있고, 실제로 일간스포츠 기자시험에 도전했다 고배를 마신바도 있다.

경찰이 된 것은, 아이러니칼하게도, ‘경찰이 너무 싫어서’였다. 고등학교때 주민등록증을 분실하고 찾아간 경찰서에서 새까맣게 젊은 경찰관이 한참 손위인 자신의 아버지에게 함부로 반말을 하는걸 보고 그때부터 경찰이 싫었다. 하지만 그렇게 지독스레 싫어서 직접 해 볼 생각도 갖게 됐다. 특히 운동과 관련된 무도경찰이 좋아보였다. 그리고 불친절하게 굴지 않고도 얼마든지 좋은 경찰이 될 수 있다는 걸 직접 보여주겠다는 오기로 시험에 응시, 86년 무술경찰특채로 경찰 뱃지를 달았다.

강력계형사는 똑똑하기 보다는 우직해야

서울 서초경찰서 기동대로 시작해 노량진서 등에서 강력계 형사로 7년동안 살인사건만 쫓아다녔다. 잦은 과로에다 정신적 스트레스, 술 등으로 심하게 건강은 상했지만, 얻은것도 많았다. 그만큼 노력한 부분도 많았기 때문이다.

“전 가만히 있으면 참 무서운 사람이라고 해요. 말없이 앉아서 한쪽만 주시해도 다들 제가 무섭대요. 그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농담도 더 많이 하고, 실없이 보이더라도 일부러 가볍게 행동하기도 합니다. 특히나 경찰은 아무리 친절하게 해도, 이상한 거부감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잖아요. 그래서 더 말이나 행동을 친절하게 하니까 나중엔 선배들이 ‘야. 네가 형사지 변호사냐? 뭘 그렇게 좋은 말만 하냐?’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겐 단 한번 짜증을 내고 잊어버릴 일이라도, 듣는 사람에겐 평생 그 기억이 남을거거든요. 꼭 옛날의 저처럼. 그게 무서운 거죠.”

90년엔 특진표창도 받았다. 강간죄로 징역 3년형을 살고 나온 젊은이가 출소한지 1년후 그 여자의 어머니와 친구 등을 해치는 보복사건이었다. 빨라봐야 한달은 족히 걸릴 것이라던 사건을 그의 팀은 단 16일만에 말끔히 풀었다. 팀웍도 최상, 좋은 선배를 만난 복도 컸다. 갖은 고생끝에 선배형사와 함께 범인을 잡고도, 후배인 그를 위해 선배가 상을 양보한 것.

살인사건은 대개 그런식이었다. 거의 ‘남산의 김서방’ 찾기나 다름없다. 단지 몇가지의 사소한 단서와 보이지 않는 용의자를 찾아 그때도 서울과 울산, 집과 도서관, 은행, 거리를 온통 헤집고 다녔다. 간신히 찾아낸 용의자의 이모부집에선 용의자가 읽었을 법한 책 수백권까지 일일이 뒤졌다. 네시간동안 그렇게 책만 뒤지고 있자 지켜보던 용의자의 이모부까지 어이없다는 듯 웃기도 했다. 결국 그 책갈피 중 한군데에서 결정적인 편지를 발견, 그 단서로 곧 용의자를 검거했다.

“어떻게 들릴진 몰라도 강력계 형사는 오히려 무식할수록 좋습니다. 너무 똑똑하면 오히려 좋은 형사가 될 수 없지요. 가령 어떤 용의자를 잡으려고 할 때, 보통 그의 집부터 생각할거 아녜요. 그런데 너무 똑똑하다보면 ‘누구라도 당연히 집부터 찾아갈거다. 그러니까 범인도 미리 그걸 알고 절대 집으로 안 갈거다’ 이렇게 앞질러버리는거죠. 그런데 그게 아녜요. 의외로 단순한게 통한다니까요. 옛날 더 신참땐 한 범인을 잡으러 지방에 내려가 그 숙소주변에서 잠복근무를 하는데 ‘쫓기는 신세니까 당연히 밤에 활동하느라 늦잠을 잘거다. 약 11시쯤 일어날거다’싶어 우린 아침 8시부터 감시에 들어갔지요. 그런데 1주일이 지나도록 도무지 안잡히는거예요. 상부에 보고를 했더니 당장 올라오라고 호통을 치길래 다음날 아침 짐을 꾸려 올라가면서, 그래도 마지막인데 가는길에 들러나보자며 오전 7시무렵에 갔더니 글쎄, 그때 집에 있더라구요. 바로 잡았지요. 그러니깐 잔 머리를 많이 쓰면 쓸수록 더 안된다니깐요.”

매력있고 떳떳한 경찰, 스카웃 제의도 거절

코미디같은 또 한편의 경험담. 새벽 두어시경, 한 살인사건 용의자를 잡으러 어느 집에서 잠복하고 있는데, 바로 코 앞에서 옆 집을 털러 온 도둑들이 보이는 것이다. 살인사건 용의자를 잡자니 제 발로 찾아든 도둑을 놓치겠고, 도둑을 잡자니 그렇게 고생하며 쫓아온 용의자를 놓치겠고, 그런 웃지 못할 일도 다반사. _ 물론 당시엔 도둑을 먼저 잡았다. 수배된 용의자야 다음에 잡아도 되지만, 당장 일어나고 있는 범죄를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

그러면서도 형사는 무식하다는 마구잡이 편견이 싫어 어렵다는 책들도 많이 읽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일반 교양서는 물론 문화분야의 다양한 전문서적까지 찾아가며 부지런히 탐독했다. 무모한 정열로 사고도 적지않았다. 96년엔 한 오토바이 소매치기범과 혼자 육탄전으로 싸우다 어깨뼈가 으스러지는 등 크게 다쳤다. 두달동안 병원신세를 졌는데, 그때 평생에 가장 큰 갈등을 겪기도 했다. 모 기업 회장의 비서로 들어오라는 스카웃 제의를 받았고, 그들이 제시한 조건은 2~3년안에 경찰의 평생 월급을 모두 벌 수 있을 만큼 파격적인 것. 마음이 흔들렸다. 그러나 결국 가지 않았다. 사정을 아는 이들은 다들‘미쳤다’고 했다. 하지만 그럴만한 ‘배짱’이 없었다. 남들처럼 대우만 좋으면 선뜻 자리를 옮길 배짱도, 또 ‘부정하지만 않으면 아주 강하고 매력있고, 어디서든 떳떳한’ 경찰의 자리를 포기할 배짱도 없었다.

“그럴 배짱만 있었으면 진작 공무원도 그만두고, 돈도 많이 벌었을거예요. 하지만 저는 분수 이상 욕심도 없고, 제가 좋아하는 일, 이대로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즐겁게 산다는게 사실은 얼마나 어려운건지 아세요? 즐겁게 살자면 절대 남한테 피해도 안 줘야 되고, 체력도 좋아야 되고, 아는 것도 많아야 됩니다. 인복도 있어야 되고, 세상을 제대로 알아야 진짜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저요? 저는 지금 즐겁게 살고 있다기보다 그냥 ‘그럴려고 노력을 많이 한다’는 정도지요.”

경찰이미지 바꾼 방송출연, 가족에겐 여전히 ‘미안’

방송과의 인연도 일에서부터 시작됐다. 우연히 가수 변진섭의 콘서트와 관련된 사기사건을 맡아 해결해주었는데, 그의 ‘똘똘한’ 일솜씨에 반한 변씨의 아버지가 돌연 아들의 의형제가 돼주기를 바랬다. 그렇게 생긴 의동생과 둘도 없이 친한 사람으로 소문나 몇번 방송에 초대된 것이 그만 발목을 잡히는 계기가 돼버렸다. 지난해 10월 파워인터뷰로 시작해 두달전부터는 시사터치 코미디파일이란 프로그램에까지 고정출연, 그는 경찰내부에서도 기존 경찰의 굳은 이미지를 바꿔준 효자로, 보이지않는 응원을 받고 있다.

지난 3월엔 승진도 했다. 맡은 업무도 강력반에서 정보과로 바뀌었다. 새로 맡은 일도 맘에 썩 든다. 앞으로 기획쪽 업무에서 새로운 자리를 찾고 싶어하는 그의 바람이나 계획과 연결돼있기 때문이다.

미안한 건, 가족들에겐 변한게 없다는거다. 전엔 잠복근무다 뭐다해서 ‘남의 집을 지켜주느라 제 집은 팽개친’ 꼴이었는데 요즘은 도처에 생긴 형이니 아우니 하는 ‘팬’들 관리로 퇴근때마다 옆길로 새기 바쁘다. 얼마전엔 아이들이 전화를 걸어 아빠 얼굴 잊어버리겠다며 투덜대기까지 했다. 그럴때도 그는 의연하게 대답했다. “그럴까봐 방송 출연하는거 아냐!”

정영주·자유기고가 김명원·사진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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