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한 기자의 이야기

07/15(목) 11:31

나라 안팎이 어지러울 때 마다 언론은 항상 정치지도자나 정치권으로부터 비판, 비난의 대상이 된다.

꼭 이래야만 할까를 언론계에 있는 한 사람으로 생각케 된다. 자성케 된다. 자성의 단서는 지난 3월말에 미국에서 나온 뉴스위크지의 추적기자 마이클 이시코프 기자의 ‘클린턴 벗기기-한 기자의 이야기’속에 있다.

이시코프의 ‘한 기자의 이야기’는 한 미국 기자의 특종기나 폭로기나 언론계 비난기사가 아니다. 402쪽의 이 책에는 소위 대통령의 스캔들을 다루는 미국 추적언론의 오늘이 정부나 정치의 감시나 영향권 밖에서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가의 여러 문제가 담담히 적혀있다. 거기에는 언론을 개혁하자는 주장도, 구조조정해야한다는 비판도 없다. 추적기자는 어떤 도덕과 목적으로 편집, 경영진과 어떻게 조화하며 특종기사를 다뤄야 하는가의 자성의 이야기가 길다.

미국의 저널리즘에 관한 잡지들이 클린턴 대통령을 탄핵까지 몰고가는 94년 2월에서 98년 년말까지의 ‘지퍼게이트’, ‘포연속의 백악관’의 보도에서 거명되는 언론인은 여럿이 있다. 그러나 이를 한사람으로 줄이면 그 언론인은 마이클 이시코프 라고들 한다. 두사람일 때는 인터넷 기자인 매트 드럿지다. 클린턴이 대통령 선거전에 나설 때인 91년 경호원인 주방위군을 이용해 주정부 산하단체의 여직원 포우라 죤슨을 만났다는 사실은 보수우익 주간지 ‘아메리칸 스펙터’에 93년 말에 실렸다.

이 주간지의 사장 테리 이스트랜드는 이스코프의 책을 읽고 평하고 있다. “그는 ‘철인 이스코프’라고 불릴만 하다. 이 책에는 모니카 르윈스키와 클린턴 대통령간의 알려지지 않았던 때의 이야기가 명확하고, 심층적으로 드러나 있다. 미국의 언론계나 클린턴의 대통령직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은 읽어볼 만하다”고 했다.

이시코프는 81년 워싱턴 포스트지에 들어와 법무부를 출입했다. 94년 2월 죤슨양은 클린턴에게 성추행의 수모를 당하고도 클린턴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했다는 것으로 보도된 것은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시코프는 죤슨이 주장한 2명의 증인 증언등을 들어 포스트지 편집진에게 이를 보도 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편집담당 부국장, 국내뉴스 담당 부국장등은 “그건 스캔들 아닌가?”며 기사를 보류시키자고 했다. 편집국장 레오나드 도위는 “더 추적해 보도하라”고 주문했다.

그의 추적은 3개월이 지나 5월4일에야 워싱턴 포스트지 1면에 실렸다. 그가 부국장과 기사문제로 다퉈 항명죄로 3주일을 근신처분 받고 나서였다. 극우보수지 워싱턴 타임즈와 보수단체들이 워싱턴 포스트가 기사를 묵살하려한다는 광고와 기사를 낸 후였다.

그는 결국 워싱턴 포스트를 떠나 뉴스위크로 자리를 옮겼다. 뉴스위크에서의 클린턴이 대통령이 93년 9월 백악관 자원봉사자 캐서린 윌리를 성추문 했다는 보도, 르윈스키의 이름을 처음 알아내고 캔 스타 특별검사가 대통령의 성추행을 기소하려 한다는 사실을 그가 제일 먼저, 자세히 알고있었다. 그러나 뉴스위크는 300만부가 나가는 주류주간지로서 대통령의 섹스가 뉴스가 되냐는 문제에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이시코프의 죤슨(94년 2월~94년 5월), 캐서린 윌리(96년 9월~97년 8월), 모니카 르윈스키(97년 8월~97년 12월), 캔 스타(97년 12월~98년 1월)에 대한 억척스런 추적은 특종은 아니었지만 특종 이상의 파문을 미국 언론에 던졌다. 현직 대통령의 탄핵이었다.

그는 결론 짓고 있다. “‘클린턴 벗기기’는 도덕적 문제를 다룬게 아니다. 그렇다고 벗기기의 내용(성추행)을 등한시 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대통령은 국민을 속여서는 안된다. 폴라 죤슨, 캐서린 윌리는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더 솔직하게 사실을 털어놨다. 클린턴의 무모와 거만이 사실을 은폐했다. 나는 탄핵보다 폭로가 이런 병폐에 대한 대책이라 생각했다.” 스스로 언론개혁의 길을 택한 어느 기자의 자성의 이야기다.

박용배·통일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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