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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재기의 무대'서 흘리는 황기순의 눈물

“지금도 한밤중에 자다가 말고 벌떡 일어나곤 합니다. 지금 여기 이렇게 살고 있다는게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실감이 안 나요. 아무래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불과 얼마전만 해도 죽을 생각을 했던 사람이 지금 여기에 와 있다니, 게다가 연극까지 하고 있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한참 지옥에 떨어졌다가 다시 천당 문턱에 와 있는 것 같습니다.”

귀국한지 7개월. 그러나 아직도 집에 돌아왔다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90년대 중반 코미디언으로 전성시대를 구가했던 황기순(36). 97년 해외 원정도박사범으로 수배를 받은 뒤 1년9개월동안 필리핀을 떠돌다 자진귀국, 징역8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뒤 새 삶을 시작,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인기개그맨에서 하루아침에 도박전과자로

생활은 판이하게 바뀌었다. 더 이상 인기연예인도 아니고, 가진 돈도 없다. 2주전부터 시작한 것이 분당의 한 한식당의 주차안내원. 평일은 그 식당에서 먹고 잔다. 그리고 주말이면 대학생 조카들까지 북적거리는, 서울의 11평짜리 반지하방 누나집 신세를 지는 처지다.

현재 쌓여있는 빚은 약 9,000만원. 급한 불은 일단 껐다. 그간 필리핀에서의 생활이 낱낱이 알려지면서 5명의 채권자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지불기한을 연장, ‘힘내고 어서 일어서라’며 오히려 위로까지 해 준 상태.

남 앞에 나설 염치도 없고, 할 만한 일거리도 찾지 못해 5월 중순까지 그저 숨만 죽이고 살았다. 그러다 6월18일부터 연극 ‘코미디 죽이기’ 무대에 합류했다. 귀국직후 줄곧 집안에만 갇힌 채 사람을 피하고 있는, 잔뜩 기가 눌린 그를 위해 동료 개그맨 주병진이 마련해준 자리다. 말하자면 그의 재기를 응원하는 구름대나 다름없다.

그것조차 처음엔 여의치 않았다. 연예인으로서의 재기도 끝장 난 줄 알았다. 워낙 충격이 컸던 탓인지, 원래 배역에도 없던 역할을 만들어 넣고 대사를 연습하는 준비과정에서 연기자로서도 그는 이미 철저히 망가져 있었다. 한마디 한마디 대사를 말할 때마다 동료 출연자들이 웃어댔다. 도무지 책을 읽는 것처럼 뻣뻣하고 어색했기 때문이다. 다시는 연예인으로 돌아가지 못하리라는 불안 때문에 본격 공연을 앞둔 며칠전 최종 리허설 때는 대사를 외다말고 갑작스런 마비증세로 쓰러지기까지 했다. 한 병원에서는 그에게 ‘풍을 맞을’ 조짐이 있다고 했다. 아직까지 치료를 받는 중.

당시 연출을 맡은 주병진은 그럴수록 더 혹독하게 다뤘다. 가만히 두면 정말 재기불능에 빠질까봐 더욱더 많은 훈련과 자극을 주었다. 그렇게 공연을 시작, 벌써 40회를 넘겼다. 원래의 연기감각도 차츰 돌아오고, 조금씩 사람들 앞에 서는 데 대한 두려움도 극복되고 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의미 하나. 매회 연극 말미의 3~4분 동안 그는 혼자 무대에 오른다. 그에게만 주어진 특별한 시간이다. 대본도 없는 참회의 순간. 자신의 삶을 스스로 단죄한다. 매일마다 되풀이하지만, 마칠 때면 어김없이 눈물을 흘리고 만다. 남들이 그 눈물을 믿든 안 믿든, 자신에겐 진실이다. 어쩌면 조금씩 새 생활에 다시 익숙해지려는 그에게 그 3, 4분의 짧은 시간은 필리핀에서의 기억을 잠시도 떨치지못하게 만들어놓는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자신에게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두번 실수하지 않는 것. 귀국할 때의 다짐대로 새 삶을 사는 것.

도박 3개월만에 풍비박산난 가정과 재산

불과 일곱달 전의 그와 비교해봐도 대단한 발전이다. 폐인처럼 필리핀을 떠돌다 돌아온 것이 지난해 12월 31일. 그후 오늘까지 말 그대로 죄인으로 살았다. 드디어 마닐라의 거지생활을 청산하던 날엔 혼자 여권과 서울행 비행기표를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 거의 울다시피 했다. 그것은 두려움과 기쁨이 뒤섞인 복잡한 감격이었다. 들어서자마자 외화밀반출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예상대로 가정은 이미 풍비박산이 나 있었다. 이미 국내에 들어오기전인 97년 부인과는 이혼한 상태. 결혼생활 만 4년도 채우지 못한 채 가정을 잃었다. 한때 큰 나이트클럽까지 소유했던 그의 재산도 한꺼번에 날아갔다. 도박 3개월만에 전 재산을 잃었고, 1년 9개월만에 인생 자체가 폐허로 변해버렸다. 그 후유증은 귀국후 한참 뒤까지도 남아있었다.

“처음 서너달 동안 거의 집 밖을 안 나갔어요. 사람들을 대하는게 너무 무섭고 겁났어요. 지독한 대인공포증에 시달렸지요. 정 답답하면 행여 나를 알아볼까봐 마스크에다 모자쓰고, 선글라스까지 끼고선 목적지도 없이 버스를 탔어요. 그렇게 사람들 구경하는게 너무 좋았습니다. 그 외엔 워낙 사람들을 피하고 혼자 틀어박혀 있으니까 나중엔 가까운 개그맨 선후배들이 한밤중에 전화를 해서는 직접 찾아와 살짝 만나고 가곤 했어요. 요즘은 조금 나아졌다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 앞에 서면 조심스러워요. 어디에 가서도 내 과거때문에 죄스럽고, 늘 긴장을 풀 수가 없죠.”

무너지는 사업구하려 손댄 도박이 파멸의 시작

어쩌다 이 많은 일이 일어났을까? 대전에서 출생, 크게 넉넉하지도, 크게 어렵지도 않은 한 가정에서 태어나 남들처럼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고, 우연히 고등학교 때 라디오 공개방송을 하러 온 대전 MBC의 한 PD 눈에 띄어 방송과 인연, 82년엔 제2회 MBC 라디오 개그콘테스트 금상을 수상하면서 승승가도를 달려온 코미디언 황기순. 필리핀사건 전까지 단 한 번도 그렇다할 사고가 없었던 그가 어떻게 도박에 빠져들게 됐을까?

“당시 대전에서 사업을 하던게 무너지면서 일이 다 꼬였어요. 12월30일(96년)연말결산 보고를 하는데 나가는 지출은 많고, 댈 돈은 없고, 돈에 대한 압박이 아주 심했어요. 도저히 감당을 못하겠고, 그저 어디서든 빨리 돈을 만들어야된다는 생각에 거의 정신이 나가 있었죠. 마침 예전에 필리핀에 가 본 경험도 있고 해서… 결국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카지노든 어떤 도박이든 그 중간엔 꼭 어떤 계기가 있기 마련이예요. 재미라기보다 어떻게든 빨리 돈을 구해야될 상황에서 그 ‘한번’의 유혹에 빨려든 거죠, 갖고 간 1만불을 단 한시간만에 다 잃었습니다. 사실 도박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것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돈을 만들어 보겠다고 어렵게 구해 간 그 돈을 그렇게 다 잃어버리고 나니까 더 미치는 겁니다. 그래서 그 돈을 되찾아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또 한번 뛰어들었다가 또 다시 잃고… 계속 악순환이 되는거죠. 도중에 이러다 큰 일 나겠다는 생각을 안해본 것도 아닙니다. 세번째 뛰어들어 전부 5만불을 잃었을 때쯤엔 덜컥 겁도 나고, 빨리 손을 떼야 된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돈도 아니고, 포기하기엔 너무도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알면서도 결국 그만두지 못한 건 어쨌든 제 잘못입니다. 제 의지가 너무 약했습니다.”

이후 생활은 세간에 알려진 그대로다. 97년1월 필리핀에 도착한지 3개월만에 카지노에서 가진 돈을 다 탕진, 부랑아로 살았다. 우선 갖고 있던 반지부터 팔았다. 밀린 여관비를 계산하고 나자 우리돈 약 3만원이 남은 전 재산. 베니어판으로 대충 칸막이만 질러놓다시피 허름한 월세방 한달치를 계약한 뒤, 30원짜리 빵과 물로 간신히 끼니를 떼웠다. 사실 식욕도 없었다. 그 무렵 국내의 한 방송사에 의해 그의 도박행적이며 필리핀내 생활모습이 알려지면서, ‘나는 이제 끝났다’싶었다. 남 앞에 서는게 직업이었고, 그나마 남은 유일한 희망은 국내로 돌아가 다시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것이었는데 도박사범으로 수배된 그에겐 그 어떤 길도 차단돼 있었다.

동료개그맨들과 교민의 ‘뜨거운 정’ 평생 못잊어

인터폴까지 자신을 잡으러 다닌다는 소문에 행여 신고를 당할까봐 한국인들은 무조건 피해 다녔다. 굶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마치 병자처럼 방안에 가만히 누워있거나 길바닥의 꽁초도 예사로 주워 피웠고, 심지어 개사료까지 뒤져 먹었다. 대리운전이나 자판기 동전수집일을 한 건 그나마 호시절. 죽고 싶다는 생각이 내내 머릿속에 차 있었다. 6개월째 접어들어 결국 선배 개그맨 김정렬에게 처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최후의 구조요청같은 것이었다. “제발 죽지만 말고 견디고 있으라”던 김정렬은 전화를 받은지 3일만에 직접 그에게 달려왔다. 그 사이 동료들간에 얼마씩 모았다는 돈도 내밀었다.

“그 돈을 받고난 뒤부터 겨우 살게 됐습니다. 그때 주병진씨 편지도 함께 받았는데 ‘다들 널 기다리고 있으니, 죽지 말고 사람만 꼭 돌아와라’ 그런 내용이었죠. 읽으면서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이렇게라도 일어설 수 있었던 건 다 주변에서 도와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필리핀에서도 자기도 돈이 없으면서 절 불러다 재워주고 먹여준 교포 박금배씨, 지희네 가족들이 있었고…한국에 들어오는데도 개그맨 선후배들이 앞장서서 도와줬습니다. 심지어 지금 입은 이 티셔츠랑 바지, 옷도 옷가게를 하는 한 선배가 저 옷 살 돈도 없을거라고 억지로 안기다시피 준 거예요. 아주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힘이 열배 스무배 더 나기도 하고, 앞으로 이 빚을 다 갚자면 더 열심히 살고, 저도 남들을 위해 돕고 살아야지요. 과거에 큰 실수를 저지르긴 했지만, 앞으론 정말 열심히 살면서 곧 일어설겁니다. 또 일어설 수 밖에 없구요. 이젠 자신이 있습니다.”

“이젠 자신있습니다” 새삶에 대한 강한 의욕

그외에도 그는 인터뷰 중 ‘자신이 있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고 반복했다. 그만큼 큰 절망을 지나왔다는 것을 반증하는 듯 했다. 이젠 두려운게 없다고도 했다. 돈의 가치도 제대로 알게 된 것이 너무나 다행스럽고, 더 겸손하게 그러나 새로운 희망을 갖고 일어서려 하는 자신이 한편 대견스럽다고도 했다.

이혼의 상처도 차츰 아물어가는 듯 보였다. 그와 헤어진 부인은 현재 결혼전 중단했던 공부를 하며 다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혹 좋은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언젠가 됐든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됐을 때, 지난날 그녀가 입은 상처에 대해선 꼭 보상을 해주고 싶다는 황기순. 그리고 못지 않게 굳은 결심 하나가 더 있다.

“이 다음에 도박이 정말 얼마나 무서운 건가, 얼마나 한 사람을 철저히 파괴시킬수 있는지를 글로든, 방송으로든, 그 어떤 방법이든 살아있는 동안 꼭 남기고 갈 겁니다. 도박이 꼭 도박이다 해서 도박으로 빠지는게 아닙니다. 재미로 하다가 도박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 그 문제 때문에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건지 60%정도는 생각을 바꿔줄 자신이 있습니다. 그만큼 저는 고통을 받아 봤습니다. 백명중 단 한 사람이라도 도박에서 구해낼 수만 있다면 뭐든 아끼지 않겠습니다.”

정영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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