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가이버와 돈, 그리고 여자 도우미

07/22(목) 16:18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신창원이 경찰의 추적을 피해 2년6개월간 도피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절도행각을 통해 마련한 풍족한 자금과 여자, 그리고 각종 장비를 적절히 활용했기 때문이었다.

15세부터 교도소를 들락거리면서 다져진 그의 ‘절도 실력’은 탈옥후에 더욱 노련미와 대담성이 곁들여져 주택가를 휘젓고 다녔다. 경찰은 신이 탈옥후 현재까지 모두 88차례에 걸쳐 5억4,000여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는 평균 10일에 한번씩 450만원 상당의 절도 행각을 벌인 셈.

신은 여기서 생긴 자금으로 여자들과 함께 호화생활을 하며 화려한 도피 행각을 이어갔다. 또 훔친차량에 각종 절도와 도피 장비를 실고 다니며 유사시에 대비하는 치밀함도 보였다.

도피 ‘도우미’_ 신창원의 여인들

신의 곁엔 항상 여자가 그의 여인들은 한결같이 신에게 인간적인 동정과 연민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다. 훔친 돈으로 “빚을 갚아주겠으니 함께 살자”며 여자들에게 접근했고 결국 그들을 동정과 사치의 옭아미로 얽어매 자신의 ‘도피 도우미’로 활용한 것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동거녀만도 6명. 이들은 모두 마른 체격의 곱상한 외모를 지닌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의 유흥업소 종업원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신은 탈옥한지 9개월만인 97년 10월 충남 천안시 목천면 H빌라에서 다방종업원 전모(31)씨와 동거 생활을 했다. 전씨와 관계가 경찰에 알려지자 신은 그대로 달아나 그해 11월부터 경기 평택시에 사는 다방종업원 강모(22)양과 신장동 N빌라에서 살림을 차렸다. 당시 신은 강양과 함께 평택시 지산동 장애인 수용시설과 소년소녀가장들에게 성금을 기탁하는 등 ‘의적’ 행세를 하기도 했다. 당시 강양은 “다정하게 해줬고 그의 아이를 갖고 싶었다. 아직도 그를 사랑한다”고 밝혀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신은 지난해 4, 5월에는 경북 성주에서 서로 인접해 있는 다방의 종업원인 신모(34)씨, 박모(24)씨와 잇달아 사귀는 비상한(?) 능력을 과시했다. 신은 위장병과 장염때문에 술을 즐기지 않아 주로 다방여종업들이 포섭대상이 됐다. 그해 7월에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서 박모(28)양과 동거생활을 했다. 그리고 올해 6월 천안시 봉명동 M다방 종업원인 정모(20)씨와 보름간 함께 생활했다. 특히 정씨는 6월1일 출동한 경찰에 약속시간을 엉뚱하게 알려줘 신의 도주를 돕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전남 순천의 한 아파트에서 동거하던 김모(27)양이 보는 앞에서 꼬리가 잡혔다. 김양은 “탈옥수 신창원임을 알았으나 ‘정’ 때문에 신고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신의 동거녀들 대부분은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방법을 아는 사람” “오빠가 다시 돌아온다면 함께 살고 싶다”는 등 아직도 신에 대해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다.

특수 요원을 방불케한 도피 장비

신이 2년6개월간 경찰의 포위망을 농락하며 도피 행각을 할 수 있었던데는 ‘맥가이버’에 버금갈 만큼 각종 장비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던 것도 한몫을 했다.

신이 검거되기까지 타고 다녔던 소나타Ⅲ 승용차에는 범죄에 필요한 장비외에도 정밀지도, 휴대용 컬러TV 등 각종 정보를 취합할 수 있는 첨단 도피기구가 완벽하게 갖춰져 우선 신은 비용마련을 위한 범죄기구로 다용도 칼, 벤치, 쇠톱, 줄, 절단기, 드라이버 등 항상 휴대하고 다녔다.

차안에서는 충남, 충북, 대전, 경기, 서울 등 중부권과 수도권 승용차 번호판이 15개나 쏟아져 나와 그의 치밀함을 보여주었다. 또 경찰의 수사망을 피할 정보 수집을 위해 휴대용 컬러 TV와 휴대폰, 정밀지도 등을 항상 지니고 다녔다. 차안 트렁크에서 극한상황에 대비한 휘발유통과 번개탄, 침낭 그리고 고기굽는 석쇠가 발견된 것으로 봐 야산에서의 취사를 대비한 것으로 보인다. 또 변장을 위해 가발과 가위, 헤어 무스도 갖추고 있었다.

hero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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