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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탐구] 시민의 힘 보여주는 용기있는 감시자

매주 한두차례 서울의 각 구청엔 반갑지 않은 한 단골방문객이 찾아든다. 슬그머니 와서는 민원실 한 구석에 조용히 앉아있다 가는게 고작이지만, 아무래도 완전히 무시하기엔 벅찬 상대다. 그가 있는 줄도 모르고 ‘늘 그랬듯이’ 민원인에게 함부로 큰 소리를 치거나 근무시간에도 자리를 비우고 나가 잡담을 하다가, 혹은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혼이 난 구청직원들이 한 둘이 아니다. 신분이래봐야 내세울 ‘돈도 빽도’없는 그저 평범한 한 시민에 불과하지만 그 불편한 손님, ‘시민 이득형(36)’이 뜨는 날은 ‘윗분’순시오는 날만큼이나 구청측엔 긴장일색.

“부정부패·무사안일 없애려면 시민의 역할도 필요”

서울 강남의 한 영어학원 강사인 이득형씨는 불과 일곱달만에 공무원사회에 유명해진 사람이다. 나태와 불친절도 묵과되던 분위기에 돌연 찬바람을 몰고다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현장을 누비고 다니며 어떤 문제라도 발견되면 바로 시정을 요구한다. 내용의 시비를 떠나 항의를 받는 공무원들의 입장에선 어쨌거나 여간 껄끄러운 상대가 아니다. 현장에서 받아들여주지 않으면 조용히 인터넷에 올려버리기가 예사, 혹은 직접 해당 상부기관에까지 항의문서를 발송해 기어코 끝을 봐야 손을 놓는 만만찮은 ‘시민감시원’이다. 자신의 문제에만 열을 올리는 것도 아니다. 다른 시민들이 푸대접받는 것만 봐도 자기 일처럼 화가 나서 직접 뛰어다닌다. 따지는 대상에도 지위고하를 막론한다. 얼마전엔 규정시간전 식사를 하러 나간 서울시장에게도 해명을 요구, 서울시측의 정중한 회신을 받기도 했고, 청와대, 국방부민원실도 거침없이 찾는다.

그간의 ‘업적’도 많다. 그동안 거의 무시돼왔던 토요일의 ‘고무줄’ 점심시간을 바로 잡은 것도 그의 작품. 규정상 오후 1시까지 근무하도록 돼있지만 심지어 오전 11시40분부터 점심을 먹으러 나가는 직원들 때문에 찾아간 민원인들만 헛걸음을 해왔던 것이 사라지다시피한 것도 그의 노력 때문이다. 또 공무원 자신들부터 심심찮게 어겨온 일부 구청의 금연구역 문제에도 일침, 원칙대로 바꿔놓았고, 어느 민원인에겐가 거친 욕설을 퍼붓고도 사뭇 태연했던 한 고용안정센터의 직원은 결국 당사자의 호소를 바탕으로 한 그의 끈질긴 개선요구끝에 인사조치로 마감된 사례도 있다. 그렇다고 늘 공무원 반대편에만 선 것도 아니다. 전남 구례군 정기종합감사시 1,000만원의 접대비 문제로 일부 하위직 공무원들이 문책을 받았을 땐 이와 관련한 하위직 공무원들의 인사관련 형평성 문제를 제기, 힘없는 하위직 공무원들의 민원에까지 힘이 돼 주었다. 적잖이 욕도 먹고 있지만, 동시에 나날이 격려와 칭찬이 늘어나는 것도 그가 ‘시민의 힘’으로 그 모든 일을 해내고 있다는 점에서다.

“공무원들의 부정부패 문제를 바로 잡으려면 제도적인 장치외에 시민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모든 부정부패는 기본적인 윤리의식이 잘못된데서 나오고, 불친절이야말로 그런 기본의식이나 자세를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거든요. 한편으론 가만히 참기만하는 시민들에게도 일부는 책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저 화만 낼 뿐이지 구체적으로 나서서 어떻게든 고쳐보려는 노력은 잘 취하지 않거든요. 사실 공무원들도 정당하게 그쪽 잘못을 지적하고 이쪽 의견을 표시하면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차라리 극성스런 시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실은 우리사회도 훨씬 빨리 자리를 잡겠지요.”

시정 요구하다 공무원에 고함듣기 예사

따지고보면 그에게도 믿을만한 큰 ‘빽’이 있다. 바로 자신과 같은 시민들이다. 지난 2월 사회개혁을 위한 시민단체중 하나인 한국청년연합회 산하 청년정보문화센터(현재 한국청년연합회로 통합됨)회원으로 가입, 여기에서 개설한 ‘반 부패학교’ 1기생으로, 현재 ‘공무원 친절도 조사팀장’을 맡고 있다. 반부패학교는 갈수록 불거지는 우리사회의 부정부패문제를 일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민운동체. 비록 본 교육과정은 끝났지만 그의 활동은 오히려 그 이후에 더 가속이 붙었다. 첫 작업으로 이뤄진 ‘공무원 친절도 조사’도 그가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120개에 이르는 조사항목을 함께 작성, 서울시청 및 26개 구청을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한 것. 초청받지도 않은 구청출입이 시작된 것도 그때부터다. 찾아가는 곳은 주로 각 구청 민원실, 민원인들 틈에 섞여 조용히 지켜보며 명찰을 달지 않은 직원, 뭔가를 묻는 시민들에게 그저 코끝으로 얼버무리고 치우는 직원, 혹은 인사태도나 호칭 등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모두 체크해나갔다.

욕도 많이 먹었다. 잘못된 문제점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면 당장 ‘너 뭐야’란 고함부터 듣기가 예사. 어떤 공무원은 직접 그의 본색이 궁금했는지 그가 다니는 학원에까지 전화해 그가 받는 봉급액수까지 묻고서야 입을 다문 일도 있다. 어떨땐 ‘함부로 날뛰면 낭패를 볼 것’이라는 반 협박을 듣기도.

그러나 악역만 맡은건 아니다. 칭찬을 받아야 할 사람에겐 의당 칭찬이 돌아가야한다는 철칙도 있다. 언젠가 한 신문투고란에서 본 어느 친절한 공무원의 미담을 접한 뒤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해당기관에 연락, 흐뭇한 사례도 적지않았다.

인터넷에서 다양한 민원 수집하는 ‘사이버 홍길동’

주관심사가 그렇다보니 매일같이 주요 일간신문을 모두 훑으면서도 가장 신경써서 보는 것이 독자투고같은 시민여론란. 혹은 현장에 있지 않은 시간엔 거의 인터넷에 살다시피 한다. 하루 수시간씩 인터넷을 뒤지며 다양한 민원을 수집, 그의 이름이 서울시내 공무원들 사이에 알려진 것도 바로 인터넷이 계기였다. 더불어 가진 별명 하나도 ‘사이버 홍길동’.

경험으로 체득한 요령도 많다. 어떤 사안이든 해당 공무원을 찾아가기 전 반드시 관련 법률부터 파악해놓는 것이 필수. 처음엔 법지식없이 찾아갔다가 법을 들고나오는 상대에게 ‘무참하게 깨진’적도 많았다. 이제는 웬만한 공무원복무규정은 다 꿰고 다닐 정도.

스케일도 크다. 일전의 고용안정센터 직원 욕설문제만 해도 해당 상급기관인 지방노동사무소를 상대한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대통령비서실 여론광장으로 직행했다. 청와대 홈페이지를 이용한 것. 그 이후 청와대에서 노동부로, 다시 해당 지방노동사무소로 순차적으로 하달되면서 신속한 처리. 일처리 순서에도 나름의 요령이 붙었다.

“우리가 원하는건 화합” 연성운동 지향

30대에 이런 시민운동가로 변할줄은 본인도 진작에 짐작했을 것이다. 한국외국어대에서 서반아어를 전공, 석사학위까지 갖춘 그는 강원도 어촌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궁금한건 꼭 꼬치꼬치 따지는 성격이었다. 대학재학 시절에는 운동권에서도 활동, 나름대로 ‘사회정의’의 꿈을 꾸던 열혈학생이었다. 그러나 강경일변도의 이념과는 적성이 맞지않아 도중 탈퇴, ‘배신자’라는 소리도 들어보았다.

그러나 때가 되면 언젠가 사회를 위한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어오던 중, 청년정보문화센터를 만나게 됐고 ‘지금이 바로 그 기회’라는 생각에 더욱더 열성적으로 투신하고 있는 것. ‘연성운동’을 지향하는 한국청년연합회의 방향도 그에겐 더할 나위없이 반가운 것이다.

“다소 공격적인 시민단체들과는 달리 우리가 원하는 건 화합입니다. 일방적으로 이쪽 주장만 내세우기보다는 함께 의논하고 함께 해결점을 찾아가자는거죠. 실제로 그동안 많은 공무원들을 만나보면서 밖에서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도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박봉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에 큰 긍지를 갖고 열심히 일하는 분들도 아주 많이 봤습니다. 제가 보기엔 전 공무원의 90%는 그런 좋은 분들인데 나머지 소수의 잘못 때문에 함께 욕을 먹는 것같습니다.”

정작 자신의 돈버는 일에 투자하는 시간은 비율상 4:1 정도. 한밤중에 수업준비를 하고, 매일 강의 네시간을 뛰는 것 외엔 모두 ‘돈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렇게 바깥 일에 더 동분서주하는 가장을 두고 집안에선 볼멘소리도 적지 않다. 얼마되지 않는 강사월급에도 불구, 온갖 교통비며 통신비 등 제반 활동비까지 자비로 충당하고 다니다보니 “돈을 더 벌 생각은 하지 않고 돈을 뿌릴 일만 만들고 다니냐”는 부인의 ‘민원’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해 온 인생의 목표이고, 내겐 돈보다 삶의 질이 더 중요하다”며 설득했다. 아직도 5,500만원짜리 전셋집에 그 흔한 차도 한 대 없이 사는 그를 두고 바보라던 친척들도 있었고, 오전중 강의만 마치면 총알같이 바깥일을 위해 튀어나가는 그에게 “그 시간에 수강생을 모으는데 더 신경을 써주면 어떻겠냐”는 학원장의 조심스런 충고도 있었다. 물론 이제는 지나간 문제다. 화를 내다 지쳤는지 아니면 정말 이해를 하게 된건지 가정에서도 이젠 그의 일을 받아들이고 있고, 학원에선 학원대로 오히려 원장까지 적극적으로 후원, 자신이 맡은 주부영어반에서도 곧잘 시민의식문제를 함께 토의하거나 심지어 물심양면의 후원까지 받는 일로 반전됐다. 이 때문에 이씨의 사기도 한껏 고조된 상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비전도 더욱 공고해져있다.

사이버 부패박물관 개설 계획

“영원히 시민운동가로 일하고 싶고, 이왕이면 역사에 남을 만큼 괜찮은 운동가로서 이름도 남기고 싶습니다. 당장은 내년쯤 세계 최초의 사이버 부패박물관을 만들 생각입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한번만 클릭하면 5공이면 5공, 각 시대별 부패인물의 프로필이며 전력, 법원판결문까지 모두 일목요연하게 나오는거죠. 결국 어떤 부패한 인물이라도 두고두고 역사에 기록될 수밖에 없다는 경고가 되겠지요. 어떤 후배 하나는 내년부터 ‘이달의 부패인물’도 발표해보자고 하니, 아무튼 부패한 공직자가 갈수록 살기 힘들어질 건 당연합니다.”

어쩌면 ‘이득형 리스트’가 될 그 부패인 명단 맨 앞머리엔 누가 오를까? 헤어질 인사를 하던 중, 그가 갑자기 뭔가를 꺼내 든다. 10개의 메모가 빽빽히 적힌 쪽지. “오늘 얘기하려고 준비해온건데 혹 빠뜨린건 없나 해서요”라고 말한다. 그토록 철저한 이씨앞에 구청직원들이 얼마나 조목조목 ‘당했을지’충분히 짐작이 간다.

지난 2월부터 한달동안 열린 ‘반 부패학교’는 현재 한국청년연합회(KYC)로 통합된 당시 청년정보문화센터가 마련한 시민참여학교다. 한국청년연합회는 임종석, 김형주 등 과거 운동권 출신 ‘386세대’가 화합속의 사회개혁을 표방하며 발족시킨 청년시민단체. 그 기본사업중 하나로 개설된 반 부패학교는 이름그대로 우리 사회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시민의 감시기능을 강화하는 게 그 목적. 외국의 부패극복 사례, 깨끗한 사회를 위한 이시대 청년의 역할 등에 대한 강도높은 교육을 거쳐 약 15명의 졸업생을 배출해냈다.

교육후 첫 작업으로 내놓은 성과가 ‘공무원 친절도 조사’. 활동계획이 소개되자마자 ‘열린사회시민연합’과 ‘구로시민센터’가 동참의사를 밝혀, 현장조사는 3개 단체가 연대해 이루어졌다. 각 단체마다 모니터요원 50여명을 활용, 약 2주에 걸쳐 서울시내 각 구청을 돌며 자체 조사항목과 민원인 대상 설문조사를 병행했다.

조사팀장 이득형씨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조사결과 모범적인 곳이 종로구청, 마포구청, 송파구청, 서대문구청, 중구청 등. 서비스행정에 대한 나름의 체계와 개선의지를 갖춘 곳으로 평가됐다. 또 이와는 달리, 민선자치시대 개막이후 각 지자체마다 앞다투어 내세우는 ‘봉사행정’의 구호도 무색하게, 친절운동자체 역시 전시적이고 형식적인 관공서도 적지않은 것으로 지적됐다. 또한 이번 조사작업을 전후한 별도의 ‘부가소득’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종전 총무과 직원중 한 사람이 다른 일과 겸하는 정도의 수준에서, 최근 몇몇 구청의 경우 별도의 친절팀까지 구성해 평균 3~5명을 배치, 전담케하는 등 남다른 개선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것. 그러나 아직도 뿌리깊은 일부 공무원들의 근거없는 관료주의와 높은 관공서의 문턱이 얼마나 더 낮춰질지, ‘작은 부패’부터 하나씩 고쳐가겠다는 이들의 움직임과 함께 기대해 볼 만하다.

정영주·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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