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잘 곳이 없어 의자에 앉은채로 잠을 자며 15년간 살았습니다. 어릴 때 고생, 숱하게 했지요. 하지만 별 원망이나 비관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땐 다들 그렇게 어렵게 살때였으니까, 어디 저만 그랬겠나 싶어요. 집배원 일을 시작하면서 모든게 좋아졌지요. 일하는 보람도 크고 생활도 안정되고, 제겐 이 이상 즐거운 천직이 없습니다.”

전남 순천이 고향인 장형현씨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14세 겨울에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가출소년이었다.

오로지 직접 돈을 벌어 계속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열심히 신문배달을 하며 13원짜리 라면으로 한달 내내 끼니를 떼우거나 밤이면 기숙사 한켠의 자리를 얻어 겨우 의자에 앉아 잠 자기를 15년간이나 계속하면서도 끝내 가출때의 소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을 하는 동안 인천의 한 고등공민학교에라도 다녀보려 했지만 공부는 커녕 기본적인 생활고조차 해결할 수 없던 탓에 결국 학교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 공장 생산직, 막노동 등을 전전하던 어느 해 크리스마스, 우연히 창밖으로 지나가는 집배원을 쳐다보다 현재의 길을 찾았다. 큰 가방을 둘러메고 어디론가 걸음을 옮기는 그 집배원이 너무 부럽고 좋아보였던 것이다. 74년 영등포우체국 임시직 집배원으로 출발, 3년뒤 여의도 우체국으로 옮겼다.

오밀조밀한 서울시내 안에서도 특히 미로같은 골목길로 유명한 신길동 대신시장 일대. 그 벌집처럼 빽빽한 골목을 25년간 누비는 가운데 이제는 터줏대감이 다 되어있다.

바로 40년전 이맘때 오들오들 떨며 서울에 들어섰던 소년은 이제 신길동 지리에 관한 한 여늬 토박이보다도 더 눈 밝은 컴퓨터 집배원이 되어 벅찬 새천년을 맞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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