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의 암초, 인종혐오범죄 급증

07/16(금) 10:25

21세기를 앞두고 쿠·클럭스·클랜(KKK)이 부활한 것일까. 자유세계의 상징이자 모범적인 다민족국가인 미국이 최근 극우인종혐오주의자들의 무차별 총질로 흔들거리고 있다.

미국 독립기념일인 7월4일에는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에서 한국인 유학생 윤원준(26)씨가 총탄에 맞아 숨졌다. 범인은 ‘백인 우월주의자’벤저민 스미스(21). 인디애나와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형사법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다. 그는 4일까지 3일간 중서부 지역을 차량으로 질주하며 광란의 총질을 해댄 뒤 자살했다. 표적은 흑인과 유대인, 아시아계. 윤씨와 흑인 1명이 죽고 8명이 다쳤다.

경찰수사결과 벤저민 스미스는 ‘백인을 위한 성전’을 통해 “유색인종을 쓸어 버리자”고 주장해 온 백인우월 과격집단인 ‘창조주 세계교회’의 일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단체가 문제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유색인종 살해와 폭행, 흑인교회와 흑인인권단체에 대한 폭탄공격음모 혐의 등으로 많은 단원들이 유죄판결을 받고 감옥에 들어갔다.

그러나 창조주 세계교회는 미국사회에서 무섭게 세력을 키우고 있는 유색인종 혐오단체중 하나에 불과하다. 앨라배마주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남부 빈곤법 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현재 미국내 인종혐오단체 수는 약 537개. 지난 2년간 30%가 늘어났다. 회원수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인종혐오 관련 범죄발생 건수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미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97년 ‘혐오범죄(hate crimes)’발생건수는 8,000여건. 이중 종교, 성차별, 국적 등을 제외한 인종관련 범죄만 4,710건으로 하루 평균 10건이 넘는다. 야만적인 인종폭력이 난무하는 것이다.

최근들어 인종혐오 범죄는 극우 민병단체들의 테러행위가 빈발하는 등 미국대륙을 뒤흔들 정도로 과격해지고 있다. 95년 4월 168명이 숨지고 400여명이 부상한 오클라호마시티 연방건물 테러사건이 대표적이다. 테러의 배후로 밝혀진 ‘미시간 민병대’는 미국 47개주에 2만여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준군사조직이었다. 몬태나주에서 인질극을 벌인 몬테나 민병대를 포함한 미국내 준군사조직의 수는 많게는 46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민병조직은 국가를 부정하며 ‘국가속의 국가’로 자리잡으려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유색인종에 관용적인 정부를 인정치 않으려는 것이다.

블루밍턴에서 한국인 유학생을 숨지게 한뒤 자살한 벤저민 스미스도 이같은 성향이 그대로 나타났다. 그는 지난해 대학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 정부가 백인들에게 등을 돌렸다는 것은 거의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민족과 위대한 백인은 기만적인 외국정부와 통제된 언론, 자멸적인 종교집단(기독교, 천주교 등 제도권 종교)의 노예다”라고 주장했다. 벤저민 스미스의 범행이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춰 자행된 것이 우연의 일치는 아니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인종혐오 범죄가 미국에서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뭘까. 미국사회의 주류인 WASP(앵글로섹슨계 프로테스탄트 백인)이 수적으로 중남미 출신의 히스패닉과 흑인, 아시아계에 점점 밀리고 있는데서 이유를 찾는 것이 첫째다. 현재 절반을 겨우 넘고 있는 백인이 조만간 소수인종으로 전락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유색인종에 대한 과격한 혐오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울러 히스패닉 등 소수 유색인종들이 백인주류사회의 문화에 동화되기 보다는 전통문화를 유지하려는 경향도 혐오를 부채질하는 이유로 꼽힌다.

2000년대를 앞둔 ‘밀레니엄 신드롬’으로 설명하는 시각도 있다. 성서에 나오는 아마겟돈, 즉 최후의 심판에 앞서 벌어지는 선·악의 대결을 극우인종차별주의자들이 인종간의 싸움으로 해석하면서 테러를 저지른다는 것.

인종혐오범죄의 추세는 앞으로도 꺾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종주의자들은 백인의 이용률이 압도적으로 높은 인터넷을 통해 선전을 강화하며 세력을 확산시키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내 인종혐오 조장 웹사이트수는 254개로 전년도에 대비해 60%가 늘었다. 이들 사이트에는 폭탄제조법과 인종차별 단체를 찬양하는 록뮤직이 단골메뉴로 들어 있다. 컴퓨터 보유현황을 보면 연수입 1만5,000~3만5,000달러 가정의 경우 백인은 33%이상인데 비해 흑인은 19%에 불과했다. 일부 어른들의 극단적 인종혐오가 어린 백인세대에게도 무차별적으로 주입되되고 있는 것이다.

대서양 건너 유럽에서도 인종차별범죄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려스러운 수준이다. 빡빡머리 스킨헤드족과 신나치주의 청년들이 과격행동의 선봉에 서있다. 대표적인 곳은 독일과 프랑스. 피해집단은 아프리카와 터키 등으로부터 흘러 들어온 외국인들이다.

프랑스에서는 극우민족주의자 장 마리 르팡의 국민전선(FN)이 이미 제도권 내에서 정치력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 르팡은 소수계 외국인 추방과 인종주의를 공공연히 외치며 민족 이질감을 부추기고 있다.

독일도 극단주의자에 의한 인종차별과 관련 범죄가 우려스러운 상황. 지난해 5월 독일 내무부의 발표에 따르면 독일내 신나치주의자와 인종차별주의자 등 극우세력에 의한 범죄가 2차대전 후 최고조에 달했다. 97년 극우세력에 의한 범죄는 1만1,719건으로 전년에 비해 34% 늘어났다.

98년 현재 극우단체 조직원과 동조자 수는 4만9,000여명에 달한다는 것이 독일정부의 추산. 게르만족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신나치주의자들은 독일내 20~50개 지역을 ‘비외국인 지대’로 선언, 타인종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일종의 해방구를 선포한 셈이다.

이들의 자양분은 90년대 이후 두자리수까지 치솟은 실업률. “소수민족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뺏어가고 있다”는 이들은 주장은 정치적 지지까지 얻고 있다.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대표적인 외국인 집단인 터키출신은 약 20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인종주의자들의 정치적 부상은 지난해 4월 구동독 지역인 작센-안할트주에서 치러진 지방의회 선거가 대표적이다. 인종차별·반유대주의 극우정당인 독일민족당(DVU)은 무려 13%의 지지율을 획득, 의회진출 하한선인 5%지지율의 틀을 깨고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DVA는 나아가 ‘극우정당 대연합’까지 공언하고 있다.

배연해·주간한국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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