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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않는 케니디가의 비극

배연해·주간한국부 기자

17일 오전 뉴욕 양키즈 구장. 관람객들은 돌연한 안내방송에 경악, 웅성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1960년 11월25일 출생. 38세. 61년 1월20일 아버지가 미합중국 대통령에 당선. 63년 11월22일 아버지 암살….

양키즈 구장의 관중을 충격속으로 몰아 넣은 주인공은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인 존 F 케네디 2세였다. 자신의 생일날인 63년 11월 25일, 케네디 대통령의 영구차가 워싱턴 교회 앞을 지날 때 거수경례를 올리던 네살짜리 케네디 2세가 실종됐다는 소식이었다.

케네디 2세는 하루전 사촌 여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을 이륙해 매사추세츠주 마서드 비녀드로 가던 중이었다. 그가 직접 조종하고 있던 자가용 경비행기는 공항에 착륙하기 직전 갑자기 급강하한 후 레이더 스크린에서 사라졌다. 비행기에는 부인 캐롤린 버셋, 처제가 함께 타고 있었다.

그가 탔던 비행기는 ‘파이퍼 32 새러토가’경비행기. 지난해 경비행기 조종 면허증을 딴 뒤 새로 산 6인승 단발 프로펠러 비행기였다. 비행기 등록번호는 N529JK. 아버지 케네디 전 대통령의 생일인 5월29일을 따서 붙였다.

그의 실종 소식은 미국 전역과 세계의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다. TV와 라디오는 일제히 긴급뉴스로 보도했고 연이어 수색상황과 특집방송을 계속 내보냈다. 시카고 선-타임스는 18일자 일요판을 호외로 발행했다. CNN과 ABC의 인터넷은 그에 관한 기사로 도배질을 했고 영국 BBC와 프랑스 TV, 러시아 방송까지 톱뉴스로 다뤘다.

‘현세대에서 가장 멋진 남자’‘신비스러운 케네디가의 후계자’‘가수 마돈나, 배우 대릴 하나 등 유명 연예인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젊은 잡지 발행인’‘자가용 비행기를 몰며 여행을 즐기는 제트족’…. 그를 따라 다니는 화려한 이력서가 그의 사고소식에 향해지는 세계적 관심의 전부일까.

더있다. 미국 최대의 정치가문,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정치집안 케네디 가문을 끊임없이 괴롭혀온 비운의 가족사가 바로 그것이다. 때로는 동정의 대상으로, 때로는 질투의 대상으로 끊임없이 화제거리를 제공해온 케네디가의 드라마가 재연됐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에서 건너온 케네디 가문의 비극은 케네디 전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부터 미국인들의 뇌리속으로 깊숙히 들어 왔다. 미국 대통령 선거 사상 처음으로 가톨릭 교도가 아닌 청교도로서 대통령에 당선된 케네디는 63년 11월22일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리 하비 오스왈드의 총탄에 맞아 절명했다. 뉴 프론티어 정신을 외쳐 미국식 자유주의의 세계화를 주창했고 쿠바 미사일 위기를 극복한 케네디에 대한 미국인의 사랑은 곧 케네디 가문에 대한 사랑으로 연결됐다. 그래서 케네디 가문의 이야기는 미국인의 신화로 자리 잡게 됐다.

케네디 가문의 불운은 케네디가 정치적으로 급부상하기 전부터 이미 시작됐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형 조셉 P 케네디는 2차대전중이던 1944년 공군으로 베를린 공습에 참여했다 피격돼 산화했다. 29세 때였다. 시신도 거두지 못했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누나 로즈마리 케네디는 정신발달 미숙과 뇌수술 실패로 인해 1941년부터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여동생 캐슬린 케네디는 남편이 2차대전에서 전사 뒤 홀몸으로 지내다 1948년 프랑스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해 28살의 나이로 남편의 뒤를 따랐다.

케네디 2세의 동생인 패트릭 부비에이 케네디는 조산아로 태어나 아버지가 암살되기 석달전 죽었다. 이번에 케네디 2세가 사고를 당함으로써 케네디 전대통령 부부의 직계자녀 중 살아 남은 사람은 큰딸 캐롤린 하나 뿐이다.

케네디 전 대통령이 암살된 후 케네디가의 비극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는 68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지명전에서 예비선거운동을 벌이다 암살됐다. 나이 42세. 형에 이어 민주당의 ‘영파워’지도자로 기대되던 그의 사망은 케네디 집안이 미국인의 주목을 받는 또하나의 계기가 됐다.

케네디 전 대통령의 막내 동생 에드워드 케네디(현재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는 69년 7월 여비서와 함께 차를 타고 가다 강물 속으로 추락해 자신만 간신히 빠져 나왔다. 여비서가 익사체로 발견되는 바람에 따가운 여론의 눈총을 받아야 했다. 에드워드는 그후에도 약물 중독으로 세인의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다.

84년에는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 데이비드 케네디가 플로리다 팜비치의 가족 휴양지 인근 호텔에서 약물과용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데이비드의 동생 마이클은 97년 12월 콜로라도주의 한 스키장에서 스키를 타다 사고로 사망했다. 10대 보모와의 섹스 스캔들로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는 그의 사망 당시 나이는 39세. 이번에 죽은 케네디 2세 보다 한살 많은 나이다. 케네디 전 대통령이 46세, 로버트 케네디가 42세로 사망한 점을 감안하면 케네디가의 비극은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중반에 일어나는 징크스를 갖고 있는 셈.

96년 피플지에 의해 ‘세계에서 현존 인물 중 가장 섹시한 남성’으로 선정됐던 케네디 2세의 죽음. 그의 죽음은 케네디 가문 전체로 봐서도 큰 손실인 것으로 이야기 된다. 노쇠한 에드워드 케네디를 제외하면 특출한 인물이 없는 현실속에서 그의 비중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그는 명문 브라운대학 법대를 졸업한 후 두번의 고배를 마신 끝에 변호사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맨해튼의 한 검사 사무실에서 시보를 거친 뒤 자신이 맡았던 6건의 사건을 모두 승소해 검사로서의 재능도 보였다.

방향을 바꿔 95년에는 ‘조지’라는 정치·문화잡지를 창간해 회장 겸 편집장으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해왔다. 95년 9월 당시 애인이었고 끝내 저승길 동반자가 된 캐롤라인 버셋과 결혼했다. 올해 33세인 금발의 아내 버셋은 결혼전 세계적인 패션업체 캘빈 클라인의 홍보일을 했었다. 보스턴대학에서 초등교육과 과학을 전공했는데 우연히 길거리에서 패션 디자이너 캘빈 클라인의 눈에 들어 그의 회사와 인연을 맺게 됐다.

케네디 2세는 부모에게서 태생적으로 물려 받은 ‘섹스 어필’과 가문의 후광으로 인해 성년이 된 이후 항상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왔다. 덕분에

주위로 부터 끊임없이 정치입문 유혹을 받아 왔으나 결코 정치에 발을 들여 놓지는 않았다.

정치가문에서 태어 났음에도 한사코 정치적 숙명을 거부했던 그였지만 집안을 쫓아 다니는 비극은 결국 피해가지 못했다. 그의 경비행기가 실종됐다는 소식을 접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진심어린 기도로 사고 비행기의 탑승자 가족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성명을 발표하고 가족들에게 위로전화를 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고교시절 우수학생으로 뽑혀 백악관을 방문해 당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부인 힐러리 여사도 재클린 오나시스 여사가 생존해 있을 때는 자녀교육 문제를 의논할 정도로 친분을 유지했었다.

seapow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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