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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법의 힘이 '개혁' 잠재웠다

79년 회교혁명 이후 최대 소요사태로 기록될 이란의 학생시위가 ‘율법(律法)’의 위력에 눌려 사실상 제압됐다. 일주일간 이란 전국을 뒤덮었던 개혁의 기운(氣運)은 자치를 감췄고, 보수파들의 ‘보복의 목소리’가 거리를 메웠다. 이제 시위 학생들은 ‘반혁명’등의 죄목으로 단죄를 감내해야 할 절박한 처지다.

최고지도자인 아야툴라 하메네이는 15일 “이슬람 공화국을 무너뜨리는 불순 세력의 음모는 완전히 제거됐다”고 선언했다. 고위 회교 성직자이자 이란 최고 국가안보위원회(SNSC) 부위원장인 하산 로와니는 “지난 며칠간 미쳐 날뛰며 체제를 공격한 자들은 ‘공화국의 적’으로 간주, 사형에 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위의 실패는 당장 개혁파 지도자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의 입지 약화와 보수파의 득세로 이어질 전망이다. 학생들이 ‘얼굴마담’으로 내세운 하타미와 그가 이끄는 시민사회운동당은 사태 방조 혹은 소요 대처능력 부족 등의 비난에 직면했다. 이와함께 하타미 정권이 추진해온 친서방적 개혁정책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학생시위는 하타미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이란 민중들이 평화적인 변화를 갈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란인들은 ‘율법에 나오지 않더라도 주장을 내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축적했고, 이는 앞으로 이란 정국에서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시위 경과

직접적 도화선은 개혁파 신문 ‘살람’에 대한 사법당국의 폐간 결정(8일)이었다. 경찰이 9일밤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진압하면서 테헤란대 기숙사까지 난입, 1명이 숨지자 ‘분노의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

은행원 자영업자 등 시민들까지 가세한 시위는 삽시간에 전국 13개 도시로 번져나갔다. 특히 수도 테헤란에서는 연일 수만명이 집결했다.

이들은 언론자유 신장 개혁 가속화 여성 복장 자율화 등을 요구하며 79년 회교혁명때와 같이 ‘자유’ ‘독재타도’를 외쳤다. 단지 아버지 세대가 ‘이슬람 공화국’을 주장했다면 아들 세대는 ‘이란 공화국’을 연호한 것이 달랐다.

그러나 학생들은 조직적이지 못했다. 시위 초기에 확보한 ‘명분’을 지키지 못한 채 결속력과 조직력에서 허점을 보인 끝에 허무하게 자멸하고 말았다. 시위가 과열되면서 ‘통제되지 못한’ 주장이 난무, 정체 불명의 소요사태로 돌변하면서 ‘정국 안정’을 내세운 보수파에 대반격의 빌미를 제공한 것. 특히 14일 테헤란대 구내 이슬람사원(모스크)에서 농성중이던 학생들은 성직자 연단을 불태우는 등 이슬람 율법에 정면도전했다.

보수파가 장악하고 있는 국영 TV 등 언론은 하메네이 지지를 재천명하며 이슬람 강경파 주도의 ‘반격 집회’ 참가를 종용했다. 하메네이의 전위대격인 회교민병대(바시지)와 보안군 등은 학생 수백명을 체포, 이들을 구치소에 가뒀다.

결국 ‘관망 자세’를 견지하던 하타미 대통령 마저 무력 진압을 거론하며 ‘꼬리’를 내려야 했다. 이후 시위 학생들에 대한 일제 검거령이 떨어졌다. AP 통신은 실패의 원인을 “79년 혁명과 이란-이라크 전쟁(80~89년)을 겪은 장년층이 변화를 원했지만, 격변은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반정부시위’

시위에서 학생들은 하타미 대통령의 초상화를 치켜들고 반정부시위를 벌이는 ‘아이러니’를 연출했다. 이는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종교 권력이 이란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이란의 정치체제를 ‘신정(神政)정치’라고 규정하듯 국가의 주요 권한은 하메네이에 집중돼 있다. 이슬람 종교지도자이면서 헌법상으로도 국가 최고 지도자이인 하메네이는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며, 행정부를 감독하고 치안 외교 사법권까지 통제한다. 이번 시위를 촉발한 ‘살람’의 폐간도 그의 휘하에 있는 ‘특별성직법원’이 내린 결정이다.

이에 반해 하타미 대통령은 2년전 70%의 지지율로 당선됐지만 현실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극히 제한적이다. 경제와 사회분야 정도가 그의 수중에 있을 뿐이다.

테헤란의 한 대학교수는 “침묵하는 다수는 분명히 하타미 대통령과 학생들의 편에 서 있다”면서 “그러나 하메네이를 중심으로 한 유력한 세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대표들은 시위과정에서 여학생 1명이 숨지고 1,400여명이 경찰에 체포됐다고 17일 주장했다. 학생대표들은 또 성명을 통해 하타미 대통령,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의 직접적인 회담을 요구하면서 회교 준군사단체들이 현상황을 악용하지 못하도록 국민들이 시위를 자제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동준·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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